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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묵 선덕사 주지] 다른 삶은 가능하다
2017년 06월 30일(금) 00:00
불교 경전에는 사람을 99명이나 살해하고 그 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를 만든 ‘앙굴리마라’라는 사람이 나온다.

아힘사는 헌신적이고 믿음이 깊은 젊은 수행자였다. 스승은 아힘사를 총애했고, 늙은 스승의 젊은 아내도 그를 좋아했다. 여인은 어느 날 스승이 외출한 틈을 타 아힘사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그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해버렸다. 자존심이 상한 여인은 스승이 돌아오자 아힘사가 자신을 욕보였다면서 찢어진 옷을 입고 울었다. 분노에 사로잡힌 스승은 아힘사에게 100명의 사람을 죽여 손가락 목걸이를 완성하면 윤회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연쇄살인마가 나타났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실라벌에 퍼졌다. 사람들은 그를 손가락 목걸이라는 뜻을 가진 앙굴리마라라고 불렀다. 연쇄살인마가 되어 99명을 죽인 앙굴리마라에게 석가모니가 다가갔다. 칼을 쥔 앙굴리마라가 다가오자 석가모니는 몸을 피했다.

앙굴리마라는 ‘거기 서시오’ 하고 외쳤다. ‘나는 이미 평화로움 속에 멈추었소. 멈추지 못하고 헐떡이는건 바로 당신이요.’ 앙굴리마라는 그 말을 듣고 털썩 주저앉았다. ‘앙굴리마라여, 우리 공동체로 갑시다.’ 석가모니는 앙굴리마라를 출가시켰다.

파사익 왕은 연쇄살인마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군대를 이끌고 거리로 달려왔다가 석가모니가 데려갔다는 말에 기원정사로 달려갔다. 석가모니의 안전을 확인한 왕은 앙굴리마라를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다.

석가모니는 옆에 조용히 앉아있는 스님을 가리키며 ‘왕이시여, 이제는 앙굴리마라는 없습니다. 이 스님은 과거에 앙굴리마라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우리 공동체의 비구승이 되었습니다’하고 말했다. 파사익 왕은 ‘국법으로는 사형을 시켜야 하지만 부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인정하겠습니다. 부처님은 참으로 길들이기 어려운 사람도 능히 길들이는 분입니다’하고 찬탄했다.

만약 석가모니가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나쁜 성품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거나, 파세나디 왕이 ‘한 번 살인자는 영원한 살인자’라고 생각했다면 앙굴리마라는 그 날 죽임을 당했을 것이고, 아라한을 성취한 성자 앙굴리마라는 없었을 것이다.

마가다국 왕자 아자타삿투는 데와닷타와 협력하면서 석가모니의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뒤 아버지 빔비사라왕을 죽게 만들었다.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후회한 아자타삿투는 석가모니의 제자가 되기를 청했고, 석가모니는 기꺼이 참회를 받아주었다.

아자타삿투는 석가모니의 사후 500명의 아라한이 모여 가르침을 모아서 전승하는 1차 결집을 후원함으로써 불교가 오늘까지 이어지게 하였다. 만약 석가모니가 과거의 행실을 문제 삼아 아자타삿투의 참회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이 칼럼도 없었을 것이다.

어제 없는 오늘은 없고, 오늘 없는 내일도 없지만 어제와 오늘이 같은 것은 아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삶은 가능하다. 열반경에서는 백정이 도끼를 손에서 놓고 곧바로 성불한다는 가르침까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그렇게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달리 보고 있지 않은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러나 아주 반듯했던 모범생은 커서 독일의 히틀러가 되었고, 사고뭉치 말썽쟁이였던 아이는 영국의 지도자 처칠로 성장했다고 한다.

장관 인사청문회가 순조롭지 않다. 숱한 과거사를 꺼내면서 그렇기 때문에 장관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은 부분적으로는 타당하지만 부분적으로는 부당하다. 그 사람을 평가하려면 과거를 보는 것 뿐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 무엇을 했는지도 봐야 하지만 무엇을 하려는지 보아야 한다. 과거에 누구와 함께 했는지 보아야 하지만 지금 누구와 함께 하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그렇게 보듯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게 볼 일이다. 과거의 가족사보다 그 일을 하기에 적합한 식견과 자질, 그리고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과거는 기억해야 하지만, 과거에 구속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