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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 목포대 국어국문학과] 목포대 재능 기부 강연회 '울림'을 아시나요?
2014년 09월 16일(화) 00:00
대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한 번 쯤 꿈꿨던 적이 있었다. 하얀 와이셔츠를 걷어 올리고 굵은 땀을 닦아내는 남자 선배, 그가 볼펜을 물어뜯던 앵두 같은 입술로 내 이름을 불러주는 상상. 내가 모르는 시험 문제를 알아서 척척 가르쳐줄 것 같은 대학 선배에 대한 환상은 언제나 그렇게 내 대학생활 전반에 녹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1학년 땐 선배들의 손짓에 이리저리 술자리를 찾아다녔고, 2학년 땐 F학점을 면하려고 출석체크를 하기 위해 바지런히 뛰어다녔다. 20대는 창의적인 생각의 완전체라고 했지만, 나만큼은 그렇게 태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똑같은 일상. 낮에는 수강이라는 명목의 잠을 잤고, 밤에는 해가 뜰 때까지 술을 마시러 다녔다.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이것은 술병으로 아파하는 철없는 스무 살에 불과했다.

대체 난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생각하던 즈음. 찾았다, 특이한 것을! 대학교 방송국에서 생활하던 내게 “‘울림’을 함께 만들어보지 않겠어요?”라는 제안은 확실히 인상 깊었다. 오름목. 울림이라는 강연회를 만들어가는 단체 이름은 그야말로 올라가보자는 취지의 이름, ‘오름목’이었다.

오름목은 말 그대로 학생들의 자치기구다. 동아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총학생회도 아닌 어정쩡한 단체. 학교의 지원금이란 명목 돈도 일절 받지 않았다. 학생 스스로 강연회를 기획하고 완성시켜보자는 것이 오름목의 다부진 포부였다. 울림은 목포대학교 학우들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강연회였다. 늘 강연이라고 하면 지식이 풍부하거나 사회경험이 많은 사람이 하기 마련인데, 그 틀을 깨보자는 것이다. 오름목의 제안에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YES’를 외쳤다.

울림은 한 학기에 2번 진행됐다. 강연자는 많게는 3명, 적게는 2명으로 이뤄졌다. 강연에 필요한 금액은 후문 상가를 찾아가 사장님을 설득해 마련했다. 그러다보니 겨우 강연회에 맞춰 예산이 만들어졌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돈이라도 벌지, 이건 돈도 받을 수 없고, 학기 중 내내 바쁘기만 했다. 출석체크는 해왔던 강의시간도 지각하기 일쑤고, 일을 할 때마다 땀을 쭉쭉 빼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이런 날더러 바보 같다고 했다. 2시간 알바하면 만원이라는 공돈이 떨어지는 세상에, 사람들은 나더러 시간을 버린다고 했다.

하지만 오름목 멤버로 들어온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오름목은 내게 대학생활의 로망을 채워주기에 충분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었다. 오름목은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그들은 수업을 빼기도 하고, 레포트를 깜박하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것은 울림을 끝내고 나면 마법처럼 사라지곤 했으니까. 울림을 보러온 학우들로부터 쏟아지는 수많은 박수갈채. 그 사이에 두 손 꼭 잡고 대중들을 향해 인사를 하는 오름목에게 자부심과 성취감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어느 누가 대학에 들어와 후문 사장님께 기획서를 들이밀어 보고, PD처럼 무대를 구성해보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학우들의 이야기를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오름목에 들기 전에 나는 겁쟁이었다. 방향도 잃고 검은 비닐봉지처럼 하늘에 아무렇게나 나부꼈다. 그랬지만 울림을 기획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나는 바뀌었다. 시간은 물 흐르듯 지나갔고 그렇게 겨울이 왔을 때, 4학년이 문을 두드렸다. 이제 취업을 해야 한다고 내게 손짓했다. 이제 나는 오름목에서 벗어나 이전에 없던 용기와 포부로 다른 세상에 문을 두드리려 한다. 열정이라는 이 한 단어가 만들어낸 기적. 대학생들이 꾸며놓은 가슴 울리는 강연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