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세계문학중심도시로]광주문학 세계화 향한 도약, ‘책 생태계’ 조성이 백년지대계
9 (12) 에필로그]
호남, 오랜 소외와 배제에 깊은 상처
문학에 불굴의 저항정신과 가치 투영
그 토대위 한강 ‘노벨문학상’ 꽃 피워
5·18, 세계문학으로 가는 ‘창작 원천’
문인들 창작활동위한 여건 조성 필요
독자 육성 위한 인문학 프로그램 운영
호남, 오랜 소외와 배제에 깊은 상처
문학에 불굴의 저항정신과 가치 투영
그 토대위 한강 ‘노벨문학상’ 꽃 피워
5·18, 세계문학으로 가는 ‘창작 원천’
문인들 창작활동위한 여건 조성 필요
독자 육성 위한 인문학 프로그램 운영
![]() 지난해 한강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광주문학관 벽면에 걸렸다. <광주일보 자료사진> |
광주와 남도는 오랫동안 유무형의 소외와 배제에 짓눌려왔다. 위정자들이 뿌려놓은 간교한 행태는 광주와 남도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설움을 안겼다.
역설적이게도 아니 무참하게도 문학은 상처와 상흔, 억압과 탄압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란다. 광주 문학이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도저하게 ‘역사의 강’을 거슬러왔던 힘은 불의에 대한 저항과 진실에 대한 강렬한 열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광주는 어떤 외풍과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그런 자부심과 자존감, 자존심을 지키고 견지해 왔다. 세계 여느 도시와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 광주의 정신과 가치는 다양한 문학 속에 살뜰히 투영돼 있다.
지난해 자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그러한 태토위에서 꽃을 피웠음은 불문가지다. 광주 출신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광주가 세계문학중심도시로 발돋움하는 토대를 갖췄다는 의미다. 광주에 뿌리를 둔 문학이 지난 시대 곡절과 불의를 극복하고 마침내 세계 독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번 기획 시리즈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제2의 문학 중흥기를 맞은 광주 문학의 역사와 현주소를 살펴보고 한국과 세계문학중심도시로서의 발돋움 가능성을 조명하는 데 있었다. 아울러 문향(文鄕) 광주의 다양한 인문자원, 문학과 인문 정책 등도 다각도로 조명하는 데 있었다.
역사 이래로 광주에는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출현해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쳤다. 조선시대 호남 사림의 대표 눌재 박상, 광주전남 근현대문학의 효시 조운 시인, 지역 민족문학의 시작 김태오 아동문학가 등이 있다.
광주문학은 지난 1920년대까지 일제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의 성격을 띄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주권 상실의 위기감이 커지자 호남 지식인들은 1907년 호남학회를 창립했으며 이듬해 1908년 서울에서 기관지 ‘호남학보’를 발간해 호남지역 정신과 정체성을 북돋우는 활동을 전개했다.
근대 광주문학은 사직공원 일대에서 전개됐다. 설강(雪崗) 김태오는 양림산 언덕에 자리한 양파정에서 문학, 동요를 매개로 민족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당시 소년운동이 소년회를 비롯해 독서회, 야학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었던 것은 문화와 민족정신이 결부된 때문이다. 김태오가 양파정을 중심으로 전개했던 소년운동은 국내 소년운동의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내재한다.
한국 현대시의 주춧돌의 역할을 했던 ‘시문학’을 창간한 용아 박용철은 광산구 소촌동이 고향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생가 주위로는 못 보던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지형이 바뀐 듯한 느낌을 준다.
용아는 일제 강점기 김영랑을 비롯해 다른 문우들과 지속적인 교유를 하며 문학에 정진한다. 1930년 3월 동인지 창간호 ‘시문학’을 발간하며 그는 ‘문학은 그 민족의 국어를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족의식과 순수 서정을 견지했던 용아의 시정신은 오늘날 광주문학을 있게 한 정신과 궤를 같이한다.
대표작 ‘떠나가는 배’는 일제 치하의 억압적 현실을 초월하고자 하는 화자의 내밀한 바람이 투영돼 있다. 고향 산하를 두고 차마 떠날 수 없는 아릿한 마음도 읽혀진다.
광주 문학에 깃든 광주 정신은 남도 산하에 자리한 누정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건립된 연대를 비롯해 철학, 삶은 다를지언정 기저에는 문학과 풍류, 교유와 같은 정신과 실천의 영역이 결부돼 있다. 향약이 처음 시행된 남구 칠석동의 부용정을 비롯해 ‘제일호산’이라 부를 만큼 영산강변 풍광이 뛰어난 풍영정, 자유와 평등의 정신을 이어온 양과동정, 충장공 김덕령의 붉은 충절이 깃든 취가정 등이 그러한 예다.
특히 취가정은 나라사랑의 단심을 읽을 수 있는 대표 누정이다. 충장공 김덕령의 의와 충이 오롯이 깃든 역사적인 공간이다. 누정 명칭이 취가정인 것은 권필이 자신의 꿈에서 억울하게 죽은 김덕령 장군이 나타나 시를 나누었던 데서 연유한다.
그렇듯 누정에는 충과 효 등 올곧은 정신이 당대 문사들의 뛰어난 시문과 연계돼 있다. 오늘날 광주문학의 많은 부분이 선비정신으로 대변되는 누정문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다형 김현승은 지조의 선비정신으로 지성적 시 세계를 일궜다. 오늘의 광주 현대문학의 토대를 갖추게 한 ‘옥토’와 같은 시인이었다. 양림동은 소년 김현승이 무등산을 바라보고 시심을 키웠던 곳으로, 다형의 문학적 흔적은 물론 그의 시업을 기리는 다양한 조형물들이 들어서 있다.
소년 김현승은 근대기 당시 선교사들이 정착한 양림동에서 ‘광주의 어머니’ 무등산을 바라보며 맑은 시심을 배양했다. ‘광주의 예루살렘’인 양림동은 무궁무진한 ‘시의 저수지’와도 같은 장소성을 지닌다.
특히 김현승 시인은 조선대 교수 시절 주옥 같은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 ‘플라타너스’, ‘가을의 기도’, ‘옹호자의 노래’ 등 작품들은 오늘날 많은 독자들이 애송하는 시들이다.
지난해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는 광주정신, 5·18 정신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계기였다. 80년 5·18 당시 학살의 만행을 몸소 겪은 광주 시민들은 이번에도 ‘내란 세력’이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다. 결국 윤석열은 파면됐고, 그것은 80년 5월 산화한 수많은 민주시민들의 넋이 가져다 준 의로운 승리였다.
해마다 5월이면, 또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민주화 투쟁의 현장에서 ‘광주’는 예외없이 소환된다. 그리고 ‘아아 光州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김준태 시인 작)라는 불멸의 시가 회자되고 낭송된다. 80년 5월 광주를 대표하는 그 시는 ‘광주 세계문학중심도시’를 세계에 알릴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작품을 쓰는 동안 너무나 뼈저리고 참혹한 장면들이 눈앞에 떠올랐어요. 그것은 총에 맞아 픽픽 쓰러지는 시민들의 환영이었죠. 한마디로 전쟁터에서나 볼 수 있는 참혹하면서도 무참한 광경이었습니다.(그는 베트남전 참전 용사였다) 전쟁에 참전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그것이 공포탄이 아니라 실탄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당시 시인은 1시간여 만에 230행(실제 신문에 실린 행수는 이보다 적음)에 이르는 시를 절규하듯 토해냈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김준태 시인은 시를 쓰는 동안 ‘접신의 현상’을 겪을 만큼 당시 상황은 생생하면서도 참혹했다고 했다.
5·18을 알리고 작가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시인들이 만든 동인도 있다. 1981년 ‘5월시 동인’을 창립한 김진경, 박몽구, 나종영, 이영진, 박주관, 곽재구 시인이 그들이다. 이들은 첫 작품집 ‘이 땅에 태어나서’를 십시일반 주머니를 털어 세상에 내놓는다. ‘5월시 동인’은 광주민중항쟁 40주년을 기념해 일곱 번째 시집 ‘깨끗한 새벽’(2020)을 펴냈으며 지금까지 두 권의 판화시집을 포함해 ‘5월시 동인시집’이 9권 세트로 발간되기에 이른다.
소설에서도 광주 5월은 중요한 창작 모티브였다. 호흡이 짧은 시와 달리 소설은 결실을 맺기까지 충실한 자료와 함께 ‘숙성’의 시간을 전제로 한다. 윤정모 ‘밤길’, 공선옥 ‘씨앗불’, 홍희담 ‘깃발’, 정도상 ‘십오야 이야기’등도 광주항쟁을 다룬 작품들이며, 1985년 출간돼 많은 이들에게 강렬함을 주었던 황석영·이재의·전용호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너머’는 기록문학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소설가 임철우는 장편소설 ‘봄날’을 통해 5월 16일부터 27일까지 광주의 5월을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풀어냈다.
오월문학은 광주문학이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미래다. 광주문학이 세계문학으로 도약하기 위해 80년 광주 5·18이 중요한 창작의 원천 소스라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한강 작가가 5·18의 참상과 진실을 모티브로 ‘소년이 온다’를 형상화해 노벨상 수상이라는 금자탑을 쌓았지만 이후 제2의 노벨상, 제3의 노벨상도 어쩌면 오월문학이 중요한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광주문학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광주가 세계문학중심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광주의 문학자원, 문화자원을 토대로 문인들이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으로 인문학 관련 프로그램을 내실있게 운영해 ‘책 읽는 광주’ 분위기 조성을 하는 것은 ‘기초 체력’을 튼튼히 하는 백년지대계이다.
또 하나, ‘인문도시 광주’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책 생태계를 새롭게 조성해야 한다는 견해도 풀어야 할 과제로 보인다. <끝>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역설적이게도 아니 무참하게도 문학은 상처와 상흔, 억압과 탄압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란다. 광주 문학이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도저하게 ‘역사의 강’을 거슬러왔던 힘은 불의에 대한 저항과 진실에 대한 강렬한 열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해 자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그러한 태토위에서 꽃을 피웠음은 불문가지다. 광주 출신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광주가 세계문학중심도시로 발돋움하는 토대를 갖췄다는 의미다. 광주에 뿌리를 둔 문학이 지난 시대 곡절과 불의를 극복하고 마침내 세계 독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역사 이래로 광주에는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출현해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쳤다. 조선시대 호남 사림의 대표 눌재 박상, 광주전남 근현대문학의 효시 조운 시인, 지역 민족문학의 시작 김태오 아동문학가 등이 있다.
광주문학은 지난 1920년대까지 일제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의 성격을 띄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주권 상실의 위기감이 커지자 호남 지식인들은 1907년 호남학회를 창립했으며 이듬해 1908년 서울에서 기관지 ‘호남학보’를 발간해 호남지역 정신과 정체성을 북돋우는 활동을 전개했다.
근대 광주문학은 사직공원 일대에서 전개됐다. 설강(雪崗) 김태오는 양림산 언덕에 자리한 양파정에서 문학, 동요를 매개로 민족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당시 소년운동이 소년회를 비롯해 독서회, 야학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었던 것은 문화와 민족정신이 결부된 때문이다. 김태오가 양파정을 중심으로 전개했던 소년운동은 국내 소년운동의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내재한다.
![]() 주홍 ‘찔레꽃’ |
용아는 일제 강점기 김영랑을 비롯해 다른 문우들과 지속적인 교유를 하며 문학에 정진한다. 1930년 3월 동인지 창간호 ‘시문학’을 발간하며 그는 ‘문학은 그 민족의 국어를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족의식과 순수 서정을 견지했던 용아의 시정신은 오늘날 광주문학을 있게 한 정신과 궤를 같이한다.
대표작 ‘떠나가는 배’는 일제 치하의 억압적 현실을 초월하고자 하는 화자의 내밀한 바람이 투영돼 있다. 고향 산하를 두고 차마 떠날 수 없는 아릿한 마음도 읽혀진다.
광주 문학에 깃든 광주 정신은 남도 산하에 자리한 누정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건립된 연대를 비롯해 철학, 삶은 다를지언정 기저에는 문학과 풍류, 교유와 같은 정신과 실천의 영역이 결부돼 있다. 향약이 처음 시행된 남구 칠석동의 부용정을 비롯해 ‘제일호산’이라 부를 만큼 영산강변 풍광이 뛰어난 풍영정, 자유와 평등의 정신을 이어온 양과동정, 충장공 김덕령의 붉은 충절이 깃든 취가정 등이 그러한 예다.
특히 취가정은 나라사랑의 단심을 읽을 수 있는 대표 누정이다. 충장공 김덕령의 의와 충이 오롯이 깃든 역사적인 공간이다. 누정 명칭이 취가정인 것은 권필이 자신의 꿈에서 억울하게 죽은 김덕령 장군이 나타나 시를 나누었던 데서 연유한다.
![]() 이정기 ‘광주아리랑’ |
다형 김현승은 지조의 선비정신으로 지성적 시 세계를 일궜다. 오늘의 광주 현대문학의 토대를 갖추게 한 ‘옥토’와 같은 시인이었다. 양림동은 소년 김현승이 무등산을 바라보고 시심을 키웠던 곳으로, 다형의 문학적 흔적은 물론 그의 시업을 기리는 다양한 조형물들이 들어서 있다.
소년 김현승은 근대기 당시 선교사들이 정착한 양림동에서 ‘광주의 어머니’ 무등산을 바라보며 맑은 시심을 배양했다. ‘광주의 예루살렘’인 양림동은 무궁무진한 ‘시의 저수지’와도 같은 장소성을 지닌다.
특히 김현승 시인은 조선대 교수 시절 주옥 같은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 ‘플라타너스’, ‘가을의 기도’, ‘옹호자의 노래’ 등 작품들은 오늘날 많은 독자들이 애송하는 시들이다.
지난해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는 광주정신, 5·18 정신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계기였다. 80년 5·18 당시 학살의 만행을 몸소 겪은 광주 시민들은 이번에도 ‘내란 세력’이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다. 결국 윤석열은 파면됐고, 그것은 80년 5월 산화한 수많은 민주시민들의 넋이 가져다 준 의로운 승리였다.
해마다 5월이면, 또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민주화 투쟁의 현장에서 ‘광주’는 예외없이 소환된다. 그리고 ‘아아 光州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김준태 시인 작)라는 불멸의 시가 회자되고 낭송된다. 80년 5월 광주를 대표하는 그 시는 ‘광주 세계문학중심도시’를 세계에 알릴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작품을 쓰는 동안 너무나 뼈저리고 참혹한 장면들이 눈앞에 떠올랐어요. 그것은 총에 맞아 픽픽 쓰러지는 시민들의 환영이었죠. 한마디로 전쟁터에서나 볼 수 있는 참혹하면서도 무참한 광경이었습니다.(그는 베트남전 참전 용사였다) 전쟁에 참전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그것이 공포탄이 아니라 실탄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당시 시인은 1시간여 만에 230행(실제 신문에 실린 행수는 이보다 적음)에 이르는 시를 절규하듯 토해냈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김준태 시인은 시를 쓰는 동안 ‘접신의 현상’을 겪을 만큼 당시 상황은 생생하면서도 참혹했다고 했다.
5·18을 알리고 작가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시인들이 만든 동인도 있다. 1981년 ‘5월시 동인’을 창립한 김진경, 박몽구, 나종영, 이영진, 박주관, 곽재구 시인이 그들이다. 이들은 첫 작품집 ‘이 땅에 태어나서’를 십시일반 주머니를 털어 세상에 내놓는다. ‘5월시 동인’은 광주민중항쟁 40주년을 기념해 일곱 번째 시집 ‘깨끗한 새벽’(2020)을 펴냈으며 지금까지 두 권의 판화시집을 포함해 ‘5월시 동인시집’이 9권 세트로 발간되기에 이른다.
![]() 광주문학관 내 자리한 오월문학 관련 공간. |
오월문학은 광주문학이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미래다. 광주문학이 세계문학으로 도약하기 위해 80년 광주 5·18이 중요한 창작의 원천 소스라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한강 작가가 5·18의 참상과 진실을 모티브로 ‘소년이 온다’를 형상화해 노벨상 수상이라는 금자탑을 쌓았지만 이후 제2의 노벨상, 제3의 노벨상도 어쩌면 오월문학이 중요한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광주문학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광주가 세계문학중심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광주의 문학자원, 문화자원을 토대로 문인들이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으로 인문학 관련 프로그램을 내실있게 운영해 ‘책 읽는 광주’ 분위기 조성을 하는 것은 ‘기초 체력’을 튼튼히 하는 백년지대계이다.
또 하나, ‘인문도시 광주’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책 생태계를 새롭게 조성해야 한다는 견해도 풀어야 할 과제로 보인다. <끝>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