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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하기 - 채희종 논설실장
2024년 06월 20일(목) 21:30
순수 창작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대로 ‘따라하기’, 즉 ‘흉내내기’를 우리는 모방이라고 한다.

17~18세기 프랑스에서는 가발이 패션 소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현재도 가발은 헤어 스타일을 바꾸는 패션 용품으로 사용하지만 실은 대머리를 가리기 위한 행동을 따라한 것이 패션으로까지 발전한 사례이다. 루이 13세는 격무에 시달린데다 왕후인 ‘앤’의 바람기로 인한 스트레스 탓에 20대 초반에 머리털이 모두 빠졌다. 루이 13세는 대머리를 가리기 위해 가발을 쓰기 시작했고, 신하들은 왕이 민망하지 않도록 자발적으로 가발을 착용했다. 루이 13세를 이은, 루이 14세는 대머리가 아님에도 탈모를 가리기 위해 가발을 썼다. 이같이 상류사회에서 시작된 가발은 점차 중산층 이상 남성들의 필수품이 됐다. 특히 흰색 가발을 선호했는데 흰색이 권위와 지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흰색 파우더를 가발에 뿌려서 꾸몄고, 가발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이 파우더에 세금까지 매겼다. 화장실을 ‘파우더룸’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가발에 파우더를 뿌리는 룸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동양에서는 맹목적으로 흉내내는 모방을 비꼬는 사자성어로 ‘서시효빈’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4대 미녀 중 한 명인 ‘서시’는 기록상 심장질환이 있었던 듯 하다. 그녀는 가슴의 통증 탓에 눈살을 심하게 찌푸리는 표정을 자주 지었다. 그러나 경국지색의 미모인지라, 그 찌푸림마저 색다른 매력으로 사람들 눈에 비쳤다. 서시가 사는 마을에 아주 추하게 생긴 처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서시처럼 보이고 싶어서 얼굴을 찌푸리고 돌아다녔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질겁했다는 얘기이다.

1세대 벤처사업가로 최근 별세한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은 “부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며 515억원을 한국과학기술원에 쾌척하면서 “이 돈을 모방하는데 쓰지 말라. 미래 국민을 먹여 살릴 인재를 양성하고 기술을 개발해달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모방의 한계는 명확하다. R&D분야가 선진국을 모방하지 않고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예산 지원 확대와 관심이 더 필요하다.

/채희종 논설실장 cha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