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 광주지방보훈청장] ‘산동교 전투’ 75년을 맞는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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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 광주지방보훈청장] ‘산동교 전투’ 75년을 맞는 소회
2025년 07월 23일(수) 00:00
426.4mm. 지난 17일 광주에 하루 동안 쏟아진 폭우량이다. 1939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은 일일 강수량이라고 한다. 곳곳에는 사흘간 527.2mm의 기록적인 폭우가 휩쓸고 간 흔적이 역력하다.

폭우가 할퀴고 간 흔적은 비단 인적·물적 피해뿐만이 아니다. 2011년 현충시설로 지정된 광주 유일의 6·25전쟁 격전지인 ‘옛 산동교’도 이번 폭우를 피해가지 못했다. 산동교의 지지대 일부가 부러지고 상판이 크게 휘는 등 구조 전반에 심각한 손상이 나타났다.

산동교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 목포와 신의주를 잇는 국도 1호선의 일부로 건설돼 6·25전쟁 당시 ‘군·경합동부대’가 북한군의 광주 점령을 막기 위해 첫 전투를 벌인 광주 지역 유일의 6·25전적지다.

당시 북한군은 정읍을 점령하고 장성을 거쳐 광주로 남하하고 있었으나 호남을 방어하던 5사단 20연대는 이미 전선으로 이동한 뒤였다. 아군은 광주를 지키기 위해 군인, 경찰, 학도병을 주축으로 ‘군·경합동부대’인 26연대를 새롭게 편성해 방어에 나섰다. 전투를 치를 수 있는 훈련된 병력이 아니었음은 물론 그들에게 주어진 무기는 일본군이 두고 간 99식 소총과 육군병원에 입원 중인 부상병들에게서 회수한 M1소총이 전부였다. 그것도 병사 3명 중 1명만 무기를 소지하였다고 하니 얼마나 열악한 상황이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1950년 7월 23일 광주 사수의 임무를 띤 군경합동부대는 북한군의 접근 차단 및 지연을 위해 새벽 4시경 산동교를 폭파하고 산동교에서 광주쪽으로 약간 떨어진 산등성이에 진지를 편성한다. 오전 11시 30분께 북한군 6사단이 산동교에 이르자 사력을 다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으나 트럭 27대에 병력을 싣고 전차 3대를 앞세운 북한군을 대적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군경합동부대는 여수 방향으로 퇴각하고 만다.

‘옛 산동교’에서 벌어진 이 전투로 김홍희 총경 등 30여명이 전사했으며 장명규 총경 등 5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비록 산동교 전투에서 승리하진 못했지만 광주 시민이 피난할 시간을 다소나마 확보하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광주는 흔히 ‘의향’이라고들 한다. 정의의 고장이라는 뜻이다. 그도 그럴것이 일제 치하인 1907년 기준으로 호남의병이 한말의병의 60%가 넘을 정도로 항일독립운동의 가장 치열하고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뿐인가 3·1운동과 함께 3대 독립운동으로 일컫는 학생독립운동의 발원지이자 주축이었다.

6·25 전쟁 시 학도병 최초의 전투인 ‘화개전투’의 주인공들도 광주·전남지역의 어린 학도병들이었다. 15~18세의 학생 180여명이 조국수호의 혈서를 쓰고 자원 입대했다. 이렇게 이어져 내려온 의로운 정신은 군부독재에 목숨으로 맞선 5·18민주화 운동으로 귀결됐다.

보훈이란 국가가 공동체의 존립과 유지·발전을 위해 국가에 헌신한 국민들의 공헌에 보답하는 행위로써 그에 걸맞은 예우와 보상,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제반 활동을 의미한다. 때문에 기여에 대한 응분의 대가로서 정의로운 보상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사회통합의 정신적 토대를 구축해 공동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아가는 기능을 수행한다. ‘옛 산동교’가 미래세대에게 애국의 가치를 전승하는 현충시설로 영구히 보존돼야 하는 이유이다.

오늘 7월 23일은 ‘산동교 전투’ 75주년이다. ‘새 산동교’에서 이번 폭우로 교각 중단 부분이 심각히 파손된 ‘옛 산동교’를 말없이 바라본다.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처럼 이번 기회에 ‘옛 산동교’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다리로 제대로 된 선양사업이 이루어져 ‘의향’ 광주의 또 하나의 상징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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