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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 박성천 문화부장
2024년 05월 12일(일) 21:30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이육사(1904~1944)는 생전에 주옥 같은 시를 썼다. ‘광야’(曠野)는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 가운데 하나다. 1945년 해방 이후 동생 이원조에 의해 ‘자유신문’에 발표됐으며 이육사의 후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일본 제국주의에 강렬하게 저항했던 의열단 단원이기도 했던 이육사의 유일한 바람은 독립이었다. ‘광야’라는 시에는 민족의 비극과 저항의지가 서정적이면서도 강렬한 어조로 형상화돼 있다. 이원록이라는 본명 대신 이육사로 불리게 된 데는 형무소 복역 당시 수인번호가 ‘264’였기 때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광야’하면 떠올릴 수 있는 또 다른 인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모진 역경과 고난을 감내했던 그를 일컬어 ‘인동초’라 한다. 얼마전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서 민주주의 역사를 관통하는 김대중 생애를 조명한 ‘김대중, 다시 광야에서’가 개막했다.

이육사의 ‘광야’에서 모티프를 차용한 ‘다시 광야에서’는 다양한 생각거리를 주는 기획전이다. 아득히 너른 들을 뜻하는 ‘광야’는 고통과 고난, 인고를 함의한다. 5·18 주간에 보게 되는 김대중의 일대기는 민주와 인권, 평화의 광주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일제 강점기 올곧은 민족정신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옥사했던 이육사와 사형선고라는 역경을 딛고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김대중은 ‘광야’라는 공통점이 있다.

올해는 이육사 탄생 120주년, 김대중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고난 속에서도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각기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고’, ‘행동하는 양심’을 견지했던 이들의 삶은 세월이 흐를수록 빛을 발한다. 누구에게나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막막한 광야와 같은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개인을 넘어 사회나 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혹여 지금 그 광야를 지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머잖아 실현될 꿈을 생각하며 힘냈으면 한다.

/박성천 문화부장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