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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석 수필가·전 여천고 교장]강물처럼 흐르는 것이 인생이다
2016년 08월 24일(수) 00:00
불볕더위가 점령했던 8월도 끝나간다. 열대야 탓에 밤잠을 설치다가도 이른 아침이면 갓 태어난 새들의 울음소리에 눈을 뜨곤 한다. 땅 주인은 따로 있으나 아파트 베란다 앞쪽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푸른 숲은 모두 내 차지다. 건강에 좋다는 녹시율(綠視率)도 만점이다.

정년퇴직은 평생을 직장과 사회에 공헌한 사람들의 명예로운 인생훈장이다. 필자는 요즘 옛 동료들과 산행 후 담소를 나누며 유유자적하는 삶을 누리고 있다. 은퇴 후의 안락함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나이 들어갈수록 친구들과 어울려야 한다. 노년의 외로움은 치매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하지 않던가.

정신의학자들은 나이 들어 배우려 하지 않고 계속 익숙한 방식만을 고집하거나 현상유지를 바라는 심리상태가 노욕(老慾)을 부르게 된다고 지적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변화해가는 정보화의 흐름에 대해서도 눈감을 일이 아니다. 나이 들수록 더욱 질긴 관념의 끈으로 자신을 묶어놓고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간혹 학교에서 강의 요청이 오는 날이면 힘이 솟는다. 초롱초롱한 눈빛의 학생들과 교감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수명은 갈수록 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19세였다. 금세기 초까지만 해도 50세에 불과했던 것이 한 세기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선진국의 평균수명은 80세 안팎에 이르고 있다. 60여 년 전 긴 수염의 할아버지 회갑 사진을 떠올리며 격세지감에 잠긴다.

미국 여류작가 도티 빌링턴은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면 늙었다는 증거”라고 했다. 자기 생각과 다른 의견에 귀 기울이기보다 상대방의 의견에 토를 달지 못해 좀이 쑤시기 시작하면 나이 든 징조란다.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귀는 열어야 할 것이다. 백발이 나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지혜가 나이를 말한다고 하지 않던가. 지혜 없이 백발만 내세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젊은 날엔 나이가 들면 저절로 현명해지는 줄 알았다. 그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몸과 마음이 함께 늙어가야 한다. 나이는 육십이지만 마음은 삼십 대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건재함을 강조하는 말일 수 있으나 늙어서도 젊은이의 마음에 집착하다 보면 젊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이기적인 노인이 될 수도 있다.

인생이란, 앞 강물, 뒷 강물 하면서 흘러가다가 하구에 이르면 바다로 빠지는 게 자연스러운 이치다. “난 바다로 안 갈래” 하면서 버틸수록, 그게 웅덩이가 돼서 고이고 썩는다. 그러면 노년이 추해진다. 자연스럽게 강물 따라 흘러가 버리면 되는데 말이다. 17세기 영국 시인 존 밀턴은 노인이 걸리기 쉬운 병이 ‘탐욕’이라고 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은 3선에 대한 강한 유혹을 뿌리친 채 두 번째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구국의 일념’이라는 말로 장기집권을 획책할 수도 있었으나 워싱턴은 자신의 의지대로 권좌를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돌아간 최초의 사람이었다.

집착을 버려야 한다. 티베트 불교인 라마교에 “인생은 손님, 곧 떠날 준비를 하라”는 말이 있다. 세상은 내가 아니라도 젊은이들 중심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그렇게 너나없이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누구라도 흐르는 세월의 강물을 역류할 수 없는 것처럼.



* 은펜칼럼은 오피니언 기고 최우수작 수상자의 모임인 ‘은펜클럽’ 회원들의 칼럼을 싣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