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주노동자의 누나로…“더불어 따뜻한 세상 꿈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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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이주노동자의 누나로…“더불어 따뜻한 세상 꿈꿔요”
새해 희망 키워드 <3>공존
임세미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쉼터 팀장
쉼터의 베푸는 진심에 공감 합류
하루 7~8명, 연간 2000명 이용
갈 곳 잃은 노동자들의 ‘친정집’
노동·체류 상담·병원 진료 도움
“고마운 쉼터로 기억해 주면 만족”
2026년 01월 06일(화) 20:05
6일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쉼터에서 임세미(왼쪽) 팀장이 쉼터에 머물고 있는 스리랑카 국적 다린두씨와 상담을 하고 있다.
“수십 년간 외국인 노동자들과 지내다 보니 어느새 가족이 됐어요. 함께 잘 지내다 모국으로 돌아갔을 때 ‘참 고맙고 따뜻한 쉼터였다’고 기억해준다면 더 바랄 게 없죠.”

임세미(여·64)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부설 단기쉼터(이하 쉼터) 팀장은 올해도 외국인 노동자들과 공존하며 함께 사는 행복이 가득한 해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공(公)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베푸는 쉼터 설립자 이철우 목사의 진심에 공감해 합류한 지 어느덧 20년. 소명의식으로 시작한 일이 삶의 일부가 됐다.

임 팀장은 이곳 쉼터에서 해고,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으로 일터를 잃고 갈 곳이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머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노동·체류 상담, 병원 진료 연계 등 쉼터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전반을 책임지며 그들과 공존하는데 힘쓰고 있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쉼터에는 가봉, 방글라데시, 인도, 네팔, 동티모르 등 12개국 출신 노동자들이 오갔다. 연간 평균 이용자는 2000명에 달하고, 하루 평균 7~8명이 머문다. 최근에는 스리랑카 국적 노동자들의 비중이 높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쉼터는 365일 문이 열려 있는 ‘친정집’이다. 평일에는 일자리를 알아보고, 주말에는 쉬러 들르는 이들도 많다.

노동자들은 임 팀장을 ‘노나’라고 부른다. 스리랑카어로 존경의 의미를 담은 말로, 누나라는 애칭처럼 쓰인다.

임 팀장은 “‘노나’라는 말이 여전히 부끄럽다. 처음에는 내가 이 친구들을 돌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성숙해졌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임 팀장에게 외국인 노동자들은 가족같은 존재다.

임 팀장은 “과거 머물렀던 ‘사만’이라는 친구가 미국에서 한국 기업 통역하며 성공했다고 연락이 왔다”며 “오갈 데 없는 우리한테 잘해준 걸 잊을 수가 없다고 울먹이면서 ‘성공했으니 미국 여행 오라’고 하는데 나도 눈물이 났다. 그저 고마웠다”고 말했다.

다친 발이 부끄럽다며 숨기던 노동자의 발을 마사지해주고 파스를 붙여줬을 때 눈물을 흘리던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 처우가 더 열악했던 십수 년 전에는 욕설과 부당한 대우를 참지 못해 회사에 직접 찾아가 항의하기도 했다. 이들의 코리아드림이 깨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는 그는 내 자식 일처럼 앞장서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회사에 찾아가 이주노동자들의 절박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최근 벽돌공장 외국인노동자 사건을 본 임 팀장은 속상하고 화가 나 나주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도 직접 참여했다.

임 팀장은 “이주노동자들을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중해야 한다. 이름을 불러주고, 차별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친구처럼 대하는 포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린두(26·스리랑카)씨는 한국 양식장 등에서 4년 10개월 일한 후, 스리랑카로 휴가를 다녀와 쉼터에 머물며 일자리를 찾고 있다. 사회통합 프로그램 사전 평가 시험을 공부하고 있는 그는 시험에 합격해 가족들을 데려와 한국에서 같이 살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

그는 “쉼터는 친정집이자 아지트 같은 곳이다. 쉼터 덕분에 안정적으로 머물면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쉼터는 광주시에서 연 1500만원 보조금을 지원받고 있지만, 대부분은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4월에는 스리랑카 설날인 민족 행사를 맞아 전국에서 300여명이 찾아와 떡국을 먹고 축제를 즐기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물가 상승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 성탄절에는 외국인 50명이 찾아 선물을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임 팀장은 “‘젊은 시절 한국에 와서 일했다 모국으로 돌아가서 이 때를 추억하면 오갈 데 없고 돈 한푼 받지 않았던 나를 도와줬던 참 따뜻했던 곳이었다, 내가 부모가 돼보니 잔소리했을 법도 한데 참 인격적으로 존중해준 곳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좋겠다”며 “앞으로도 양심껏 이들을 돕고 싶다. 한국에서 잘 정착하고 머물다 갈 수 있도록 따뜻함을 나눠주고 싶다”고 웃어보였다.

/글·사진=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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