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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상시, 찌라시 … 레임덕?
장 필 수
정치부장
2014년 12월 10일(수) 00:00
요즘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정윤회 문건으로 촉발된 비선실세들의 국정개입 논란일 것이다. 비선(秘線)은 정당한 조직에 몸담지 않은 사람들을 통해 이뤄지는 계통 구조를 말한다. 비선이 살아 움직일 때 조직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청와대에서 유출된 문건은 비선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정윤회씨와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씨를 지칭하고 있다. 두 비선 핵심들이 자신들을 따르는 청와대 비서관들을 통해 국정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십상시(十常侍)’라는 용어도 등장한다. 정윤회씨가 비서관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국정을 논의한 것을 두고 국정을 농단한 중국 후한 말 10명의 환관에 빗댄 것이다.

십상시가 청와대 문건에 공식적으로 등장하면서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이 정치권을 떠나 온 국민들의 관심사가 된 형국이다. 사람 몇만 모이면 십상시의 좌장격인 ‘장양’이 누구라는 둥 비선실세와 십상시를 대비해 보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해명을 했지만 파장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 문건을 ‘찌라시’라고 표현하면서 국민들의 관심만 증폭시킨 측면이 있다.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 찌라시라니.

찌라시는 ‘지라시’라는 일본어에서 유래됐다. ‘뿌리는 것’ ‘광고를 위해 배포하는 인쇄물’이란 뜻이다. 우리는 흔히 찌라시라고 발음하는데 신문에 끼워져 배달되는 전단지나 길거리에 뿌리진 종이쪽지를 말한다. 좀더 은밀하고 고급스런 정보라는 측면에서 보면 증권가 정보지를 찌라시라고 한다.

증권가 정보지로서의 찌라시는 정보의 진위 여부를 떠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국회 보좌진이나 기업 정보팀, 경찰·국정원 등 정보기관 관계자들이 만들어 요즘은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 SNS로 유통되다 보니 기존 소비자인 대기업이나 증권가, 정치권은 물론 일반인에게까지 급속도로 퍼지는 특성이 있다.

대통령이 8일 여당 의원들과의 오찬에서 “찌라시에 나오는 얘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흔들리지 마라” “여당에서 중심을 잘 잡아달라”고 주문한 것도 이런 무서운 전파력을 차단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찌라시는 ‘루머 등을 모은 거짓정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포석이지만 국민들의 의혹이 해소될지는 미지수다.

정치인들은 출처를 밝히기 곤란한 정보나 부정확한 정보를 찌라시에서 얻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일부를 열람하고 공개한 혐의로 지난해 검찰 조사를 받자 “찌라시 형태로 대화록 일부라고 하는 문건이 들어와 참고했다”고 말했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도 지난해 고 노무현 대통령이 차명계좌가 발견돼 자살한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조사를 받자 출처를 찌라시라고 했다.

문제는 정치인들의 찌라시 발언에 대해 국민들이 그들의 의도와 달리 은밀한 정보가 사실일 거라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는데 있다. 그렇게 된데에는 정치나 국정에 대한 신뢰가 없는 탓이 크다. 정치인들의 말이 나중에는 거짓으로 드러나고 찌라시 정보가 시간이 지나면 사실로 확인되는 사례를 보아온 결과다.

올 여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병언 사건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얼마나 깊은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순천에서 발견된 사체가 유병언이라고 발표했을 때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지금도 미스터리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검경의 초동수사 실패지 정부 탓도 아닌데 억울할 일이다.

지금이라도 찌라시 정국을 타개할 방법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소통에 나서는 것이다. 꿀먹은 여당 지도부 대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초·재선 의원과 야당 지도부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듣고 청와대 말단 비서관에게 귀를 여는 자세가 필요하다.

레임덕은 정권 말기에만 오는 것이 아니다. 의사 소통이 막히고 그로 인해 신뢰가 무너지면 언제든지 올 수 있다. 다행히 3년 이란 시간이 남았다. 시계추를 돌릴 시간은 충분하다.

/bungy@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