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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을 위한 변명
2009년 12월 07일(월) 00:00
“나가자, 조국의 아이들이여/ 영광의 날이 왔도다/ 우리들 앞에/ 폭정의 피묻은 깃발이 서 있다/ 들리는가, 저 흉포한 군사들의 사나운 소리가/ 그들은 우리의 품안에까지 쳐들어와/ 우리 아이들과 아내의 목을 베고/ 우리 밭을 유린할 것이다/ 무기를 들어라 시민들이여/ 나아가자!/ 놈들의 더러운 피로/ 우리 밭고랑을 적시자.”(‘라 마르세예즈’ 1절)

1792년 4월20일 프랑스는 혁명에 간섭하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에 선전포고를 했다. 닷새 후인 4월 25일 선전포고령을 지니고 파리를 떠난 전령이 스트라스부르시에 도착했다. 라인강을 사이에 둔 프랑스군과 프로이센군은 일촉즉발 상태였다. 그날 밤 스트라스부르시장 프레데리크 디트리슈는 공병 대위 루제 드릴을 찾아와 이튿날 적진을 향해 떠날 프랑스 군대를 위해 군가를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대위는 밤을 새워가며 혁명가요를 만들었다. 바로 ‘라 마르세예즈’다. 이 노래가 ‘라 마르세예즈’(마르세이유 군대의 노래)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석 달쯤 뒤였다. 그해 7월2일 마르세이유를 출발한 500명의 지원병이 이 노래를 부르며 파리교외를 지나갔다. 군인들의 출전을 보기 위해 거리로 나온 파리 시민들은 처음 들어보는 힘찬 멜로디에 감동돼 이 노래를 ‘라 마르세예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뒤 이 노래는 프랑스군과 함께 유럽 구석구석을 누비며 혁명의 이상을 뿌렸다.

라 마르세예즈는 1795년 7월14일 프랑스 공화국의 국가로 선포됐다. 하지만 혁명과 공화국의 이념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나폴레옹 제정시대, 제3제정시대에는 금지곡으로 묶였다. 제3공화국 시절인 1879년 다시 햇볕을 본 라 마르세예즈는 현재까지 프랑스 국가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동안 5·18 기념행사에서 추모곡으로 애창됐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5월 기념곡의 자리를 내줘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최근 국가보훈처가 내년 광주 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아 국민공모를 통해 새로운 ‘오월의 노래’(가칭)를 제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숨진 윤상원과 그 한해 전인 1979년 세상을 떠난 노동자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을 다룬 ’빛의 결혼식’의 한 부분이다. 문화운동가 김종률씨가 이 영혼결혼식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곡했고, 가사는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에서 따왔다.

보훈처는 국가기념일의 공식 기념곡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이 사업을 추진했다고 밝혔지만, 그 배경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0월 행정안전부가 공무원 노조행사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포함된 민중의례를 금지한 전력이 있어서다. 일각에선 반정부 시위현장에 울려 퍼졌던 운동가를 대통령이 따라 불러야 하는 곤혹스러운 속사정에서 나온 궁여지책이라는 분석도 있다.

‘라 마르세예즈’가 원색적이고 호전적인 가사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국가로 애창되는 것은 노래가 지닌 역사성이다. 시민과 군인들의 희생으로 얻은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그 어떤 노래 보다도 가장 생생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5·18 기념곡이 ‘임을 위한 행진곡’의 역사성과 대중성을 얼마나 담보해낼지 지켜볼 일이다.



/문화생활부장·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