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있는 광주 발레 꿈나무들 키우고 싶어요”
광주 출신 발레리노 윤전일, 안무가·교육자로 다양한 활동
한예종 졸업 이후 루마니아 국립 오페라 발레단 무대
내년 2월 광주서 창작 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공연
한예종 졸업 이후 루마니아 국립 오페라 발레단 무대
내년 2월 광주서 창작 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공연
![]() 광주 출신 발레리노 윤전일은 무용수이자 안무가, 교육자로서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발레를 하는 윤전일의 모습. <윤전일 제공> |
“무대에 서는 시간은 온전히 내 몸에 집중하는 순간입니다. 안무를 할 때는 타인의 몸을, 교육을 할 때는 학생의 앞날을 바라보게 되죠.”
수많은 국제 발레 콩쿠르를 거쳐 국립발레단과 루마니아 국립 오페라 발레단 무대에 섰던 윤전일(39)은 한국을 대표하는 남성 솔리스트 가운데 한 명이다.
지난달 부산콘서트홀 개관 기념 발레 갈라 ‘발레의 초대’ 무대에 올랐고, ‘윤전일 Dance Emotion’을 이끌며 발레·현대무용·한국무용을 엮어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내년 2월에는 광주에서 창작 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2021년 광복 76주년을 맞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초연됐으며,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애국혼을 발레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공연 준비와 신작 안무 작업으로 분주한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춤에 대한 애정이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한다”고 말했다.
그의 출발점은 광주였다. 광주에서 태어나 발레를 배우고, 서울과 해외 무대로 다시 교육의 현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무대에서는 플레이어로, 작업실에서는 안무가로, 교실에서는 교육자로 활동하며 발레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윤전일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발레를 시작했다. 또래 대부분이 어린 시절부터 발레를 배운 것과 비교하면 늦은 출발이었다. 춤을 추고 무대에 올라 관객 환호를 받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한때 아이돌 연습생을 꿈꾸기도 했다. H.O.T.와 젝스키스를 보며 가수를 꿈꿨고, 중학교 시절에는 서울을 오가며 데뷔를 준비했다.
그러나 그는 확신이 없었다고 한다. “아이돌을 준비하면서도 막연함이 컸어요.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 확신이 없었죠. 보다 체계적으로 춤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광주 무용의 대모’ 고(故) 엄영자 선생님을 만나 발레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발레를 만난 뒤 그는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늦은 시작에도 불구하고 윤전일은 이를 “드디어 딱맞는 옷을 입은 느낌”으로 기억한다. 초등학생들과 함께 기본 동작부터 다시 익히고, 잘하는 친구들의 움직임을 따라 하며 몸의 언어를 새로 배웠다. “늦게 시작한 만큼 남들보다 더 많이 연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습실에서는 초등학생 친구들도 선배고 선생님이었어죠.”
발레를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 그는 광주 출신 김선희 전 교수에게 사사했다. 이후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솔리스트로 활동했으며, 루마니아 국립 오페라 발레단으로 이적해 주역 무용수로 무대를 넓혔다. 언어와 환경이 낯선 무대에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은 몸뿐이었다. 윤전일은 “그 시기에는 매일 춤만 췄다”고 회상했다. 이 경험은 무대에서의 태도뿐 아니라 이후 안무와 교육을 대하는 기준이 됐다.
경력과 노하우가 쌓이자 그는 ‘윤전일 Dance Emotion’을 창단하고 안무가로서의 작업을 시작했다. 관객이 비교적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감성 발레 ‘사랑에 미치다’, 남성 무용수들만으로 구성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 ‘첫 번째 게임’ 등이 대표작이다. 최근에는 고전 발레 ‘지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 윤전일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영역은 교육이다. 그는 2016년부터 9년여간 광주 북구 용봉동에서 발레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아이들을 지도해왔다. 제자들은 예술중·고 진학과 국내외 콩쿠르 입상으로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윤전일은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윤전일이 말하는 발레 교육의 핵심은 기술보다 태도다. 나이와 단계에 맞는 반복 훈련과 시간을 견디는 과정이 발레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발레는 개인 예술처럼 보이지만 여러 사람이 협업해 완성하는 예술”이라며 “몸의 재능은 잠시 앞설 수 있어도 인성과 노력은 끝까지 남는다”고 말했다.
윤전일은 내년이면 마흔을 맞는다. 그는 무대 위 플레이어로서의 시간을 차분히 정리하며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예술의 도시’ 광주에는 재능 있는 학생들과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아요. 하지만 다른 분야처럼 결국엔 꿈나무들이 수도권으로 떠날수 밖에 없는 ‘구조’가 아쉽습니다. 광주에서 나고 자라 발레를 배운 선배로서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할 생각입니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수많은 국제 발레 콩쿠르를 거쳐 국립발레단과 루마니아 국립 오페라 발레단 무대에 섰던 윤전일(39)은 한국을 대표하는 남성 솔리스트 가운데 한 명이다.
내년 2월에는 광주에서 창작 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2021년 광복 76주년을 맞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초연됐으며,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애국혼을 발레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공연 준비와 신작 안무 작업으로 분주한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춤에 대한 애정이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한다”고 말했다.
그의 출발점은 광주였다. 광주에서 태어나 발레를 배우고, 서울과 해외 무대로 다시 교육의 현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무대에서는 플레이어로, 작업실에서는 안무가로, 교실에서는 교육자로 활동하며 발레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 발레리노 윤전일 |
그러나 그는 확신이 없었다고 한다. “아이돌을 준비하면서도 막연함이 컸어요.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 확신이 없었죠. 보다 체계적으로 춤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광주 무용의 대모’ 고(故) 엄영자 선생님을 만나 발레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발레를 만난 뒤 그는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늦은 시작에도 불구하고 윤전일은 이를 “드디어 딱맞는 옷을 입은 느낌”으로 기억한다. 초등학생들과 함께 기본 동작부터 다시 익히고, 잘하는 친구들의 움직임을 따라 하며 몸의 언어를 새로 배웠다. “늦게 시작한 만큼 남들보다 더 많이 연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습실에서는 초등학생 친구들도 선배고 선생님이었어죠.”
발레를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 그는 광주 출신 김선희 전 교수에게 사사했다. 이후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솔리스트로 활동했으며, 루마니아 국립 오페라 발레단으로 이적해 주역 무용수로 무대를 넓혔다. 언어와 환경이 낯선 무대에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은 몸뿐이었다. 윤전일은 “그 시기에는 매일 춤만 췄다”고 회상했다. 이 경험은 무대에서의 태도뿐 아니라 이후 안무와 교육을 대하는 기준이 됐다.
경력과 노하우가 쌓이자 그는 ‘윤전일 Dance Emotion’을 창단하고 안무가로서의 작업을 시작했다. 관객이 비교적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감성 발레 ‘사랑에 미치다’, 남성 무용수들만으로 구성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 ‘첫 번째 게임’ 등이 대표작이다. 최근에는 고전 발레 ‘지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 윤전일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영역은 교육이다. 그는 2016년부터 9년여간 광주 북구 용봉동에서 발레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아이들을 지도해왔다. 제자들은 예술중·고 진학과 국내외 콩쿠르 입상으로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윤전일은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윤전일이 말하는 발레 교육의 핵심은 기술보다 태도다. 나이와 단계에 맞는 반복 훈련과 시간을 견디는 과정이 발레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발레는 개인 예술처럼 보이지만 여러 사람이 협업해 완성하는 예술”이라며 “몸의 재능은 잠시 앞설 수 있어도 인성과 노력은 끝까지 남는다”고 말했다.
윤전일은 내년이면 마흔을 맞는다. 그는 무대 위 플레이어로서의 시간을 차분히 정리하며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예술의 도시’ 광주에는 재능 있는 학생들과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아요. 하지만 다른 분야처럼 결국엔 꿈나무들이 수도권으로 떠날수 밖에 없는 ‘구조’가 아쉽습니다. 광주에서 나고 자라 발레를 배운 선배로서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할 생각입니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