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선 눈으로 울어도 입으로는 웃겼지”
[굿모닝예향] 여성국극 1세대 배우 조영숙 명인
광주극장서 ‘만리장성’ 보고 매료돼 국극 연구생 입단
1950년대 힘든 시대 위로한 여성국극 맥 75년간 이어
명창들 국가무형문화재 지정됐지만 여성국극은 제외
여성국극 예술성·가치 보전 위해 무형문화재 지정돼야
국가무형문화재 이동안 선생으로부터 발탈 전수 받아
광주극장서 ‘만리장성’ 보고 매료돼 국극 연구생 입단
1950년대 힘든 시대 위로한 여성국극 맥 75년간 이어
명창들 국가무형문화재 지정됐지만 여성국극은 제외
여성국극 예술성·가치 보전 위해 무형문화재 지정돼야
국가무형문화재 이동안 선생으로부터 발탈 전수 받아
![]() 국가무형문화재 발탈 보유자인 조영숙 명인. |
1948년 태동해 1950년대 서민들을 위로하며 인기를 끌었던 여성국극(國劇)은 여성만으로 공연한 한국형 국악 뮤지컬이었다. 판소리와 창극을 바탕으로 여성 배우들이 남성·여성 배역을 맡아 무대에서 창(唱)·무(舞)·악(樂)·극(劇)을 선보였다. 노래·연기·춤을 갖춘 여성국극 배우들은 요즘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정년이’에 이어 최근 다큐 ‘여성국극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감독 유수연)가 개봉되며 여성국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952년 데뷔해 70여 년 한길을 걸어온 여성국극 1세대 배우이자 국가무형문화재 발탈 보유자인 광주 출신 조영숙(92) 명인의 예술인생을 듣는다.
◇75년 만에 광주극장에서 ‘관객과의 대화’=“첫 무대에 올라갔던 옛날 일이 새록새록 생각나요. (1952년 2월 데뷔하던) 그날 광주극장에서 내가 저 자리에 서서 ‘장군님 어서 피하셔야 하옵니다!’ 대사를 했다고 하려다 말았어요. 그 무대에 다시 올라 관객을 만날 수 있어서 감격했어요.”
조영숙 명인에게 광주극장은 각별한 공간이다. 17살이던 1951년 6월에 광주극장에서 국극사의 창극 ‘만리장성’을 보고 매료돼 두 달 뒤 임춘앵(1924~1973) 선생이 이끄는 ‘여성국극 동지사’에 연구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듬해 2월 광주극장 무대에 올려진 창단 공연작 ‘공주궁의 비밀’에서 단역인 ‘군졸1’로 데뷔했다.
조 명인은 지난 3월 28일, 다큐 ‘여성국극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 관객과의 대화(GV)를 위해 광주극장을 다시 찾았다. 75년 전 데뷔했던 광주극장 무대에서 갖는 ‘관객과의 대화’ 자리는 더욱 의미 깊었다. 다큐는 조영숙 명인 등 1세대 여성국극 원로배우들과 3세대 박수빈(40) 여성국극제작소 대표, 황지영(33) 전 공동대표를 중심으로 합심해 ‘레전드 춘향전’을 무대에 올리는 과정을 카메라에 오롯이 담았다.
서울 성북구 동선동 지하 연습실에서 만난 조 명인은 “이제 역사를 하자면 이런 드라마가 없다”면서 75년 예술인생 여정을 풀어냈다.
-여성국극 무대에서 여러 배역을 하셨습니다. 가장 애정하는 배역은 어떤 역할이신가요?
“역시 재담(才談)과 ‘춘향전’ 방자, 그거를 내가 생각을 해도 참 잘했어요. 지금도 내가 하라고 그러면 안 잊어버렸는데 글로 쓰시는 양반이니 목소리는 뭐 넣어봤자지….
-(웃음)그래도 ‘춘향전’에서 방자가 하는 대표적인 재담을 들려주세요.
“남원 광한루에서 이 도령이 방자에게 (그네를 타고 있는) 춘향이를 데리고 오라해요. 방자가 갈 때도 멋있어요. 그래 갖고 춘향이를 꼬시는데 영 안 넘어오거든. 마지막에는 ‘어야, 우리 도련님 역정 나시면 참 무서우니’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춘향이가 ‘무서우면 어쩔 테냐. 뭐 내가 죄를 지었나, 구슬에 매인 몸인가’ 이러거든. 방자가 ‘허~. 너 이 세상 사람들이 태어날 적에는 다 그곳 산천정기를 타고 나는 법이여. 그러니까 우리 도련님 성품을 이를 테니까 한번 들어봐라’ 해놓고 이제 소리가 나오는 거예요.(명인은 마치 무대에 오른 듯 ‘춘향전’ 방자의 ‘산세(山勢)타령’ 대목을 들려주었다. 사설(辭說)과 창(唱)을 하자 금세 조 명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얼굴에도 활기가 돌았다.) ‘경상도 산세는 산이 웅장하기로 사람이 나면 정직하고, 전라도 산세는 산이 촉(矗·높이 솟아 삐죽하다)하기로 사람이 나면 재주 있고, 충청도 산세는 순순하기로 사람이 나면 인정이 있고, 경기도를 올라 한양터 보면…’. 맛있게 재담도 하고, 노래도 잘하고, 꿀뻑나게 한 게 방자 역할이에요. 그렇게 쉬운 역할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삼마이’(三枚·일본 전통연극인 가부키에서 웃음을 담당하는 조연)라는 것은 가르쳐도 아무나 못해.”
-여성국극에서 웃기는 역할을 하는 ‘삼마이’에 애착을 가지고 계십니다.
“‘삼마이’인 나는 무대에서 항상 웃어야 되잖아. 눈은 눈물이 고이고, 입은 웃는 말을 해야 되니까, 가슴에는 시커먼 멍이 들고 한(恨)이 가득 차갖고 관중들을 웃기고 재미난 놀이도 하고 그래요. (눈시울을 붉히며) 그것이 진짜로 내가 즐거워서 하는 것처럼 그렇게 해야 손님들도 즐거울 것 아니에요. 그래서 내가 (방자 역할에) 애착이 더 갔을 런지도 몰라. ‘선화공주’에서 서동이 역할을 할 때는 슬픈 노래가 많은데 꼭 눈물이 나. 참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75년 여성국극과 발탈 한길=“나에게는 영 놓지 못하는 예술세계가 있다. 여성국극,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그의 몰락에 안타까운 마음은 꿈속에서도 못 잊는다. 먼저 가신 분들과 꿈속에서도 여성국극의 무대를 분주히 오간다. 대한민국의 여성국극이란, 전통국악예술을 근본으로 하고, 특히 판소리를 근간으로 만들었다. 연극, 음악, 창, 무용을 망라해 여성국극인들이 소리극 무대로 표출하여 이루어 낸, 국악 무대예술의 총체적 결정체이다.”
여성국극 1세대인 조영숙 명인은 지난 2022년 펴낸 ‘여성국극의 뒤안길’(민속원 刊)에서 여성국극에 대한 끝없는 애정을 드러낸다. 1951년 여름, 여성국극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디딘 후 지금까지 75년에 이르는 장대한 시간동안 여성국극의 맥(脈)을 잇고 있다.
조 명인이 여성국극의 세계로 들어선 것은 운명적 이었다. 1934년 광주에서 조몽실(1902~1949) 명창의 외동딸로 태어난 그는 유년기부터 함경남도 원산에서 성장했다. 어머니는 딸이 ‘소리꾼’이 아닌 교사가 되길 바랐다. 1948년 원산 효성여중(나중 제2여중으로 개칭)을 졸업한 후 11대 1의 경쟁을 뚫고 원산 사범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이때 학업과 연극, 운동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 ‘숫도깨비’라는 별명을 얻었다. 교내 연극제에서 인기상을 받기도 했다. 인생 최초의 무대 경험 이었다. 전화(戰禍)를 피해 어렵사리 고향으로 돌아온 후 이종 사촌언니의 권유로 광주극장에서 국극사의 창극 ‘만리장성’과 운명적으로 만나며 그의 인생 항로가 바뀌어 버렸다.
◇“여성국극, 무형문화재 지정해야”=조영숙 명인은 국가무형문화재 발탈 보유자이다. 판소리 명창인 선친(조몽실)과 호형호제 하는 국가무형문화재 이동안(1906~1995) 선생의 권유로 1980년대에 발탈을 시작하게 됐다. 2000년에 전수조교가 됐고 2012년에 국가 무형문화재(발탈 재담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발탈은 ‘탈(얼굴)을 씌워 사람으로 꾸민, 이른바 발인형과 어릿광대가 서로 소리와 재담을 주고받는 극’이다. 여성국극의 ‘재담꾼’과 발탈의 ‘어릿광대’는 닮은꼴이어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었다.
웹툰 ‘정년이’를 원작으로 동명의 국립창극단 창극(2023년 3월) 공연과 tvN 12부작 드라마(2024년 10~11월) 방영에 이어 최근 다큐 ‘여성국극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가 개봉되며 잊혀졌던 여성국극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고 있다. 구순의 원로 배우는 여전히 무대에 오를 만큼 여성국극의 열정을 품고 있다. ‘레전드 춘향전’(2023년 8월)에서는 월매를, 원산 사범전문학교 재학당시 별명을 붙인 ‘조 도깨비 영숙’(2024년 7월) 공연에서는 서동, 철쇠, 석품, 왕, 선화공주까지 1인5역을 소화했다.
명인에게 여성국극은 ‘없어져서는 안 될 문화유산’이자 ‘내 생명’과 다름없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명인은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을 밝혔다.
“내가 광주에서 꿈꾸는 게 뭐냐면, 여성국극 했던 것 토막극으로 정리를 했어요. ‘춘향전’, ‘견우와 직녀’에서도 어느 대목, 어느 대목 있잖아요. 그러니까 광주에서 그런 공연이 한번 딱 있으면 좋겠네요.”
/글=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민속원 제공
![]() 여성국극 1세대 배우이자 국가무형문화재 발탈 보유자인 조영숙(92) 명인은 70여 년 전통예술을 잇는 외길을 걸어왔다. |
◇75년 만에 광주극장에서 ‘관객과의 대화’=“첫 무대에 올라갔던 옛날 일이 새록새록 생각나요. (1952년 2월 데뷔하던) 그날 광주극장에서 내가 저 자리에 서서 ‘장군님 어서 피하셔야 하옵니다!’ 대사를 했다고 하려다 말았어요. 그 무대에 다시 올라 관객을 만날 수 있어서 감격했어요.”
![]() 조영숙 명인(왼쪽에서 두 번째)은 지난 3월 28일 광주극장을 찾아 다큐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광주극장은 조 명인이 1952년 2월 여성국극 배우로 데뷔한 공간이기도 하다. <광주극장 제공> |
조 명인은 지난 3월 28일, 다큐 ‘여성국극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 관객과의 대화(GV)를 위해 광주극장을 다시 찾았다. 75년 전 데뷔했던 광주극장 무대에서 갖는 ‘관객과의 대화’ 자리는 더욱 의미 깊었다. 다큐는 조영숙 명인 등 1세대 여성국극 원로배우들과 3세대 박수빈(40) 여성국극제작소 대표, 황지영(33) 전 공동대표를 중심으로 합심해 ‘레전드 춘향전’을 무대에 올리는 과정을 카메라에 오롯이 담았다.
서울 성북구 동선동 지하 연습실에서 만난 조 명인은 “이제 역사를 하자면 이런 드라마가 없다”면서 75년 예술인생 여정을 풀어냈다.
-여성국극 무대에서 여러 배역을 하셨습니다. 가장 애정하는 배역은 어떤 역할이신가요?
“역시 재담(才談)과 ‘춘향전’ 방자, 그거를 내가 생각을 해도 참 잘했어요. 지금도 내가 하라고 그러면 안 잊어버렸는데 글로 쓰시는 양반이니 목소리는 뭐 넣어봤자지….
-(웃음)그래도 ‘춘향전’에서 방자가 하는 대표적인 재담을 들려주세요.
“남원 광한루에서 이 도령이 방자에게 (그네를 타고 있는) 춘향이를 데리고 오라해요. 방자가 갈 때도 멋있어요. 그래 갖고 춘향이를 꼬시는데 영 안 넘어오거든. 마지막에는 ‘어야, 우리 도련님 역정 나시면 참 무서우니’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춘향이가 ‘무서우면 어쩔 테냐. 뭐 내가 죄를 지었나, 구슬에 매인 몸인가’ 이러거든. 방자가 ‘허~. 너 이 세상 사람들이 태어날 적에는 다 그곳 산천정기를 타고 나는 법이여. 그러니까 우리 도련님 성품을 이를 테니까 한번 들어봐라’ 해놓고 이제 소리가 나오는 거예요.(명인은 마치 무대에 오른 듯 ‘춘향전’ 방자의 ‘산세(山勢)타령’ 대목을 들려주었다. 사설(辭說)과 창(唱)을 하자 금세 조 명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얼굴에도 활기가 돌았다.) ‘경상도 산세는 산이 웅장하기로 사람이 나면 정직하고, 전라도 산세는 산이 촉(矗·높이 솟아 삐죽하다)하기로 사람이 나면 재주 있고, 충청도 산세는 순순하기로 사람이 나면 인정이 있고, 경기도를 올라 한양터 보면…’. 맛있게 재담도 하고, 노래도 잘하고, 꿀뻑나게 한 게 방자 역할이에요. 그렇게 쉬운 역할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삼마이’(三枚·일본 전통연극인 가부키에서 웃음을 담당하는 조연)라는 것은 가르쳐도 아무나 못해.”
-여성국극에서 웃기는 역할을 하는 ‘삼마이’에 애착을 가지고 계십니다.
“‘삼마이’인 나는 무대에서 항상 웃어야 되잖아. 눈은 눈물이 고이고, 입은 웃는 말을 해야 되니까, 가슴에는 시커먼 멍이 들고 한(恨)이 가득 차갖고 관중들을 웃기고 재미난 놀이도 하고 그래요. (눈시울을 붉히며) 그것이 진짜로 내가 즐거워서 하는 것처럼 그렇게 해야 손님들도 즐거울 것 아니에요. 그래서 내가 (방자 역할에) 애착이 더 갔을 런지도 몰라. ‘선화공주’에서 서동이 역할을 할 때는 슬픈 노래가 많은데 꼭 눈물이 나. 참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75년 여성국극과 발탈 한길=“나에게는 영 놓지 못하는 예술세계가 있다. 여성국극,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그의 몰락에 안타까운 마음은 꿈속에서도 못 잊는다. 먼저 가신 분들과 꿈속에서도 여성국극의 무대를 분주히 오간다. 대한민국의 여성국극이란, 전통국악예술을 근본으로 하고, 특히 판소리를 근간으로 만들었다. 연극, 음악, 창, 무용을 망라해 여성국극인들이 소리극 무대로 표출하여 이루어 낸, 국악 무대예술의 총체적 결정체이다.”
여성국극 1세대인 조영숙 명인은 지난 2022년 펴낸 ‘여성국극의 뒤안길’(민속원 刊)에서 여성국극에 대한 끝없는 애정을 드러낸다. 1951년 여름, 여성국극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디딘 후 지금까지 75년에 이르는 장대한 시간동안 여성국극의 맥(脈)을 잇고 있다.
조 명인이 여성국극의 세계로 들어선 것은 운명적 이었다. 1934년 광주에서 조몽실(1902~1949) 명창의 외동딸로 태어난 그는 유년기부터 함경남도 원산에서 성장했다. 어머니는 딸이 ‘소리꾼’이 아닌 교사가 되길 바랐다. 1948년 원산 효성여중(나중 제2여중으로 개칭)을 졸업한 후 11대 1의 경쟁을 뚫고 원산 사범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이때 학업과 연극, 운동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 ‘숫도깨비’라는 별명을 얻었다. 교내 연극제에서 인기상을 받기도 했다. 인생 최초의 무대 경험 이었다. 전화(戰禍)를 피해 어렵사리 고향으로 돌아온 후 이종 사촌언니의 권유로 광주극장에서 국극사의 창극 ‘만리장성’과 운명적으로 만나며 그의 인생 항로가 바뀌어 버렸다.
◇“여성국극, 무형문화재 지정해야”=조영숙 명인은 국가무형문화재 발탈 보유자이다. 판소리 명창인 선친(조몽실)과 호형호제 하는 국가무형문화재 이동안(1906~1995) 선생의 권유로 1980년대에 발탈을 시작하게 됐다. 2000년에 전수조교가 됐고 2012년에 국가 무형문화재(발탈 재담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발탈은 ‘탈(얼굴)을 씌워 사람으로 꾸민, 이른바 발인형과 어릿광대가 서로 소리와 재담을 주고받는 극’이다. 여성국극의 ‘재담꾼’과 발탈의 ‘어릿광대’는 닮은꼴이어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었다.
웹툰 ‘정년이’를 원작으로 동명의 국립창극단 창극(2023년 3월) 공연과 tvN 12부작 드라마(2024년 10~11월) 방영에 이어 최근 다큐 ‘여성국극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가 개봉되며 잊혀졌던 여성국극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고 있다. 구순의 원로 배우는 여전히 무대에 오를 만큼 여성국극의 열정을 품고 있다. ‘레전드 춘향전’(2023년 8월)에서는 월매를, 원산 사범전문학교 재학당시 별명을 붙인 ‘조 도깨비 영숙’(2024년 7월) 공연에서는 서동, 철쇠, 석품, 왕, 선화공주까지 1인5역을 소화했다.
명인에게 여성국극은 ‘없어져서는 안 될 문화유산’이자 ‘내 생명’과 다름없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명인은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을 밝혔다.
“내가 광주에서 꿈꾸는 게 뭐냐면, 여성국극 했던 것 토막극으로 정리를 했어요. ‘춘향전’, ‘견우와 직녀’에서도 어느 대목, 어느 대목 있잖아요. 그러니까 광주에서 그런 공연이 한번 딱 있으면 좋겠네요.”
/글=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민속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