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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드러난 5·18 계엄군 잔혹 행위…시민 눈 담뱃불로 지졌다
5·18진상조사위 상반기 활동 보고서
전남대 진압작전에서 연행…옛 광주교도소 창고에 구금·구타
부산·강원 등 전국서 교사 16명·교수 87명·언론인 256명 해직
2023년 09월 20일(수) 20:00
1980년 5월 광주시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원이 시민을 진압봉으로 구타하고 있다. <광주일보 자료사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체포된 민간인의 눈을 담뱃불로 지지는 가혹행위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5·18민주화운동 관련 교사 16명과 교수 87명, 언론인 256명이 해직된 것도 새롭게 확인됐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는 20일 ‘2023년 상반기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활동보고서’를 내고 올해 6월까지의 조사 활동 사항을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21개 직권조사 사건과 138개의 신청사건중 75건을 조사중에 있으며 59건을 검토하고 있다.

조사결과 전남대학교 진압작전 과정에서 연행된 민간인들은 옛 광주교도소 외역창고에 구금당했고, 이 창고 안에서도 구금자들에 대한 가혹행위가 수시로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계근무를 담당하는 계엄군들과 합동수사본부 수사요원들이 구금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구타를 반복했다. 체포된 민간인이 눈동자를 굴렸다는 이유로 담뱃불로 눈을 지지는 가혹행위까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계엄군의 가혹행위는 자신들이 지키던 저지선이 뚫린데 대한 보복 성격이 짙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세아자동차에서 빼낸 자동차와 장갑차, 군용트럭 등을 몰고 온 시민군은 1980년 5월 21일 전남대 정문을 지키던 계엄군을 돌파했다.

이 과정에서 계엄군은 신안동 굴다리 부근까지 시위대를 밀어내면서 발포를 했다.

진상조사위는 5·18 전후 해직자(교수, 교사, 경찰관, 언론인 4개 직군)의 숫자도 확정했다.

5·18 관련 해직 교사들은 광주와 전주 일원에서 5·18민주화운동에 직접 참여하거나 부산·강원지역에서 광주의 진상을 알리는 유인물 제작에 참여하는 등의 이유로 구속·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고 해직됐다.

현재까지 16명이 확인됐고 이 가운데 2명은 1981년 7월 대전 아람회사건 관련자다. 공립학교 교사는 1명, 사립학교 교사는 15명이었다.

교수 해직자는 모두 87명이다. 이 가운데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 ‘광주사태’ 관련으로 예비검속돼 재판에 회부돼 해직된 교수는 19명이다.

1980년 4월 24일 재경대학교수 361명의 성명, 1980년 5월 15일 지식인 134인의 시국선언 등 ‘계엄해제’와 ‘정치일정 단축’ 등을 요구하는 시국선언과 시국강연에 참여하거나 주도한 혐의로 해직된 교수는 68명이다.

언론인의 경우 기자협회 김태홍 회장을 포함한 간부들은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 직전에 예비검속되거나 수배되었다가 검거·기소되면서 해직됐다. 이들은 ‘계엄사가 보도검열을 철폐하지 않을 경우 5월 20일부터 신문, 방송, 통신 등 모든 언론이 전면 제작거부에 들어가기로 결의’하는 등 저항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된 1980년 7월 하순부터 본격적으로 언론인 정화과정이 시작됐고 보안사가 정화 대상 언론인 명단을 작성했다. 보안사는 제작거부, 반정부, 부조리 등 사유를 적시해 각 언론사에 명단을 보내면서, 언론사의 자체 정화 형식으로 해고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을 통해 특정 정치인(김대중, 김영삼)과 가깝다거나 반정부, 제작거부 등을 이유로 해직된 언론인은 현재 256명으로 확인됐다.

시위진압에 소극적이었다는 이유 등으로 직위해제 또는 의원면직된 안병하 도경국장 등 전남도경 간부도 13명에 달했다.

진상조사위의 활동보고서는 2023년 12월 진상조사위 조사완료 기간이 끝나기 전 하반기 보고서(중간보고서)만 남겨두고 있다. 진상조사위는 올해 연말부터 내년 6월까지 최종 국가보고서를 제작한다.

하지만 아직 이번 상반기 보고서에도 남은 과제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개월 만에 미완의 과제들을 모두 규명해 최종국가보고서에 담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