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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산가족상봉, 순수한 인도주의적 접근 필요
홍 기 수
㈔겨레하나되기운동연합 광주·전남 본부장
2013년 12월 10일(화) 00:00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의 아픔과 큰 상처를 딛고 지난 67년 동안 정치적, 경제적으로 괄목할만한 눈부신 성장을 이뤄왔다.

세계 수많은 나라들이 이웃처럼 서로 가깝게 오고 가면서 서로의 거리를 좁혀 가고 있는 지금 여전히 한반도만은 혈육이 서로 나뉘어 진 채 생사도 알 수 없는 분단의 장벽이 높게 자리 잡고 있으며, 그로 인한 아픔과 슬픔은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1945년 분단과 1950년 전쟁으로 인해 남북분단이 고착화되면서 이산가족이 발생했고, 1953년 휴전 이후에도 납·월북, 탈북 등으로 가족 이산은 계속됐다.

그 수는 남북한을 합해 약 1000만 명이며, 중국에 약 200만 명의 교포, 러시아에 약 40만 명의 교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적십자회담이 여러 차례 진행되면서 남북 양측은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등을 협의했고, 1985년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으로 역사적인 첫 상봉이 이뤄졌다. 첫 상봉 이후 15년이 지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결과가 발표된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이산가족문제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로 합의했고, 이후 남북적십자회담이 개최돼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생사·주소 확인, 서신교환 등 시범적 사업이 논의됐다. 그리고 2000년 8월 역사적인 제1차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이 성사됐다. 또한, 2005년 8월 15일에는 분단 후 처음으로 서울과 평양, 그리고 평양과 인천·수원·대전·대구·광주·부산 등 남쪽 도시를 서로 연결한 화상상봉이 이뤄졌다. 2010년까지 총 18차의 방문상봉이 이뤄졌고, 그리고 2005년 8월 15일 제1차 화상상봉을 시작으로 2007년 11월 15일 제7차 화상상봉에 이르기까지 총 7차례에 걸쳐 3748명의 이산가족이 행복한 만남을 가졌다.

그러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2010년 말 터진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중단된 상태이며 크나큰 충격에 휩싸인지 벌써 3주년이 되었다.

전쟁 이후 67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생명은 유한한데 앞으로 10여 년만 지나면 월남한 1세대는 거의 사망한다고 보면 죽기 전에 고향 선영에 가서 그동안 불효를 용서하시라며 조상님께 술 한잔이라도 올리고 싶은 것이 이분들의 소박한 심정일 것이다.

지난 추석 전 남북자유상봉 대상자 각각 100명씩 선정자 중 21명은 건강 등의 문제로 자유상봉을 포기해 최종적으로 96명으로 추려졌고, 부모, 형제, 자매, 부부, 자식 등 꿈에 그리던 가족상봉 재회의 기쁨을 오매불망 손 꼽아 기다렸으나 지난 9월 21일 돌연 북측의 일방적인 자유상봉 연기통보로 그들은 지금 큰 슬픔과 좌절에 빠져있다.

이처럼 이산가족 문제는 1세대의 고령화 및 사망으로 시기적으로도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 긴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과 북의 이산가족문제는 국가적 개인적 차원에서 남북관계의 다른 어떤 사안보다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인도적 차원의 문제이면서 남북한의 사회문화적 통합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은 국가의 책무이자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며, 앞으로도 계속 풀어가야 될 숙제이다. 이산가족들이 원할 때 언제든지 자유롭게 만날 수 있어야 하고 지속적으로 서신 교환도 할 수 있어야한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가깝고도 먼 고향을 바라보면서 헤어진 가족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한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슬프고 안타깝다. 우리 모두는 이산가족들의 자유로운 상봉이 빠른시일 내에 꼭 이루어지길 기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