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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와 교육 사이에서, 교사들이 아프다- 김재인 철학자,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
2023년 09월 19일(화) 00:00
교사들이 많이 아프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제 견딜 수 없을 정도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인공지능을 다룬 책 두 권을 썼다.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2017)와 ‘AI 빅뱅: 생성 인공지능과 인문학 르네상스’(2023). 시대적 관심을 끄는 주제다 보니 강연 요청이 잦다. 교사, 학부모, 학생, 행정가를 포함한 교육 현장의 수요도 꽤 된다. 교육은 전 국민의 관심사 아니던가.

일자리의 미래 문제와 더불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으로 ‘내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 있다. 내 답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미래는 어떻게 바뀔 지 모르니, 핵심 공통 역량을 길러줘야 대응할 수 있다. 핵심 공통 역량은 삶을 살아가며 인간과 사회와 자연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 역량이다.

흔히 언어를 도구 과목이라 부른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도구라고 한다. 영어를 모르면 영어로 쓰인 모든 것을 활용할 수 없다. 그래서 영어를 알아야 한다. 도구로서의 언어의 특징이다. 핵심 공통 역량은 오늘날 필요한 언어를 가리킨다.

과거에는 언어라 하면 한국어, 영어, 중국어 같은 자연어에 국한됐다. 자연어를 많이 익힐수록 더 많이, 더 깊게, 더 넓게 알 수 있었고, 그런 정보를 처리하고 종합해서 적용과 행동을 위한 지혜로 가공할 수 있었다. 이처럼 언어 이해와 활용 능력인 문해력(literacy)은 핵심 공통 역량이었다.

문제는 시대가 변해 자연어가 다가 아니게 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자연어 속에 모든 지식과 기술이 오롯이 담겨 있었지만, 오늘날의 언어는 자연어 외에도 수학, 자연과학, 기술, 예술, 디지털 등으로 확장했다. 따라서 확장된 언어를 다루는 능력, 즉 ‘확장된 문해력’이 필요해졌다. 인문학이 한동안 보여온 무력함과 공허함은 인문학의 핵심인 언어를 놓쳤다는 데서 왔다고 진단할 수 있다.

인문학은 언어를 다시 붙잡아야 한다. 단, 이때의 언어는 확장된 언어여야 한다. 확장된 언어, 확장된 문해력, 확장된 인문학이다. 여기서 인문학은 교육, 그 중에서 핵심 공통 역량을 담당하는 단위다. 한국의 대학 초기에 있었던 ‘문리대학(文理大學)’의 교육 기능과도 비슷하다. 다만 교육 내용은 지금 현실에 맞게 조정되어야 할 터이다.

확장된 인문학은 교양/전공의 이분법을 넘어 핵심 공통 역량 교육을 담당해야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확장된 언어 교육 말이다. 이 교육이 필요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사회생활을 하다가 직업 전환이 필요할 때 재교육을 받아야만 하는데, 이때 필요한 핵심 공통 역량을 어렸을 때 충분히 익혀야만 재교육이 가능해진다. 인공지능 때문이 아니더라도 역사를 보면 사라지는 직업과 생겨나는 직업 사이의 ‘과도기’가 항상 존재했다. 기초 공통 역량을 키워주면 과도기를 버틸 힘이 생긴다.

둘째, 전문가가 협업하는 융합 활동이 실현될 수 있다. 지금까지 융합 작업이 성공하지 못한 까닭은 전문가끼리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서다. 이른바 문과와 이과의 언어가 너무 일찍 분리된 탓이다. 협업의 기초는 소통과 이해다. 핵심 공통 역량은 협업의 토대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모든 이가 대체로 동의한다. 동시에 물음이 쏟아진다. 현실에서 실행 가능할까요? 입시의 장벽이 높고 높기에 다들 쓴웃음을 짓고 만다.

사실 모든 교사가 꿈꾸는 것은 핵심 공통 역량을 길러주고 학생 개개인의 미래를 함께 설계해주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꿈은 입시 앞에서 좌절된다. 오늘날 입시는 교육과 모순이다. 시험은 1차 목표는 역량 향상과 이를 위한 평가다. 현재의 시험 문제가 역량 향상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입시라는 현실과 교육의 꿈이 괴리될수록 교사들과 학생들은 더 아플 수 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