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의 창’] 검찰 개혁은 선택 사항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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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의 창’] 검찰 개혁은 선택 사항 아니다
2017년 08월 31일(목) 00:00
박근혜 정권에서는 검찰에 대한 국민의 성토가 일상적이었는데, 현 정권 들어서 조금 잠잠해진 형국이다. 검찰을 믿어서가 아니라 현 정권이 공비처(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을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에 지켜보는 중일 것이다.

조선조 500여 년 동안 권력형 비리가 드물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대간(臺諫)이 제 기능을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사헌부를 대관(臺官), 사간원을 간관(諫官)이라고 하는데 두 기관을 아울러 대간(臺諫) 또는 양사(兩司)라 했다. 수사권·언론권·탄핵권이 있는 사헌부는 지금의 검찰과 비슷했고, 수사권은 없지만 언론권·탄핵권이 있었던 사간원은 지금의 감사원과 비슷했다.

조선의 기틀을 세운 삼봉 정도전은 ‘경제문감’(經濟文鑑)에서 대간(臺諫)은 천하제일의 인물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대관은 한마디로 단언하면 4∼5류에 불과한 사람들’이라면서 “이런 자들이 기세등등하게 대간에 늘어서 있으니 어떻게 일이 성사되겠는가?”라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정도전은 “그래서 그들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아도 나라 안팎에서 이미 그들이 천하의 제일류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의 대관도 한때는 지금의 검찰과 감사원처럼 4∼5류의 인물들이 늘어서 있었던 것이다.

정도전이 사헌부 관원인 대관(臺官)에 대해 가장 중시한 것은 위엄과 명망이란 뜻의 위망(威望)이었다. 정도전은 위망이 있는 자가 대관으로 있으면 종일토록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스스로 두려워 복종하지만 위망이 없는 자는 매일 백 번을 탄핵해도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망이란 어떻게 보면 자존심이다. 중국 송나라 때 소과경(蕭果卿)이 대관인 어사(御史)가 되자 승상 우윤문(虞允文)의 뜻에 따른 것이라는 소문이 났다. 소과경은 “우윤문이 자신을 가볍게 보고 어사를 주었다”면서 “나를 경멸함이 심하구나”라고 부끄럽게 여기고 가장 먼저 우윤문의 무리를 논박하자 사람들이 그 용기에 탄복했다. 이런 것이 바로 위망이고 자존심이다.

국민은 지금의 검찰을 힘없는 국민에게는 없는 죄도 만들어 내어 구속시키면서도 권력자나 재벌들에게는 있는 죄도 없는 것으로 만들어 풀어 준다고 보고 있다. 정윤회 문건 파동 때 검찰에 소과경 같은 인물이 있었다면 최순실 국정 농단이나 우병우의 권력 농단 사건 등은 존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율곡 이이는 ‘석담일기’에서, “조광조가 대사헌이 되어 법을 공평하게 집행하니 사람들이 모두 감복(感服)해서 그가 밖으로 나가면 시장 사람들이 말 앞에 모여들어, ‘우리 상전(上典:주인)이 오셨다’고 말했다”고 기록했다. 조광조가 중종 때의 부패한 공신 집단에 맞서 법전대로 법을 수행했기에 힘없는 백성들은 그를 주인으로 여겼던 것이다. ‘연려실기술’의 ‘관직전고’(官職典故)는 사헌부 관원이 “정색하고 조정에 서면 모든 관료가 떨고 두려워한다”고 전하고 있다.

정도전은 ‘경제문감’에서 “어사는 남을 책망하는 사람이니 마땅히 자기 자신도 책망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도전은 “어사가 스스로를 책망하지 않으면 천하의 책망을 얻을 것이다”라면서 “자신을 책망하기를 어렵지 않게 여겨야 남을 책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의 추상같은 사헌부 상(像)은 자신과 힘 있는 자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힘없는 국민들에게는 한없이 가혹했던, 지금의 검찰로서는 감히 바라지도 못할 모습일 것이다.

광복 72년이 지난 지금까지 검찰의 비리를 수사할 기관 하나 없는 나라가 어찌 나라인가? 조선에서는 사헌부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수사를 기피하면 사간원이 즉각 탄핵에 나서고, 지금의 공비처 격인 의금부가 즉각 사헌부 관원을 구속 수사했다. 사헌부의 권한은 막강했지만 그만큼 다른 기관의 견제를 받았다. 지금의 경찰 격인 포도청에도 수사권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지금 논의되는 공비처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제에 비하면 너무도 당연하다. 하루빨리 공수처가 설치되고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루어져 모든 기관들이 서로 견제하고, 그럼으로써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살아 있는 조항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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