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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릴에서 비엔날레를 보다
2014년 06월 11일(수) 00:00
프랑스 파리에서 테제베(TGV)를 타고 북쪽으로 1시간 정도 달리면 인구 24만 명의 중소도시 릴(Lille)이 나온다. 우리에겐 동화 ‘플란다스의 개’로 잘 알려진 플랑드르의 중심지다. 산업혁명이 절정으로 치닫던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릴의 석탄공장 굴뚝에선 연기가 멈추지 않을 정도로 번성을 누렸다. 하지만 릴의 ‘봄날’은 오래 가지 않았다. 많은 공장이 동유럽 등으로 옮겨가면서 ‘잘나가던’ 공업도시는 급속히 쇠락해 갔다. 1990년대에는 당시 인구 17만 명 중 3만여 명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대도시로 떠났다. 이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동네’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도 달았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릴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문화도시’가 됐다. 바로 유럽문화수도 덕분이다. 지난 1985년 그리스의 멜리나 메르쿠리 문화부 장관의 제안으로 세상에 나온 유럽문화수도는 EU가 매년 1∼2개 도시를 순번제로 지정해 유럽의 문화 허브로 키우는 프로젝트다.

지난 2004년 유럽 문화수도로 선정된 릴은 ‘릴 2004 프로젝트’를 통해 회색도시를 되살려 냈다. ‘릴 2004’의 조직위원회는 낡은 설치물들을 예술작품으로 리모델링해 도시를 거대한 미술관으로 바꾸고 빈 공장이나 상가는 예술가들의 아틀리에로 재활용했다. 그 결과 1년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들었고 5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대도시로 떠났던 1만3000여 명이 되돌아왔다.

기자는 최근 ‘말로만 듣던’ 릴의 성공신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기회를 가졌다. 본보에 연재중인 ‘도시재생, 문화가 해법이다’를 취재하기 위해 들른 릴은 기대 이상이었다. ‘2004 프로젝트’가 폐막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도시 곳곳에선 그해 축제의 현장들이 잘 보존돼 있었다 프랑스에서 루브르 미술관 다음으로 규모가 큰 릴 미술관에는 관람객들로 넘쳐나고 구시가지의 낡은 건물을 개조한 갤러리에는 젊은 작가들의 아트마켓이 열렸다. 특히 2004 릴 프로젝트의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유럽역 앞 광장에 설치된 일본 작가 구사마 야요이의 ‘샹그리라의 튤립’ 조형물은 릴의 제1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작가 특유의 물방울 무늬와 화려한 색채가 어우러진 6m 높이의 조각작품은 삭막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조형물만이 아니었다. 이 거대한 예술작품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민들의 일상이 그 어떤 ‘명작’보다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릴의 곳곳에 자리한 ‘2004 프로젝트’의 분신들은 시민들의 쉼터이자 사랑방으로 각광받고 있었다.

릴의 사례는 올해로 창설 20주년을 맞는 광주비엔날레를 되돌아 보게 한다. 언제부턴가 일회성 이벤트처럼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있는 비엔날레의 현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축제가 끝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때’의 감동을 누리고 있는 릴 시민들이 새삼 부럽다. ‘2004 릴 프로젝트’의 시계는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