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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의 창’] 임나가 호남까지 차지했다고?
2017년 11월 02일(목) 00:00
조선총독부는 대한제국 강점 직후 ‘조선반도사 편찬위원회’를 설치해 ‘조선반도사’를 편찬했다. 조선총독부의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이 사업을 주도했는데, ‘반도사’라는 이름에 이미 한국사의 무대에서 대륙과 해양을 삭제하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개재되어 있다.

‘조선반도사’는 반도의 북쪽에는 한(漢)나라의 식민지인 한사군이 있었고, 남쪽에는 고대 야마토왜의 식민지인 임나일본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북쪽이나 남쪽이나 모두 외국의 식민지였으니 일제의 식민지가 된 것은 한국사의 당연한 귀결이자 일제의 한국 강점은 침략이 아니라 과거사의 복원이라는 강변이었다.

메이지시대 일본군 참모본부는 임나가 곧 가야라는 ‘임나=가야설’을 만들어 퍼뜨렸다. 현재 국내 상당수 고대사학자들이 추종하는 ‘임나=가야설’의 원산지가 한국을 점령한 일본군 참모본부였다는 뜻이다. 이들은 왜곡이 심하기로 정평 난 ‘일본서기’(日本書紀)를 가장 큰 근거로 삼고, 여러 사서의 단편적인 임나라는 기술을 아전인수해서 ‘임나=가야’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임나’의 강역이 계속 확장된다는 점이 주목된다.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는 ‘임나’를 지금의 경남 김해 일대라고 비정했는데, 이마니시 류는 이를 경북 고령으로 확장시켰다.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는 일본으로 쫓겨 간 후 저술한 ‘임나흥망사’(1949년)에서 임나를 전라도까지 확장시켰다. 강역이 고무줄처럼 늘어난다는 점에서도 자의적인 강역 추정임을 알 수 있다.

스에마쓰가 ‘임나’를 전라도까지 확장시킨 근거는 ‘일본서기’(日本書紀) 신공(神功) 49년(369년)조에 대한 제멋대로의 해석이었다. ‘일본서기’에 야마토왜에서 침미다례를 점령했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이 침미다례가 전남 강진이라는 논리였다. 스에마쓰는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침미다례를 전라도에 비정하기 위해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한국의 역사서와 지리지를 뒤졌지만 비슷한 지명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일본 열도에서 찾아야 할 지명을 전라도에서 찾으니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러자 스에마쓰는 기발한 착상을 했다. ‘침미다례’의 일본발음인 토무타레(トムタレ)를 가지고 전라도 지역의 옛 지명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삼국사기’ ‘지리지’ 무진주(武珍州)에 속한 군현 중에 도무군(道武郡:전남 강진)이 있었다. 그러자 스에마쓰는 ‘일본서기’의 침미다례가 ‘삼국사기’의 도무군이라고 강변했다. 스에마쓰는 ‘토무다레’에서 ‘다레’는 빼 버리고 ‘토무’만 남겨서 침미다례가 강진이라고 비정한 것이다. 이런 논리가 통하려면 근초고왕(재위 346∼375) 때 백제인들은 일본어로 말하고 썼어야 하지만 어차피 학문 논리가 아니니까 상관없었다.

이런 코미디 같은 지명 비정을 한국의 여러 고대 사학자들이 추종한다는 사실이야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에마쓰를 추종해 침미다례를 강진으로 비정한 학자가 최근까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였다. 이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국민 세금으로 발간한 ‘역주 일본서기’(전3권)를 보면 일본 국가기관인지 대한민국 국가기관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임나의 위치에 대해서 남한의 최재석·문정창·이병선·김인배·김문배 등 수많은 학자들이 한반도가 아니라 일본 열도 내에 있었다고 비정했다. 북한의 김석형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역주 일본서기’는 ‘임나=일본열도설’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완전히 무시하고 임나의 위치를 한반도 남부로만 비정했다. 참고 문헌에도 ‘임나=일본열도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저서·논문은 일절 수록하지 않았다. 역주자 7명이 모두 일본의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란 점은 차치하고라도 대한민국 세금 가지고 일본 극우파들의 역사관만 전파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약간의 상식만 있어도 식민사학이 우리 사회의 가장 오래되고 뿌리 깊은 적폐라는 사실 모두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새 정권이 과연 이 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는지, 많은 국민이 우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