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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서-김진구 우산중 교감]강산을 걷다
2017년 10월 10일(화) 00:00
연휴 전에 무등산을 다녀왔다. 4년 만이다. 마침 3학년 전체 130여 명이 가을 소풍을 중머리재로 간다기에 함께 나섰다. 예전에는 봄, 가을 두 번 소풍을 갔다. 지금은 대부분 학교에서 한 번은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로 대체하기에 한 번만 간다. 설레거나 기다림이 많이 느슨해 졌지만 그래도 소풍이다. 말 그대로 교정을 벗어나 유적이나 자연탐사, 놀이공원 등에 바람 쐬러 가는 날이다. 학년 전체가 움직이기도 하고, 학생 의견을 물어 반별로 영화관, 대학캠퍼스 등 다양하게 가기도 한다.

가을 초입이어서 산벚나무 몇 잎 노릇할 뿐 싱싱했다. 승속(僧俗)을 나누는 증심사 일주문은 그대로인데 옆으로 낸 시멘트길이 더 바쁘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인가? 담임 선생님과 학생들이 앞장서고 나는 맨 뒤에 따라갔다. 밖에 나와 이래저래 잔소리하는 것은 꼰대의 표본이다. 집을 나서면서 다짐했다. 오늘 하루는 있는 듯 없는 듯이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뒤처진 학생들을 달랬다. 내 역할이다. 파전, 막걸리, 백숙집은 추억처럼 흘러 아래로 이주하고 축대 이끼만이 흔적으로 남았다. 첫 쉼터 당산나무에서 몇 학생이 낙오다. 함께 간 학생부 선생님께 조치를 부탁했다. 평일인데도 무등산은 북적였다. 많은 등산객들이 대견하다며 학생들을 격려해 주었다. 중머리재는 민둥이 아니었다. 억새꽃과 학생의 웃음꽃이 어울려 피었다. 끼리끼리 먹은 점심, 모양은 김밥이로되 맛은 금밥이었다.

여고에서 근무할 때, 학생들에게 여고 시절의 잊히지 않는 낭만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몸은 강건하고, 마음은 따뜻하고, 삶은 더불어 함께하는 여고생이 되도록 가르치고자 했다. 소풍 제목을 ‘억새 핀 가을, 무등산 종주 등반’으로 했다. 17㎞, 7시간, 무등산 종주다. 주변에서 많이들 걱정했다. 뒷산도 안 가본 여고생이라고 했다. 걷기 싫어한다고, 몸이 약하다고, 위험하다고, 무리다고, 학업에 지장을 줄지 모른다고. 가정통신문을 보내 학부모의 동참도 안내했다. 여고생 딸과, 딸의 친구와, 딸의 담임선생님과 하루 내내 평생 잊지 못할 산행의 추억을 만드시라고 했다.

1학년 전체 285명, 행정실도 함께한 교직원 30여명, 학부모 80여명, 총 400여명의 교육 가족이 40개 조별 깃발을 나부끼며 산장에 모였다. 원효계곡을 저 건너에 두고 구절초 같은 하늘 아래 무등을 올랐다. 대열은 중봉을 감아돌아 억새밭 능선을 따라 장강처럼 흘렀다. 은빛 억새꽃과 맑은 여고생은 장관이었다. 서석대를 향한 숨결은 컥컥 막혔고, 대화는 끊겼다. 가파른 산길에 친구들과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서석대에 올라 시가지와 무진벌을 보면서 서로를 부여잡고 환호했다. 입석대를 지나 억새 물결 일렁이는 백마능선을 바라보며 장불재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후의 여정은 지공너덜, 규봉암, 억새평전, 꼬막재로 동북쪽 배사면의 느슨한 내리막이지만 길었다. 해는 기울고 다리는 풀렸지만 우리는 종주를 했다.

2학년 봄이 되면 ‘섬진강 강변 걷기’를 했다. 상처 입지 않고 남아난 강줄기. 고달에서 압록까지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면서 걸었다. 굽이진 강변을 친구의 손을 잡고 7㎞를 걸었다. 땡볕 아래지만 작년 무등산 종주에 비하면 평지의 산책이라고 했다. 무등산은 섬진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스스로 먼저 나약하다고 생각할 때 심신은 거기에 머물게 된다. 학생들은 나약하지 않았다.

다녀와서는 고개를 흔들었다. 쳐다보기도 싫다고 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마음속에 섬진강이 흐르고, 무등산이 솟고 있었다. 포기 직전에 부축해준 친구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수 만년 우리 곁에 솟아있고, 흘렀던 남도의 자연은 이렇게 교육 현장이 되었다.

이러한 체험 학습은 대입 면접이나 취업 면접 때 ‘저는 몸과 마음이 건강하니 기회를 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이유를 묻거든 ‘여고 1학년 때 무등산을 종주했고, 2학년 때에는 섬진강변을 걸었습니다. 여고 시절 조국의 강산을 걸었기에 내 몸은 강건하고, 지친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동행의 지혜를 얻었습니다. 나는 준비된 미래입니다.’고 대답할 것이다. 현명한 면접관은 합격시키지 않을까.

이 가을, 무등에 한 번 가보시지요. 생각보다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