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예술의 경계에 선 인간의 존재 이유 그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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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예술의 경계에 선 인간의 존재 이유 그렸죠”
김현주 작가 최근 장편소설 ‘얼굴 없는 아침’ 펴내
“복수의 정의는 고통 극복하고 모두의 상처를 회복하는 것”
2025년 10월 22일(수) 17:50
“아주 오래 전 어느 신문에 난 기사를 읽었어요. 알던 분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이었죠. 자의든 타의든 돌연한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의문을 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얼마 후 ‘오월 그날’을 떠오르게 하는 조각가의 작품을 보게 됐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절박한, 어떤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아요.”

김현주 소설가는 최근 장편 ‘얼굴 없는 아침’(다인숲)을 발간하게 된 계기를 그렇게 전했다.

김현주 소설가. <광주일보 자료 사진>
올해로 등단 32년을 맞은 작가는 여전히 소설을 붙들고 있다. 강산이 세 번도 더 변했을 시간, 포기하지 않고 창작의 길을 가는 것은 분명 어떤 힘이 붙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김 작가는 “그 기억을 담아 소설로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래 전 어느 신문에 서 봤던 죽음과 관련한 사건 기사를 이야기했다. 아마도 사건 기사에 대한 기억이 이번 창작을 추동하는 기제였던 모양이다. 언론에 기사화되는 사건의 상당부분은 돈과 권력, 이성 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연계돼 진행된다.

현대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거대 권력에 의해 통제를 들 수 있다. 더러는 강고한 자본의 통제와 불평등이 개개인을 옥죄기도 한다. 죽음은 그런 구조적 틈바구니 속에서 수시로 사건화된다.

김 작가는 “소설의 원제는 ‘밤이 없는 아침’이었다”며 “그런데 출판사에서 너무 ‘뻔한 제목 같다’고 해서 고민 끝에 ‘얼굴 없는 아침’으로 고쳤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인 제목보다는 낯선 효과를 노린 ‘전략’이었다. “작품은 ‘폭력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욕망, 고통을 드러내는 데 있다”며 “세상을 향한 작가들의 날카로운 통찰마저 없다면 우리 사는 세상은 점점 더 황폐화되고 암울해질 것 같다”고 언급했다.

소설의 서사는 문화재단 박수재 원장의 죽음을 둘러싸고 펼쳐진다. 비정규직 직원인 민가인이 출장을 다녀오고 출근한 아침, 원장은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재단의 장윤주 팀장은 5층 숙박시설을 비밀리에 운영하며 재단의 재정을 손에 쥐고 있다. 원장과 팀장은 서로 견제하는 사이다. 민가인은 박 원장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지만, 장 팀장의 솔깃한 제안을 받는다. 원장의 뒷조사를 해주면 정규직이 될 수 있도록 손을 써주겠다는 것이다.

어느 날 박 원장과 관련 뇌물, 공금 횡령, 성폭행에 대한 익명의 제보가 상급기관에 접수된다. 원장은 증거자료를 제출하며 진실을 밝히려 노력하지만, 성폭행 소문이 날개 돋친 듯 퍼져간다. 대학 때 운동권이었던 원장은 그렇게 몇 가지 의문을 남긴 채 운명을 달리한다.

소설은 권력과 예술의 경계에 선 인간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작가의 세밀하고 깊이 있는 문장은 줄곧 독자를 불안의 정점으로 이끈다.

아마도 작가는 작품을 매개로 소설 속 인물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었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말, 다시 말해 작품 속 인물들이 꺼내지 않았던 말들은 ‘어둠’ 속에 묻혀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 ‘오딧세이아’를 읽으면서 깨달았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버티고 살아남아서 복수하는 것, 그 복수의 정의는 고통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각자 모두의 상처를 회복하는 것이지요. ”

현재 김 작가는 오늘의 시대 정치, 경제, 사회 등 문제에 눈과 귀를 열어두고 공부하는 중이다. 장편을 하나 발간했으니 오래 밀쳐둔 숙제를 끝낸 기분일 것 같다. 그러나 작품 발간이 끝이 아니라 또 다시 시작이라는 것을 작가또한 잘 알고 있다.

“여러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그동안 소홀했던 다양한 문화와 그들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가장 부족했던 독서, ‘고전 다시 읽기’를 시작하며 새 장편소설을 구상하겠다”고 그는 말했다.

한편 김 작가는 199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와 1998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했으며 광일문학상, 송순문학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소설집 ‘물속의 정원사’, ‘메리골드’, 장편 ‘붉은 모란 주머니’, 산문집 ‘네 번째 우려낸 찻물’을 펴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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