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세계문학중심도시로] 5·18은 창작의 원천 … 광주 문학 세계로 도약할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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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세계문학중심도시로] 5·18은 창작의 원천 … 광주 문학 세계로 도약할 ‘자산’
[오월문학]
문인들, 당대 사회 모순·부조리 작품으로 형상화
시인·소설가 등이 남긴 오월문학, 그날의 참상 증언
독재·폭압 맞선 피맺힌 문장, 독자 마음에 큰 울림
국내외에 진실 알리고 오월정신 세계 확산에 기여
‘5월시 판화전’·시집 ‘학살 1’·‘오월 문학총서’ 등
좌절된 희망·슬픔 넘어 인류 평화 향한 의지 담겨
2025년 06월 02일(월) 00:00
5·18을 모티브로 한 작품은 광주를 세계문학중심도시로 견인할 중요 ‘자산’이다. 5·18 40주년을 기념해 정찬주 작가가 다큐 소설 ‘광주 아리랑’을 광주일보에 연재할 당시 삽화(이정기 작).
문학에 있어 가장 고전적인 정의 가운데 하나가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사실이다. 칼을 쥔 자들이 일시적으로 승자가 될 수 있으나, 영원한 승자는 될 수 없다는 의미다. 종내에는 펜을 쥔 문인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인데, 칼은 부러지고 녹슬지만 글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인간의 정신을 흔들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작가들은 당대 사회의 모순이나 부조리를 본능적으로 감지해 이를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소련 체제의 폭압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작품으로 고발했다. 일제강점기 이육사 시인은 17번이나 옥고를 치렀지만 독립운동에 대한 열망을 결코 꺾지 않았다. 그의 ‘광야’와, ‘절정’은 독립을 향한 불굴의 의지를 웅혼한 목소리로 담아낸 작품이다.

올해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민족시인 윤동주 시인의 80주기가 되는 해다. 그러나 해방 80년이라는 벅찬 감격 이면에는 시인의 요절이라는 문학사적 큰 상실이 드리워져 있다. 그의 작품 속 시혼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더욱 또렷이 남아 오늘의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

이렇듯 역사 이래로 문인들은 독재와 폭압, 탄압에 맞서면서도 펜을 놓지 않았다. 그들의 피맺힌 문장은, 한 줄 한 줄 절규가 담긴 시는 독자들의 가슴을 흔든다. 독재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비수가 된다.

전정호 작 ‘학살 2’
광주에는 80년 전두환 신군부와 군사정권에 문학을 매개로 대항했던 문인들이 있다. 범박하게 이들이 추구했던 가치나 기치 등은 ‘오월문학’으로 수렴된다. 시인, 소설가, 극작가, 수필가들이 남겼던 오월문학 작품들은 그날의 진실과 참상을 동시에 증언한다.

김준태 시인의 ‘아아 光州여 우리나라의 十字架여’는 그날의 참혹함을 알린 대표 시다. 80년 6월 2일 광주일보(옛 전남매일신문)에 실린 작품은 신군부 검열에 의해 많은 시행이 삭제된 상태로 발표됐지만 국내는 물론 국외까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 2014년 영문으로 영역돼 출간된 이후 일어와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로도 번역돼 광주의 오월을 알리고 있다.

5·18을 알리고 작가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시인들이 만든 동인도 있다. 바로 1981년 창립한 ‘5월시 동인’으로 김진경, 박몽구, 나종영, 이영진, 박주관, 곽재구 시인이 그들이다. 이들은 첫 작품집 ‘이 땅에 태어나서’를 십시일반 주머니를 털어 세상에 내놓는다.

이후 동인들은 제2집 ‘ 그 산 그 하늘이 그립거든’, 제3집 ‘땅들아 하늘아 많은 사람아’(1983), 제4집 ‘다시는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1984), 제5집 ‘5월’(1985)을 잇따라 발간했다. 그리고 10여년이 흐른 후 여섯 번째 작품집 ‘그리움이 끝나면 다시 길 떠날 수 있을까’를 선보였다. 15년 후인 광주민중항쟁 40주년을 기념해서는 일곱 번째 시집 ‘깨끗한 새벽’(2020)을 펴냈으며, 이로써 두 권의 판화시집을 포함 ‘5월시 동인시집’이 9권 세트로 만들어졌다.

주홍작 ‘찔레꽃’
특히 지난 2020년 5·18 40주년을 기념해 5월시 동인과 광주전남작가회의 오월문예연구소가 ‘5월시 판화전’을 열어 눈길을 끌었다. 당시 ‘마침내 하나로 끌어안는 흙가슴이 되어’를 주제로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렸던 전시회에서는 강형철, 고광헌, 곽재구, 김진경, 나종영, 나해철, 박몽구, 고(故) 박주관, 윤재철, 이영진, 최두석 등 5월시동인 11명의 시 22편과 초대시인(김준태, 김경윤, 박관서, 박두규, 송광룡, 이승철, 임동확, 조성국, 조진태 등) 24명의 시 24편 등 모두 46편이 선보여 의미를 더했다. 화가들의 판화작품도 관람객들을 맞았다. 고근호, 김경주, 김봉준, 김희련, 류연복, 박진화, 조진호, 주홍, 홍선웅, 홍성담, 홍성민 등 모두 19명의 작품 46점도 볼 수 있었다. 전시 주제 ‘마침내 하나로 끌어안는 흙 가슴이 되어’는 동인시집 제7집에 실린 김진경의 시 ‘두근두근’에서 가져와 주목을 받았다.

광주 5월을 다룬 시로 고(故) 김남주 시인의 ‘학살 1’을 빼놓을 수 없다. 계엄령과 공수부대의 투입으로 평화의 도시 광주는 ‘죽음의 도시’로 바뀌었다. “도시는 벌집처럼 수셔놓은 심장”,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은 당시 광주의 참혹한 실상은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김남주 시인은 온몸으로 독재와 불의에 항거했다. 탄압의 역사, 오욕의 역사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굳은 결의 때문이었는데 그의 시는 여전히 우리에게 그날의 참상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듯하다.

“오월 어느 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이 차단되는 것을//(중략)//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 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김남주 학살 1)

오월문학 작품들.
고(故) 문병란 시인의 ‘부활의 노래’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죽은 이들의 부활을 희원하는 노래는 서정적인 감수성과 서사적인 이야기가 아름답게 맞물려 있다. 평생 통일과 5·18의 진상 규명을 위해 애썼던 고인의 시는 여전히 빛을 발한다.

“돌아오는구나/ 돌아오는구나/ 그대들의 꽃다운 혼,/ 못 다 한 사랑 못 다 한 꿈을 안고/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부활의 노래로/ 정녕 그대들 다시 돌아오는구나.// 이 땅에 우뚝 솟은 광주의 어머니/ 역사의 증언자, 무등산 골짜기 넘어/ 우수절 지나 상그러니 봄내음 풍기는./ 기지개 켜며 일어서는 무진벌 넘어/ 한 많은 망월동…”

소설에서도 광주 5월은 중요한 창작 모티브였다. 호흡이 짧은 시와 달리 소설은 결실을 맺기까지 충실한 자료와 함께 ‘숙성’의 시간을 전제로 한다.

소설가 임철우는 장편소설 ‘봄날’(전 5권, 문학과지성사)에서 5월 16일부터 27일까지 광주의 5월을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풀어냈다. 작가는 체험담을 비롯해 증언, 자료들을 충분히 참고해 소설을 완성했다. 임 작가는 머리말에서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내는 작업 자체가 참으로 고통스런 반복 체험에 다름아니었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내내 5월 그 열흘의 시간을 수없이 다시 체험해야만 했고, 수많은 원혼들과 함께 잠들고 먹고 지내야 했다”고 고백했다.

윤정모 ‘밤길’, 공선옥 ‘씨앗불’, 홍희담 ‘깃발’, 정도상 ‘십오야 이야기’등도 광주항쟁을 다룬 작품들이며, 1985년 출간돼 많은 이들에게 강렬함을 주었던 황석영·이재의·전용호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너머’는 기록문학 차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오월을 불꽃처럼 살다간 ‘오월광대’ 고(故) 박효선의 희곡도 주목해야 할 작품들이다. 박효선은 항쟁 이후 ‘금희의 오월’, ‘모란꽃’ 등 오월극을 쓰고 직접 연출해 국내는 물론 국외에까지 그날의 진실을 알리고 오월정신을 확산하는 데 주력했다.

지난 2024년에는 5·18기념재단이 창립 30주년을 맞아 ‘오월문학총서’ 2차분을 발간했다. 모두 5권으로 5권으로 발행된 총서는 지난 2012년과 2013년에 펴낸 ‘오월문학총서’에 이은 성과물을 집대성한 것이다. 당시 1차분은 ‘5·18민주화운동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선정된 것을 기념해 제작됐으며 시, 소설, 희곡, 평론이 포함됐다.

5·18기록관 상설전시실에는 오월문학을 비롯해 다양한 자료들이 비치돼 있다.
총서 간행위원장을 맡은 원순석 이사장은 발간사에서 “‘광주학살’이라는 참담 비극과 ‘해방광주’라는 환희의 영광 속에서 탄생한 ‘오월문학’은 좌절된 희망과 슬픔을 계승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며 “삼라만상의 뭇 생명들의 소중함, 분단이데올로기의 타파와 평화적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으로 나아갔던 것”이라고 의미를 전한 바 있다.

오월문학은 앞으로 광주문학이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미래다. 광주문학이 세계문학으로 도약하기 위해 80년 광주 5·18이 중요한 창작의 원천 소스라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한강 작가가 5·18의 참상과 진실을 모티브로 ‘소년이 온다’를 형상화해 노벨상 수상이라는 금자탑을 쌓았지만 이후 제2의 노벨상, 제3의 노벨상도 어쩌면 오월문학이 중요한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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