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그러나 돌이켜야 하는
김 일 환
편집부국장
편집부국장
지난 달 광주일보 리더스 아카데미에서 강연한 트라우마 전문가 정혜신 대표는 말했다. 세월호의 유가족들은 4월 16일에 시간이 멈춰져 있다고, 하루 또 하루 그날의 악몽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또 우리와는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그들을 보듬어주라고.
세월호 사고 이후 7개월이 지났다. 벌써 2015년은 턱밑에 다가와 있다. 적지않은 사람들이 이제 세월호 이야기를 그만하라고 한다. 그만하면 됐다고도 말한다. 생각하고 쉽지 않다는 듯 그냥 기억의 저편에 묻어 두겠다고 한다. 그리고 뜨거웠던 분노는 쉬이 식어 버렸다.
2014년 대한민국 국민은 집단적으로 감정의 붕괴를 경험했다. 나이 어린 학생들이 시시각각 목숨을 잃어가는 참혹한 현장을 충격 속에서 목도했고, 재난에 대처하는 대한민국의 시스템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나를 똑똑히 보았다.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에서 매일매일 중계되는 통곡과 비극은 온 국민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겨졌다.
그리고 국민은 분노했다. 배를 내팽개치고 도망간 선장과 선원들, 실질적인 배의 주인인 유병언 회장과 그의 일가족, 재난매뉴얼은 뒷전인 채 구조에 안이했던 해양경찰 그리고 재난 관련 부처의 무능함까지 단죄의 심판대에 올랐다.
대통령은 직접 나서 국가 안전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했고, 해경 해체라는 초강수 카드도 꺼냈다. 여야는 선원법, 해운법, 해사 안전법, 선박안전법, 수난 구조법 등의 개정안인 ‘세월호 특별법’과 인사혁신처와 국민안전처를 신설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 그리고 대형사고 책임이 있는 회사나 개인에 재산을 몰수한다는 유병언법 등을 발의해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시켰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당장 실질적인 대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청와대와 정부는 국가를 개조하겠다는 약속을 수없이 했으나 가시적으로 보여준 것은 없다. 그사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국민적 합의는 여타의 이슈에 가려 뒷전으로 밀린지 오래다.
우리 사회의 ‘기억상실증’ 또한 깊어졌다. 안전 매뉴얼은 다시 서랍 속의 물건이 됐고 현장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했다. ‘안전 대한민국호’는 여전히 4월 16일에 머물러 고장 난 채 표류하고 있을 뿐이다.
당장 광주·전남지역의 예만 들어도 그렇다. 장성 요양병원 화재사건에 이어 잇단 교통사고와 담양 펜션 화재까지 대형사고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또 그때마다 안전을 외쳤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재래시장은 여전히 부실한 소방장비로 화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연안 여객선은 화물을 부실하게 결박한 채 운항 중이다. 서남해안을 운항하는 유람선은 구명동의를 묶어 놓은 채 불안한 항해를 하고 있으며 이를 관리하는 기관은 형식적인 감독으로 눈을 감고 있다. 사고만 나지 않았을 뿐 안전의식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언제부터 인가 우리 사회의 망각병은 거의 불치병수준이 되어버렸다. 버릇처럼 회피하고 쉽게 지워버리려는 악습이 깊게 뿌리내려있다. 가히 국민성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사고가 터지면 그때뿐이고 시간과 공을 들여 제대로 하기보다는 대충 얼버무려 하겠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이런 망각병이 또 다른 대형사고의 주범임에도 여전히 문제를 그대로 안고 사는데 익숙해져 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2015년을 목전에 둔 지금 다시 ‘세월호’로 돌아가야 한다. 진도 앞바다 바다밑 그 참담한 고통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 봐야 한다. 세월호에 탔던 295명이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고 아직도 9명은 저 바다밑에 있다. 그들의 아우성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
국가가, 우리 사회가, 국민 개개인이 다시 한 번 통렬한 자기반성을 통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애써 외면하려 했던 우리의 치부가 무엇이었는지 과감히 드러내고 무엇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하는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국가 안전시스템의 기본적 철학과 안전문화의 정착을 위한 토대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개조운동을 펼쳐보자는 것이다.
안전 대한민국의 골든타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2015년, 아니 그 다음해, 또 그 다음해도 우리는 불안의 그늘 속에 살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kih8@kwangju.co.kr
세월호 사고 이후 7개월이 지났다. 벌써 2015년은 턱밑에 다가와 있다. 적지않은 사람들이 이제 세월호 이야기를 그만하라고 한다. 그만하면 됐다고도 말한다. 생각하고 쉽지 않다는 듯 그냥 기억의 저편에 묻어 두겠다고 한다. 그리고 뜨거웠던 분노는 쉬이 식어 버렸다.
대통령은 직접 나서 국가 안전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했고, 해경 해체라는 초강수 카드도 꺼냈다. 여야는 선원법, 해운법, 해사 안전법, 선박안전법, 수난 구조법 등의 개정안인 ‘세월호 특별법’과 인사혁신처와 국민안전처를 신설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 그리고 대형사고 책임이 있는 회사나 개인에 재산을 몰수한다는 유병언법 등을 발의해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시켰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당장 실질적인 대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청와대와 정부는 국가를 개조하겠다는 약속을 수없이 했으나 가시적으로 보여준 것은 없다. 그사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국민적 합의는 여타의 이슈에 가려 뒷전으로 밀린지 오래다.
우리 사회의 ‘기억상실증’ 또한 깊어졌다. 안전 매뉴얼은 다시 서랍 속의 물건이 됐고 현장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했다. ‘안전 대한민국호’는 여전히 4월 16일에 머물러 고장 난 채 표류하고 있을 뿐이다.
당장 광주·전남지역의 예만 들어도 그렇다. 장성 요양병원 화재사건에 이어 잇단 교통사고와 담양 펜션 화재까지 대형사고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또 그때마다 안전을 외쳤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재래시장은 여전히 부실한 소방장비로 화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연안 여객선은 화물을 부실하게 결박한 채 운항 중이다. 서남해안을 운항하는 유람선은 구명동의를 묶어 놓은 채 불안한 항해를 하고 있으며 이를 관리하는 기관은 형식적인 감독으로 눈을 감고 있다. 사고만 나지 않았을 뿐 안전의식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언제부터 인가 우리 사회의 망각병은 거의 불치병수준이 되어버렸다. 버릇처럼 회피하고 쉽게 지워버리려는 악습이 깊게 뿌리내려있다. 가히 국민성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사고가 터지면 그때뿐이고 시간과 공을 들여 제대로 하기보다는 대충 얼버무려 하겠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이런 망각병이 또 다른 대형사고의 주범임에도 여전히 문제를 그대로 안고 사는데 익숙해져 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2015년을 목전에 둔 지금 다시 ‘세월호’로 돌아가야 한다. 진도 앞바다 바다밑 그 참담한 고통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 봐야 한다. 세월호에 탔던 295명이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고 아직도 9명은 저 바다밑에 있다. 그들의 아우성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
국가가, 우리 사회가, 국민 개개인이 다시 한 번 통렬한 자기반성을 통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애써 외면하려 했던 우리의 치부가 무엇이었는지 과감히 드러내고 무엇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하는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국가 안전시스템의 기본적 철학과 안전문화의 정착을 위한 토대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개조운동을 펼쳐보자는 것이다.
안전 대한민국의 골든타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2015년, 아니 그 다음해, 또 그 다음해도 우리는 불안의 그늘 속에 살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kih8@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