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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생’과 새정치연합
임 동 욱
서울취재본부 정치부장
2014년 11월 26일(수) 00:00
최근 드라마 ‘미생(未生)’이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케이블채널 드라마로는 드물게 5∼7%를 넘나드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매회 화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드라마 ‘미생’은 종합상사에 입사한 주인공의 분투를 한 판의 바둑에 빗대어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계약직과 워킹 맘, 성 차별, 상하관계, 사내 정치 등 고달픈 직장 생활의 현실을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신랄하게 담아내고 있다.

바둑과 세상사의 철학이 적절하게 스며 미생 속의 대사들은 온-오프 라인에서 ‘어록’으로 만들어질 만큼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드라마의 제목인 ‘미생’은 바둑 용어로, 집이나 대마 등이 살아있지 않은 상태지만 추후 사석(死石)이 되지 않고 살아날 여지가 있는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 미생의 대척점에 있는 바둑 용어는 완생(完生)으로 독립적으로 두 집을 형성, 죽지 않는 상태를 지칭한다.

즉, 드라마 미생은 ‘미생과 완생’이라는 바둑의 설정을 통해 고달프고 힘든 생활 속에서도 삶의 목표를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직장인들의 희망과 분투를 담고 있다.

이러한 ‘미생’의 이야기는 새정치연합의 현실과 미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많다. 우선 새정치연합의 정치적 상황이 말 그대로 ‘미생’이다. 제1야당으로서 정권 탈환이라는 정치적 ‘완생’을 노리는 새정치연합의 현실은 정치 권력을 획득하려는 집단인 정당의 관점에서 보면 ‘미생’의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의 현실은 암울하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잇달아 패배하고도 해묵은 계파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각종 현안마다 충돌하고 갈등하면서 스스로의 정치적 역량을 축소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제1야당의 지지율이 10%대 후반에 머물고 호남 민심 이반은 새정치연합의 남루한 현실을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미생의 위치마저 지키지 못하고 정치적 곤마(困馬·살아남기 어려운 돌)로 전락하지 않느냐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내년 2·8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내외에서는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새로운 리더십을 계기로 정권 창출의 역량이 결집되기 보다는 ‘계파 전쟁’으로 인한 후폭풍으로 분당 등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권 내외에서는 전대 이후 분당론이 꾸준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서로 보듬고 도와가며 완생으로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드라마 미생은 새정치연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둑에서 미생과 완생의 차이는 한 집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바둑의 승패도, 정치적 완생도 반 집 차이로 갈리는 경우가 많다.

과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도 39만 표(1.9%), 57만 표(2.3%)라는 초박빙의 승부에 의해 창출됐다. 이 같은 초박빙 반 집 승리는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다. 대선이라는 바둑판 곳곳에서 수많은 돌들이 완생을 위해 한 수 한 수 힘을 다해 부딪치고 때로는 망설임 없이 희생하는 과정 등을 통해 나온 결과다.

지난 주 드라마 ‘미생’에서 프로 바둑기사 지망생 출신의 주인공은 “정말 안타깝고 아쉽게도 반 집 차이로 바둑을 지게 되면 이 바둑돌들이 다 뭐였나 싶었다. 작은 사활 다툼에 이겨봤자, 기어이 패싸움에서 이겨봤자, 결국 지게 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고 독백한다.

그는 이어 “하지만 반 집이라도 이겨보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 살아준 돌들이 고맙고 한 수 한 수가 귀하기만 하다. 순간순간의 성실한 최선이 반 집의 승리를 가능케 한 것”이라며 “순간을 놓친다는 건 전체를 잃고 패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언제부터 순간을 잃게 된 겁니까”라고 묻는다.

‘언제부터 순간을 잃게 됐느냐’는 질문은 두 번이나 대선에서 패배한 새정치연합에게 던지는 날카롭고 아픈 한 수가 된다. 언제부턴가 새정치연합은 정권 창출은 뒷전이고 정치적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드라마 ‘미생’의 인기 비결은 고달픈 인생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다. 이를 통해, 바둑판의 작은 돌이자 미생의 삶을 살고 있는 대중들이 위안을 얻고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이 ‘완생’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고달픈 민생과 함께 호흡하며 시대와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내년 2·8 전당대회가 철지난 노선 투쟁과 계파 간의 이해관계를 벗어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드라마 미생의 슬로건이 ‘그래도 살만한 인생’이듯 새정치연합도 ‘그래도 지지할 만한 정당’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tu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