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진실 앞에 숨는 곳이 되어선 안 된다 - 이래섭 광주기독병원 신경외과 진료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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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말한다. “공평한 저울과 저울추는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저울추도 다 그의 지으신 것이니라.” (잠언 16:11)
최근 김건희씨가 검찰 수사를 앞두고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은 단지 개인의 병환 문제를 넘어 한국 의료계의 도덕성과 병원의 공공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병원 의료인으로서 이 사건을 보며 병원이 ‘피난처’는 될 수 있어도 ‘회피처’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익숙한 장면을 보게 된다. 전직 권력자들, 재벌 총수들,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물들이 수사 직전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다. 심지어 휠체어, 마스크, 목발, 안대 등 ‘연출된’ 모습까지 더해지면서 정작 입원이 절실한 환자들은 물론이고 그것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한다.
병원은 본디 고통 받는 자들의 안식처이며 진단과 회복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위의 사례처럼 병원이 사회적 책임 회피의 장소로 악용된다면 사람들은 병원을 더 이상 ‘회복의 성소’가 아닌 ‘면죄부 공장’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더불어 우리 공동체는 무너진 공정 앞에 상처받고 괴로워할 것이다.
“정직한 자의 길은 평탄하게 되며,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평탄하게 하시느니라.”(이사야 26:7) 의사의 판단은 하나님 앞에서도 정직해야 한다. 의사의 직업적 양심은 단지 ‘환자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에 있지 않다. 정말 아픈지, 입원이 필요한지, 환자의 의도가 순수한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환자가 권력자라고 해서, 언론에 민감한 인물이라고 해서 진료 기준을 흔들어선 안 된다.
만약 병원의 명예나 개인의 안위를 위해 의학적 기준을 무너뜨린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저울질하는 일이 된다. 의사는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숭고한 직업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진실하고 공정하게 모든 환자들을 대해야 한다.
“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잠언 31장 8절) 침묵하는 병원의 행태는 도덕적 무감각의 시작이다. 이번 사례에서 대형병원은 입원 결정의 이유나 경과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어쩌면 의학적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병원이 침묵할수록 세상은 더 큰 오해와 냉소로 반응한다. 대중의 눈에는 병원이 “정의보다 권력에 순응한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독병원 의료인으로서 병원이 단지 환자의 아픈 몸만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정의의 가치를 외면하지 않을 성소임을 잊어선 안 된다.
“너는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뇌물을 받지 말라.”(신명기 16:19) 진정한 의사의 용기는 거절해야 할 때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병든 자를 외면하지 않으셨지만 동시에 진리를 왜곡하거나 편법을 정당화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때때로 ‘의사답다’는 칭찬을 들으려면 단지 병을 잘 고치는 기술자여야 할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사의 윤리는 질병을 치료할 때와 마찬가지로 억압적 사회 현실 앞에서도 진실 앞에 투명한 자세를 용기 있게 견지하는 데서 시작된다. 환자가 권력자든 유명인이든 병원이 침묵하거나 눈을 감을수록 결국 사회 전체가 병들어간다.
병원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은혜의 공간이 되어야지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패가 되어선 안 된다. 이번 일은 우리 의료계 전체가 돌아봐야 할 거울이다. 우리 또한 그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추스러 볼 때이다.
최근 김건희씨가 검찰 수사를 앞두고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은 단지 개인의 병환 문제를 넘어 한국 의료계의 도덕성과 병원의 공공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병원은 본디 고통 받는 자들의 안식처이며 진단과 회복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위의 사례처럼 병원이 사회적 책임 회피의 장소로 악용된다면 사람들은 병원을 더 이상 ‘회복의 성소’가 아닌 ‘면죄부 공장’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더불어 우리 공동체는 무너진 공정 앞에 상처받고 괴로워할 것이다.
만약 병원의 명예나 개인의 안위를 위해 의학적 기준을 무너뜨린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저울질하는 일이 된다. 의사는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숭고한 직업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진실하고 공정하게 모든 환자들을 대해야 한다.
“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잠언 31장 8절) 침묵하는 병원의 행태는 도덕적 무감각의 시작이다. 이번 사례에서 대형병원은 입원 결정의 이유나 경과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어쩌면 의학적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병원이 침묵할수록 세상은 더 큰 오해와 냉소로 반응한다. 대중의 눈에는 병원이 “정의보다 권력에 순응한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독병원 의료인으로서 병원이 단지 환자의 아픈 몸만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정의의 가치를 외면하지 않을 성소임을 잊어선 안 된다.
“너는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뇌물을 받지 말라.”(신명기 16:19) 진정한 의사의 용기는 거절해야 할 때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병든 자를 외면하지 않으셨지만 동시에 진리를 왜곡하거나 편법을 정당화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때때로 ‘의사답다’는 칭찬을 들으려면 단지 병을 잘 고치는 기술자여야 할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사의 윤리는 질병을 치료할 때와 마찬가지로 억압적 사회 현실 앞에서도 진실 앞에 투명한 자세를 용기 있게 견지하는 데서 시작된다. 환자가 권력자든 유명인이든 병원이 침묵하거나 눈을 감을수록 결국 사회 전체가 병들어간다.
병원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은혜의 공간이 되어야지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패가 되어선 안 된다. 이번 일은 우리 의료계 전체가 돌아봐야 할 거울이다. 우리 또한 그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추스러 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