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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규 원불교 사무국장] 충(忠)의 반성
2017년 12월 01일(금) 00:00
12월입니다. 우리들에게 시간이란 참으로 묘한 역할을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될 일도 서둘러서 처리하다 보면 그 일이 생각과는 달리 그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니 될 것 같은 일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잘 풀려가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또한 무슨 일이든지 그 일을 시작하게 될 때에는 우리로 하여금 설렘과 더불어 부푼 희망을 안겨주지만, 그 일을 마무리하게 되어가는 시점에서 지나온 날들을 반성하다보면 항상 아쉬움이 가득하게 됨을 경험합니다.

한해를 정리하는 12월을 맞이하면서 각자 어떤 느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지 궁금합니다. “잘 해왔어. 조금만 더 힘내자”라는 생각일지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올해도 대충 마무리하자”라는 생각일지 말입니다. 시간은 계속되는 것이고 금년이 지나면 내년이라는 시간을 다시 맞아들이게 됩니다. 잘못되고 아쉬운 것을 포기하기보다는 새롭게 각오하고 맞이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계획이란 언제나 반성이 바탕이 되어 세워야 합니다. 반성 없는 계획은 공염불이 되기 십상입니다.

반성(反省)이란 단어는 한자 그대로 ‘시간을 되돌려 살펴서 나의 잘못을 뉘우치다’라는 의미입니다. 펄펄 끓고 있는 주전자의 물을 차갑게 만들려고 하면 먼저 주전자 밑의 불을 끄고 그 위에 냉수를 부어야 합니다. 주전자 밑의 불을 끄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서 참된 반성을 한다는 것이고, 그 위에 냉수를 붓는 것은 참된 반성의 토대로 대중에게 선행을 베푼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참된 반성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최대 과제인 적폐는 참된 반성없이 잘못된 관행으로 쌓아온 폐단이 굳어져 세상을 혼란하게 하고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탓입니다. 이를 드러내 반성과 책임을 묻고 새로운 시대의 질서를 새롭게 정립하자는 것이 오늘의 시대적 과제입니다.

이 시대적 과제인 반성의 산물로 충(忠)이라는 의미를 새롭게 정립했으면 합니다. 충(忠)이라는 글자는 가운데 마음이 바로 충입니다. 이는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안으로 양심을 속여 스스로 뉘우치지 아니하고, 밖으로 사회를 속여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아니한 사람은 충이라 할 수 없습니다.

고전에서는 “신하는 충으로써 임금을 받들어야 한다. 충은 군주의 명령을 거스르더라도 군주의 이익을 위하는 것을 충이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충은 임금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 터져나온 공직자들의 부패와 비리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충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상실이 되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충이라는 가치는 비단 공직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 시민에 있어서도 충이라 함은 법을 준수하고, 효도와 우애를 다하고, 정당한 생업으로 질서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떠안아야 할 과제가 된 적폐 청산은 결코 눈감고 가야할 과제는 아닙니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무조건적인 복종을 해온 책임 있는 지도자들의 그릇된 행태로 인해 우리 사회는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입니다. 그들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우리 모두가 통렬히 반성하고, 새 질서를 바로 잡아가야 하는 사명이 놓여 있습니다.

12월은 반성의 달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반성해야 할 사람들은 반성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성하여 청산해야 할 일들도 여전히 많이 쌓여 있습니다. 그 과제중 하나가 이번 성탄절 특사로 풀려나야 할 양심수 석방의 문제입니다. 38명의 양심수 전원 모두 석방돼, 잘못된 시대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이들이 성탄절 성스러운 날에 모두 풀려나길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따뜻한 양심수들이 가족의 품에서 올 겨울을 지낼 수 있게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