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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예항] ‘맑은 사람을 위한 책의 집’ 운영…괴테연구자 전영애
“인간이 방황하는 건 志向이 있기 때문이죠”
<지향:뜻이 쏠리는 방향>
28일 ‘젊은 괴테의 집’ 개관
괴테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공간
전체 테마는 ‘지혜’ ‘극복’
“가든하우스·정원·무대 지을 것”
바이마르 괴테학회 ‘괴테 금메달’
2023년 10월 23일(월) 19:20
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는 바이마르 괴테학회에서 주는 ‘괴테 금메달’을 동양 여성 최초로 받은 괴테 연구 석학이다.
“(전영애 교수가) 번역한 수많은 작품들의 폭을 구체적으로 상상을 해보자면, 그야말로 모범적인 도서관·서재 하나가 되겠습니다. 믿어지질 않아서 자문하게 되어요. 한국에서는 하루가 몇 시간일까 하고요.”

지난 2011년 6월, 테렌스 제임스 리드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독일 바이마르 괴테학회의 ‘괴테 금메달’ 시상식 축사에서 수상자를 상찬했다. 그 해 ‘세계 독문학, 문화 분야의 최고 영예’를 동양 여성 최초로 안은 수상자 전영애(72)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 그는 여백서원(如白書院)을 열어 ‘괴테 전집’(총 24권 예정)을 비롯한 독일 문학작품 번역 작업과 ‘나무 고아원’ 가꾸기 등으로 여전히 하루 24시간을 쪼개 쓰고 있다. 오는 28일 ‘괴테마을’(Goethe Dorf)의 첫 발걸음으로 ‘젊은 괴테의 집’을 개관하는 ‘서원지기’ 전 교수를 만났다.

◇‘마지막 수업’에서 “노후 직업은 ‘박수부대’”

‘爲如白(여백을 위하여) 爲後學(후학을 위하여) 爲詩(시를 위하여).’ 전영애 교수는 지난 2014년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걸은리에 여백서원을 열었다. 본관인 ‘여백재’ 천장에 올린 대들보 상량문에 쓴 여덟 자의 한자는 여백서원의 존재이유다.

‘여백’(如白)은 ‘흰빛과 같다’는 의미로, 인품이 맑아 친구들이 지어준 선친(전우순)의 호이다. 그래서 여백서원은 ‘흰빛처럼 맑은 사람들을 위한 책의 집’, 그리고 ‘아끼는 제자들이 가끔씩 숨 막히는 일상을 잠깐 떠나와 숨 돌리고 가라고, 그리고 돌아가서 다시 자기일 잘해가라며 지은 집’, ‘도시에서 시달리던 사람들이 와서 조금 숨을 돌릴 수 있는 여백(餘白)과도 좋은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다.

오래전부터 ‘개집 크기라도 좋으니 소반 놓고 앉아서 글만 쓸 수 있는 내 공간’을 간절하게 꿈꿨다. 이후 어렵사리 마련한 넓은 땅(3200평)을 혼자 쓸 수 없어 경험과 지식을 남들과 나누고 공유하겠다는 마음으로 서원을 열었다. 또 학교계단 틈새와 돌틈, 하수구 속 등에 잘못 뿌리를 내린 어린 나무들을 ‘구출’해 서원 곳곳에 옮겨 심었다.

‘3인분 노비’를 자처하며 촌부(村婦)처럼 삽자루와 장화 차림으로 ‘나무 고아원’을 가꾸면서 번역작업을 병행하는 주경야독(晝耕夜讀) 칠순 ‘괴테 할머니’의 일상이 TV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며 시청자들에게 ‘울림’을 줬다.(봉사자가 제작하는 유튜브 채널 ‘괴테 할머니 TV’에서도 ‘서원지기’ 전 교수의 일상을 살펴볼 수 있다.)

여백서원의 중심에 ‘종이시대(Paper Age)의 가장 생산적인 문인’으로 평가받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가 자리하고 있다. 전 교수는 지난 4월과 9월에 프란츠 카프카 단편선 ‘돌연한 출발’과 야코프·빌헬름 그림형제의 1857년 판 ‘그림동화’(이상 민음사 刊)를 출간했다. 특히 오래전부터 구상해왔던 ‘괴테마을’(Goethe Dorf)의 첫 발걸음으로 오는 28일 ‘젊은 괴테의 집’ 개관을 앞두고 있다.

오는 28일 ‘극복’을 테마로 문을 여는 ‘젊은 괴테의 집’
◇괴테마을 ‘젊은 괴테의 집’ 28일 개관

▲정년퇴임을 하던 2016년 6월 ‘마지막 수업’에서 “노후 직업은 ‘박수부대’”라며 “바른 걸음으로 큰 길을 가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박수를 쳐주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여백서원에 대해서도 “젊은 친구들에게 박수를 쳐주는 그런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서원을 지은 까닭은 무엇인가요?

“남들은 어떻게 보실지 모르지만 나름으로는 참 고생하면서 공부했거든요. 우리가 전체적으로 격려에 인색한 것 같아요. 날이 갈수록 비판은 잘하고, 남의 눈에 티는 너무나 잘 보고 그렇게 점점 분위기가 가는 것 같아서 조금 격려해주고 싶다는 생각은 정말 많이 했어요. 제 느낌이 벼랑에 매달려 있는데 누가 새끼손가락 하나만 내밀어도 올라갈 것 같은데 늘 그냥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습니다. 우리 함께를 강조하는데 사실 더 중요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잘 서야 해요. 그냥 묵묵히 자기 자리에 잘 서 있으면 좋겠어요. 다른 한편은 조금 내용이 있는 우리 시대 서원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오는 28일 ‘괴테 마을’의 ‘젊은 괴테의 집’을 개관합니다. 어떠한 생각에서 비롯됐나요?

“제 나름의 인생경험인데 큰 사람에 대한 태도가 되게 중요하겠다 싶더라고요. 어떤 큰 인물에 대해 보통 사람들은 무심하고, 소수 사람들은 괜히 미워해요. 그리고 ‘이거 뭐지?’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따라갑니다. 그래서 큰 인물을 따라갈 수 있는 예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괴테 마을’ 모토는 선명합니다. 하나는 ‘사람이 뜻을 가지면 얼마나 클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괴테의 다면성을 통해서 보여주고, 또 하나는 ‘나중에 크게 된 사람은 자기를 어떻게 키웠는가?’예요. 되게 궁금하잖아요. 그런 것을 샘플로 보여주고 싶어서 ‘괴테마을’까지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젊은 괴테의 집’은 어떤 점에 중점을 뒀나요?

“바이마르는 그때나 지금이나 인구 6000명밖에 안 되는 도시인데 세계인들이 찾아오잖아요. 우리가 버린 게 너무 많아서 버린 것도 좀 돌아보고, 조금 숨 돌리고, 자기 좀 가다듬고 그러면서도 시대에 맞춰서 조금 큰일도 도모해보고, 자기를 좀 더 잘 키우려고 해요. 닥쳐오는 어려움에 대한 태도는 짓눌려서 주저앉을 수도 있고, 잘 견뎌갈 수도 있고, 가까스로 견딜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넘어서면 굉장히 커질 수 있잖아요. 특히 괴테 같은 경우는 그 문제들을 대하는 자세가 정말 놀라워요. 확 뛰어넘어요. ‘젊은 괴테의 집’ 전체의 테마는 ‘극복’입니다.”

◇“‘시정’에 글 쓰러 갈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

“극복은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약자여서 1층 ‘지관서가’(止觀書架)는 역경을 이겨내는 지혜(克)와 현실에서의 바른 걸음을 탐구하는 지혜(復)를 담은 책들의 공간이고, 2층은 ‘극복’을 훌쩍 뛰어넘어 도약한 젊은 날 괴테의 경험 사례들이 담긴 공간입니다. ‘단순히 고난을 이겨냄에 그치지 않고, 현실로 돌아와 예를 회복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그냥 가까스로 넘어서고 바로 서는 정도가 아니라 확 뛰어서 넘어가는 이런 일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젊은 괴테의 집’ 1층 ‘지관서가’ 북 큐레이션은 왼편 서가에 세계문학전집을 중심으로 역경을 이겨내는 지혜(克)를, 오른편 서가에는 현실의 길을 탐구하는 바른걸음의 지혜(復)을 배치했다.

‘젊은 시절에 소망한 것은 노년에 풍성하게 이루어진다.’ ‘조개들이 살을 껍질 밖으로 펼쳐 낼 때 물에 뜨듯이, 그렇게 나는 사는 걸 배웁니다.’

‘서원지기’ 전영애 교수는 괴테 자서전 ‘시와 진실’ 속 “우리의 소망이란 우리들 속에 있는 능력의 예감이다”라는 문장에서 괴테를 모델로 자신을 성찰하는 공간인 ‘괴테마을’을 꿈꿨다.
2층 벽면에는 괴테의 ‘파우스트’와 자서전 ‘시와 진실’에서 전 교수가 가려 뽑은 문장들이 걸려 있다. 특히 ‘괴테 아버지의 서재’에는 전 교수가 독일에서 어렵게 가지고 온 괴테의 육필 ‘파우스트’ 영인본 책장을 직접 넘겨볼 수 있도록 배치해 놓았다. 괴테가 세상을 떠나기 전 직접 수정한 부분이 종이로 덧붙여져 있다. 전 교수는 ‘젊은 괴테의 집’을 내방객들이 괴테만 둘러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미 ‘괴테마을’의 마스터플랜을 머릿속에 완벽하게 구상해뒀다. 앞으로 첫 홀로서기의 집인 ‘괴테의 정원집’(가든 하우스)과 괴테 정원, 야외 무대를 ‘무슨 수가 있어도’ 지어나갈 계획이다.

전 교수는 “하나의 언어를 알면 세계가 열린다”고 강조한다. 공부를 하기 위해 읽지만 좋은 글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다. 많은 독일 문학작품을 번역하며 ‘글을 배워온 이유’와 ‘문학의 힘’에 대해 통감했다. 특히 1999년 광주에서 ‘아우슈비츠 문학’을 주제로 한 강연을 계기로 출판된 이작 카체넬존의 시집 ‘유리병 속의 편지’(원제 ‘뿌리 뽑힌 유대민족의 큰 노래’)가 그러했다. 전 교수의 학문세계는 카프카에서 시작해 파울 첼란과 동·서독 분단문학을 거쳐 괴테로 나아갔다. 괴테는 ‘문학연구의 마지막 탐구대상’이자 ‘독문학의 종착’이었다. 전 교수는 정년퇴임 무렵부터 연구서 4권을 포함해 총 24권으로 예정하는 ‘괴테 전집’을 추진하고 있다. ‘운문(韻文)처럼, 첫 번역처럼’이라는 제목을 붙인 ‘파우스트’ 옮긴이 해제에서 전 교수의 새로운 번역에 대한 열망을 찾아볼 수 있다.

“‘파우스트’의 우리말 번역은 이미 참 많이 나와 있다. 그런데도 이렇듯 다시 번역한 것은 수십 년을 두고 책이 낱장이 되어 흩어질 때까지 읽으면서 품어온 소망 때문이다. 운율의 보고(寶庫)인 ‘파우스트’를 나만의 언어로, 조금이나마 운문답게 옮겨보고 싶었다.”

전 교수는 그동안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로 굳어져 번역돼온 ‘파우스트’의 핵심적인 구절을 “인간은 지향(志向)이 있는 한 방황한다”(Es irrt der Mensch, solong’er strebt)로 바꾸었다.

전 교수는 날이 저문 후 두 칸 한옥 ‘시정’(詩亭)에 올라간다. ‘시정’ 앞에 깊은 뿌리를 내린 ‘구출 1호’ 20여 년 생 느티나무가 널찍한 초록 우산을 펼치고 있다. 그 옆으로 전망대까지 ‘괴테 오솔길’이 이어진다. “이 작은 집에서 제 책이 다 쓰였습니다. 지금도 밤에 등불을 들고 ‘시정’에 글 쓰러 갈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 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