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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해법은 학교에 있다- 윤영기 체육부 부국장
2023년 03월 28일(화) 23:00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A군은 2021년 6월 “학교에서 맞고 다닌 게 너무 X팔리고 서러웠다”는 짤막한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판결문에 적힌 범죄 사실을 보면 몸과 영혼에 상처를 입고 홀로 신음하던 A군의 처절한 고통이 전해 온다. 폭행은 일상이고 목졸라 기절시키고 영상 촬영해 공개하기, 여학생 앞에서 옷 벗기기 등 헤아리기 어려운 범죄 사실이 적시돼 있다. 같은 학교 ‘친구’ 열 명이 2년 동안 ‘친구’를 짐승처럼 물어뜯어 죽음으로 내몰았다. 법정에서 “차라리 내 아들이 가해자가 돼 피고들처럼 재판받았으면 좋겠다”며 절규하던 부모는 광주를 떠났다.

이런 충격적인 사건에도 조용하던 나라가 ‘정순신’으로 시끄럽다. 넷플릭스 드라마와 맞물려 새삼 ‘학폭’(학교 폭력)에 대한 공분이 증폭되고 있으나 우리가 알게 되는 사실은 진부하다. 기득권과 가진 자들이 능력과 재력, 인맥을 동원해 살아가는 방식이다. 교육부는 학폭 대책 보완에 나섰고 국회에서는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교육부가 대책을 촘촘하게 짜고 법망을 강화해도 이들에게는 간단히 뛰어넘는 허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청문회를 100일 동안 열어도 A군을 비롯한 학교 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을 설명할 수 없다. 왜 부모와 친구에게 구명을 호소하지 않았고, 학교는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했을까 역시 규명할 수 없을 것이다. 청문 대상이 학폭이 아니라 정순신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지체되는 정의

정순신 사태의 본질은 학교에서 피해 학생들이 원하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숱한 유명인들이 인생의 결정적인 길목에서 뒤늦게 학교폭력에 발목 잡히는 이유다. 이들이 가해자로서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했다면 피해자라도 나서 감쌌을 테지만 그런 일은 없다.

한국교육개발원의 ‘2022년 1차 학교 폭력 실태조사 분석 보고서’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학생들이 학교 폭력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린 세 건 가운데 한 건은 해결되지 않았다. 가해자는 전학이나 퇴학 보다는 대부분 학교에 남아 낮은 징계를 받는다. 피해자는 2차 가해에 노출되고 얼굴만 봐도 치가 떨리는 가해자를 졸업할 때까지 마주쳐야 한다. 가해자들은 이런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다. 정순신 아들같이 든든한 배경을 둔 학생이라면 더 그렇다.

지난 2004년 제정된 학교 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전문에는 “피해 학생의 보호, 가해 학생의 선도·교육, 분쟁 조정을 통해 학생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육성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정 범죄의 처벌을 목적으로 적시한 형법과 달리 처벌을 내세우지 않는 게 이 법의 특징이다. 가·피해자가 청소년,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다. 교단에서는 아직도 학교 폭력을 생기부에 남기면 ‘낙인 효과’가 생긴다며 주저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교육적 이상주의를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피해자 호소에 귀 기울여야

교육부가 책상 머리에서 학폭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답은 현장에 있다. 학교 폭력 피해자였던 이호동 경신중 교사는 18년째 학교 안팎에서 학교 폭력 예방 활동을 하고 있다. 담임을 맡고 있는 학급의 급훈은 ‘학교 폭력 아웃’이다. 반장·부반장의 기본 자격 조건도 ‘학교 폭력을 담임에게 신고할 학생’이다. 담임이 학생들과 모든 일과를 보낼 수 없기 때문에 마련한 시스템이다. 그가 집약한 학폭 예방 문구는 정곡을 관통하고 있다. ‘친구가 괴롭힘 당하면 절대 가만 있지 말고 신고할 것’ ‘학교 폭력을 당하면 누구든 주변에 도움을 청할 것’ ‘친구에게 하는 장난·놀림은 그 자체로 학교 폭력이다’ 이 문구를 전단지에 적어 학교 밖에서 학생과 학부모에게도 나눠 주고 있다.

그는 “학교 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세뇌’가 필요하다”면서 “부모들이 아이 학교갈 때 차 조심을 강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교 폭력을 당하면 반드시 엄마 아빠에게 말하고, 친구가 같은 경우를 당해도 알리도록 매일 당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모와 교사가 학생들이 폭력에 저항하고 퇴치를 위해 연대하도록 일깨워야 한다는 게 요체다. 그렇지 않으면 내 아이가 학교에서 교통사고보다 더 큰 화를 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교육 당국은 학교에 만연한 폭력의 생태를 적출하고 근절책을 마련하려면 학폭 피해자와 가족, 현장 교사들을 먼저 만나야 한다. 이들의 피해 사례와 대처 과정에 학폭 대책의 한계와 해법이 담겨 있다. 폭력을 장난으로 여기는 가해자의 의식 상태와 행동 양식도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해법이 나온다.

/penfoot@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