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황재형과 최민식
김 미 은
문화1부장
2013년 11월 20일(수) 00:00
며칠 전 화가와 인터뷰를 하고 돌아온 후배 기자가 그림 한 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참을 바라본 초상화의 눈동자에 가슴이 뭉클했다”고 하더군요. 인터뷰 기사에서도 인상적인 대목이 많아 꼭 한번 가봐야겠다 싶었습니다.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에서 열린 ‘광부화가’ 황재형(61)의 전시 ‘삶의 주름, 땀의 무게’(12월8일까지) 개막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그가 “길에 쓰려져도 누군가 집에 데려다 줄 것 같다”고 이야기한 고향에서 35년 만에 여는 전시였습니다. 스물 일곱 아내, 한 살 짜리 아들과 함께 강원도 태백 탄광으로 떠난 게 1981년, 서른 한 살이었습니다.

전시회장에서 후배가 말한 그림 ‘아버지의 자리’를 한참 동안 바라봤습니다. 많은 이들의 발길이 가장 오래 머무른 곳도 바로 그 작품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사진인가 싶습니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굵은 주름살과 굳게 다문 입술, 까칠한 수염.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눈망울은 좀처럼 잊히지 않습니다.

이 그림 옆에는 항상 안쓰럽게 아들,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를 그린 대형 작품 ‘존엄의 자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모델은 가장 많이 고생한 화가의 큰어머니라고 동행한 후배가 알려줬습니다.

‘아버지의 자리’ 모델은 누굴까 궁금하던차 한 남자가 도록을 들고 그림을 체크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관계자인 듯 싶어 사진 속 모델이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태백의 광부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평생 석탄을 캐다가 진폐증을 앓아 시한부 인생을 통보받은 늙은 광부였습니다. 저 광부의 얼굴에 세상 아버지들의 얼굴이 모두 담겨 있어 화가가 모델로 선택했다는 겁니다.

대답을 해 준 이는 당시 한 살 짜리 ‘화가의 아들’이었습니다. 사진작가인 그는 이번 전시 도록에 실린 사진을 촬영했고, 작품을 보며 도록 상태를 점검하는 중이었죠.

아들은 이 그림을 제작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아버지를 많이 이해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자신 역시 요즘의 아들, 딸처럼 아버지와 깊이 소통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화가로서의 아버지와 달리, 아버지로서의 아버지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답니다.

아마도 이 작품에 사람들이 오래 머물다 가는 건 화가의 아들과 조금은 비슷한 마음을 갖기 때문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가 중앙대 3학년 때 그린 ‘황지 330’도 인상적입니다. 1980년 황지탄광 갱도 매몰 사고로 사망한 김봉춘씨의 작업복을 극사실주의로 그린 작품입니다. 헤진 쌍방울 메리야스와 ‘황지 330’이라고 적힌 명찰이 선명합니다.

그밖에 전시회를 기획한 변길현 학예사가 “나는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과장의 수사인 줄만 알았다. 황재형의 그림을 보기까진 말이다”라고 고백하게 만든 작품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이날은 화가의 오래된 팬을 자처한 장사익씨의 공연도 있었습니다. 처음 화가의 그림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는 그는 화가를 ‘태백산에 사는 커다란 호랑이’로 소개하더군요. 그가 부르는 절절한 ‘봄날은 간다’를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는 호사도 누렸습니다.

다음날 만난 건 ‘소년’과 ‘소녀’들이었습니다. 광주 롯데갤러리에서 열리는 ‘소년시대’(12월 11일까지)전은 50년간 인간을 찍어온 ‘길 위의 작가’ 최민식의 작품을 만나는 전시입니다. 1960∼90년대 사진들로 추억에, 회한에 젖게 하는 작품들입니다.

백화점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인터라 아이들과 함께 찾아오는 어른들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사진 속 ‘어린이’들에 대해 이것 저것 물으며 재잘대더군요. 전 저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이와 동행했는데 그는 “마음이 아리면서도 따뜻하다”고 했습니다.

황재형과 최민식. 두 사람 다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밝힌 작가들입니다. 가난한 우리 이웃이 그들의 작품 소재였고, 그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봤습니다. 우연찮게도 두 사람은 ‘소년’과 ‘노인’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화가는 개막식 인사에서, 사진작가는 올해 2월 세상을 떠나기 전 준비한 전시회 서문에서.

어쩌면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시절에 왜 이런 그림과 사진을 권하느냐고 이야기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전시회장에 들어서면 가슴을 건드리는 작은 무언가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침 오늘 문화면에 최민식 선생의 사진작품들이 실렸네요. 글을 쓰면서 이 지면에 제 글 대신 황재형의 ‘아버지의 자리’를 실었다면 구구절절 글이 필요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들 전시회에 꼭 한번 가보셨으면 합니다.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