전체메뉴
[중현 화순 용암사 주지스님] 내 안의 적폐 청산
2018년 01월 19일(금) 00:00
인천공항공사는 지난 5월 문재인 후보가 당선 확정되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막바지까지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은 난항을 거듭하다 새해를 불과 며칠 앞두고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그러나 불씨는 여전해서 노노갈등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정규직 직원들의 반발 때문이라고 한다. 제천 화재는 누구의 잘못이라고 딱히 지목해서 말하기 힘들 정도로 다방면에서 오랫동안 누적된 시스템이 빗어낸 참사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단어가 바로 ‘적폐’이다. 주로 정치권에서 애용하는 터라 정치적인 그 무엇이지 않을까 싶지만, 기실 적폐라는 말은 누적된 폐단, 잘못된 것이 오랫동안 누적된 것, 그래서 관례와 전통이 되어 버린 것을 말한다. 적폐는 이 사회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고, 나를 둘러싼 일상에도 존재하는 것이며, 나의 삶에 아주 뿌리 깊히 박혀 있다. 적폐란 사라져야할 비공식적인 시스템이다.

물론 오랜 시간 쌓이고 쌓여서 돌처럼 딱딱해진 때를 한두번의 비질로 말끔하게 청소하겠다는 것은 너무나 안일한 생각이다. 이런 안일한 생각의 기저에는 요즘 정치권이 잘쓰는 ‘내로남불’이라는 사고방식이 도사리고 있다. 적폐 청산은 어디까지나 내가 아닌 남을 향할 때나 통용되는 표현이다. 그것은 나의 일상과는 무관하다. 보는 이에 따라 청산되어야할 구습일지라도, 내게는 자연스럽고 익숙하고 개선의 여지가 있지만 여전히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일상 속 적폐의 실상이며, 적폐의 일상이다.

촛불을 든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적폐 청산이라는 구호가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적폐 청산이 일상으로 스며드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가장 큰 벽은 바로 개개인 자신이다. 현실이 이러한 까닭에 나의 일상을 관통하는 적폐 청산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일상의 적폐를 청산하려면 자신에 대한 성찰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지 않은 적폐 청산은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구호로 전락할 위험을 다분히 안고 있다. 정치권 차원의 적폐 청산, 사회 제도적 차원의 적폐 청산, 일상의 영역에서의 적폐 청산이 담고 있는 의미와 피부에 와닿는 현실은 사뭇 다르다. 그러나 일상의 삶을 지배하는 적폐야말로 다른 적폐들의 근간이다.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이라 하였다. 개인의 삶에서 적폐를 청산하는 일이 곧 이 사회의 적폐 청산이며, 이 사회의 적폐청산은 개인을 사회적으로 보다 성숙하게 한다. 정치권의 적폐 청산, 구태의연한 제도의 개선을 외치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내 안의 적폐를 청산하는 일이다.

내 안의 적폐 청산은 곧 자기 성찰과 직결되며, 모든 사회적인 문제는 개개인의 자기 성찰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자기 성찰은 곧 자기 객관화이다. 자기 객관화는 불교적 지식과 수행에 따른 나름 합리적인 이성적인 사고의 결과이지만 정작 필요로 하는 순간에 자기 객관화를 실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살을 빼려면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만 해서는 살이 빠지지 않는다. 살을 빼려면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한다. 자기 객관화를 해야한다고 생각만 해서는 자신을 객관화시킬 수 없다.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한다. “마음을 편하게 가져라” “마음을 비워라”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 이런 말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그냥 ‘말’일 뿐이다.

불가에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격언 중에 “묵은 것은 설게 하고, 설은 것은 익게 하라”는 말이 있다. 묵은 것은 익숙하고 자연스럽고 당연히 그런 것이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하고 흘려보낸다. 그러나 묵은 말투, 몸짓, 습관, 생각들이 기질이 되고 성격이 되고 결국 지금의 나를 결정한다. 묵은 자신의 일상을 낯설게 하는 실질적인 방법은 상상 속에서 나의 역할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등장하는 바로 그 장면 속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집어 넣는 것이다. 이때 가장 좋은 사람은 역시 부처님이다. 내가 그 역할을 할 때 했던 대사, 표정, 몸짓들을 그대로 꼭 같이 따라 하는 부처님을 관찰한다. 이런 상상을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훈련을 통해 우리는 익숙한 일상에 가려진 나의 실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또 다른 우병우와 최순실을 만들지 않으려면 내 안의 우병우와 내 안의 최순실을 몰아내야 한다. 내 안의 적폐를 청산하는 길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며, 제2의 제천 참사를 막는 길이다. ‘나는 부처’라는 생각은 심오한 사상적 선언이나 종교적 확신이 아니다. 내 삶을 개선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삶의 지침이다.

촛불을 든 지 1년이 되었다. 우리들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