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군민 축제가 된 ‘다문화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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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군민 축제가 된 ‘다문화 결혼식’
도곡면 정왕기·태국 출신 리우씨 혼인 주민 500명 참석 축하
지난해 8월 득남 … 35년만에 마을에 울려퍼진 아이 울음소리
2025년 10월 01일(수) 18:55
새 신랑 정왕기씨가 지난 27일 화순군 도곡면 세계 거석테마파크에서 열린 전통 혼례식에서 태국 출신 신부 리우씨와 행진하며 춤추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신부가 외국 사람이란디, 겁나게 착해야. 아조 잘 살것이여.”

지난 27일 화순군 도곡면 세계 거석테마파크에서 특별한 결혼식이 열렸다. ‘제20회 도곡면민의 날과 제26회 경로위안잔치’가 함께 열린 자리에서 국제결혼 부부가 전통 혼례식을 올리며 지역 주민 500여명의 축복을 받았다.

정왕기(43)씨와 태국 출신 리우(여·27)씨가 그 주인공이다. 현대식 예식장이 아닌 면민 축제의 장에서 전통 예식으로 치러진 이번 결혼은 개인의 기쁨을 넘어 지역 공동체가 다문화 가정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뜻깊은 자리였다.

결혼식장을 가득 메운 축하 박수와 웃음 속에서 도곡면 주민들은 “왕기야, 각시한테 잘해라”, “잘 살아라잉” 등 덕담을 건넸다.

이날 축제는 다문화 가정과 함께 나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했다. 부부의 결혼이 지역 공동체 전체의 잔치였고 그 속에서 화순 도곡면은 더 포용적인 마을이 됐다.

정왕기씨는 화순군 도곡면 덕곡리에 살면서 지난해 8월 아들 정시우군을 얻었다. 무려 35년 만에 마을에 울려 퍼진 아기 울음소리였다.

정씨는 “서류 문제와 여러 사정으로 결혼식을 늦게 올리게 됐다”며 “번영회와 청년회 등 많은 분이 도와주셔서 감사하다.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시니까 오히려 우리가 국제 부부의 ‘본보기’가 돼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결혼에 대해 여전히 남아 있는 편견도 언급했다. “예전에는 문제가 있거나 늦게까지 결혼 못 한 사람들이 국제 결혼을 한다는 인식이 많았다. 안 좋은 이미지를 바꾸려면 우리가, 특히 남편인 내가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화순지역에 다문화 가정을 위한 아동 돌봄과 한국어 교육 지원 체계가 잘 마련돼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어가 서툰 신부 리우씨는 “마을에서 큰 축제를 준비해 줘서 행복하다”며 짧지만 공동체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소감을 남겼다.

정씨는 아들이 한국어뿐 아니라 태국어도 함께 배우며 세계화를 체감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아이에게 한국에서 활동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며 부모의 역할과 열린 교육관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정씨는 또 “요즘은 미디어를 통해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 부모가 어떤 마인드를 갖느냐에 따라 아이가 성장하는 방향도 달라지는 만큼 잘 교육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결혼식은 비용 대부분도 도곡면 번영회가 부담해 부부의 경제적 부담을 줄였다. 정씨는 “일반 결혼식으로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돈을 절약했다. 지역에서 도와주셔서 정말 고맙다”고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도곡면에서 열린 이번 전통 혼례식은 다문화 가정이 지역 사회에서 환영받는 일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더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전통과 현대, 지역 주민과 새로운 가족이 한데 어우러지는 장면은 다문화 시대를 맞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보여준 장이었기 때문이다.

문형량 도곡면 번영회장은 “과거에는 청년들이 많아 체육대회 같은 행사도 했지만 지금은 여건이 달라졌다. 대신 지역 공동체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전통 혼례식을 준비했다”고 마을 잔치로 확대한 이번 결혼식의 기획 배경을 밝혔다.

특히 경로 위안 잔치와 함께 열린 이번 혼례는 마을 어르신들에게도 색다른 추억은 선사했다. 문 회장은 “옛날에는 누구나 전통 혼례를 했지만 요즘은 보기 어렵다. 어르신들에게는 추억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고, 신혼부부에게는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장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시골에 사는 초등학생 대다수가 다문화 가정 자녀”라며 “이런 행사를 통해 다문화 가정이 공동체 속에서 따뜻하게 자리 잡도록 하는 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김해나 기자 khn@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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