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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서사소, 촌스러운 말 아닌 ‘귄 있는’ 매력상품으로
문화콘텐츠로 부활하는 사투리 - 사투리를 디자인하다
‘쪼깨 옇써라’ 용돈봉투·‘워메 더운그’ 달력 등 전라도 말로 만든 브랜드 인기
정겹고 구수해 광주기념품 역할 톡톡…‘역서사소’ 대표 2명 서울역서 전시도
2022년 10월 17일(월) 18:10
‘쌔빠지게 공부하자’ 등을 새겨놓은 사투리 볼펜.
‘워메’ ‘아따’ ‘징해’ ‘긍께’ 노트 앞면에 새겨진 글귀에 시선이 집중된다. 눈으로 보이는 텍스트일 뿐인데 친근한 사투리 억양이 귀에 들리는 듯 착 감긴다. “워~메” “아따!” “징해~” 입 밖으로 소리내어 읽는 사람들도 여럿 보인다. 이곳은 광주 광산구 송정동 1913송정역시장내 사투리 문구 브랜드 ‘역서사소’ 매장이다. ‘여기서 사세요’라는 뜻의 순 전라도 사투리 ‘역서사소’는 전국의 재미있는 사투리를 사용해 개발된 문구 브랜드다.

역서사소 브랜드가 탄생한 건 지난 2015년이다. 학교 선후배 사이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던 김효미(39)·김진아(38) 대표는 2013년, 다소 젊은 나이에 디자인크리에이티브그룹 ‘바비샤인’을 차리렸다.

대부분의 디자인 회사들이 그렇듯 고객의 의뢰를 받아 디자인 작업을 해오던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우리만의 브랜드’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7명의 디자이너가 모여 어떤 걸 하면 좋을까 고민을 하고 회의를 하다가 “광주·전남을 대표할 만한 지역의 성격을 갖는 브랜드면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광주를 대표할 만한 게 여러 가지가 있긴 해요. 하지만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어요. 무등산이나 무등산 수박도 있지만 많이 익숙한데다 비주얼로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 같았지요. 그러다가 전라도에서만 사용하는 우리말을 가지고 브랜드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시작하게 된 겁니다.”

처음에는 ‘전라도말로 무언가를 해봐야지’ 보다는 단순히 전라도 사투리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TV나 영화 때문인지 ‘전라도 사람들은 무식하고 거센말투를 쓰는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경상도 여성들이 귀엽게 ‘오빠야~’라고 부르는 것과 비교가 되기도 했다. ‘기양 해브러’ ‘기여 아니여’ ‘여간 낫낫허요’ ‘욜로잔 와보소’ 처럼 광주나 전라도에서 쓰는 말도 부산이나 경상도 말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재미있는 말이 많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1913송정역시장내에 자리한 ‘역서사소’는 사투리 문구 브랜드숍이다. 전라도 사투리로 디자인한 에코백과 엽서들.
역서사소가 만든 사투리 브랜드는 ‘글’이 디자인을 완성한다. 일반적으로 시각디자인은 그림이나 사진이 주를 이루는데 반해 도전적인 선택이었다.

“처음에는 사투리를 그림이나 이미지와 같이 표현해볼까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따’ 라던지 ‘워메’ 같은 단어가 특수한 한 가지 상황에서만 쓰이는 언어가 아니잖아요. 뭔가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워메!’ 하기도 하고 뭔가 일이 안풀릴 때 ‘워메~’ 하기도 하니까요. 이런 걸 표현하기가 힘든 거에요.”

두 대표는 무엇보다 사투리가 그저 촌스러운 말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우리의 언어라는 생각이 컸고, 표준어 뿐만 아니라 사투리도 우리가 지키고 보존해야 할 우리말 이라는 생각에 말에 집중할 수 있도록 텍스트 위주의 디자인을 선택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역서사소 브랜드를 인지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지금은 그림을 조금씩 넣거나 서체나 모양을 바꿔가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수첩이나 노트, 엽서, 필기구, 스티커 뿐만 아니라 에코백, 차량용 방향제, 컵에도 정겨운 전라도 말이 가득하다. 광주를 찾는 외지 관광객이나 고향을 찾은 이들이 기념품으로 구입할 정도로 광주기념품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사투리를 찾아서 문자화 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들어왔던 말이지만 이게 진짜 전라도 사투리가 맞는지 확인 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사전을 찾아보고 인터넷 포털 검색을 하거나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사투리 단어들을 발췌해서 그걸 입에 붙게끔 말을 수정하기도 한다. TV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도 사투리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메모를 하는 습관도 생겼다.

역서사소에서는 단순한 단어를 이용해서 문구를 만들기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문장 형식으로 사투리를 이용한다.

용돈 봉투에는 ‘여러운께 얼릉 받으쑈’(부끄러우니 어서 받으세요), ‘쪼깨 옇써라’(조금 넣었어요), 미니노트에는 역서사소 캐릭터 그림과 함께 ‘나 좀 카만 냅도야’(나 좀 가만히 내버려 둬), ‘나 맹키로 심 좀 내야써!’(나처럼 힘을 내봐!), ‘아따! 겁나게 좋그만’(아~ 너무너무 좋아) 등을 써 웃음을 준다.

‘고백엽서’에는 사랑을 표현하는 단어나 문장들을 인용하고 있다. ‘내 옆에 찰떡맹키로 뽀짝뽀짝 붙어 있으랑께’(내 옆에 찰떡처럼 가까이 가까이 붙어 있으라구), ‘오메- 지비 낯짝이 쪼-까 반반하요’(와우- 너의 얼굴이 너무 아름다워), ‘써글놈은 인자 잊아불고 멋진놈 맹글자’(지나간 사람은 이제 잊어버리고 멋진 나 만나자) 처럼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멘트를 전라도말로 만들었다. 돌려서 말하지 않고 직설적이면서 솔직한 전라도 사람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고백엽서는 경상도와 제주도 사투리 버전도 만날 수 있다. ‘마- 내 니만 생각카믄 진짜 돌아삐긋다’(있잖아 내가 너만 생각하면 너무 좋아 미치겠어), ‘고마 문디는 인자 잊아뿌꼬 까리한놈 여있데이-’(나쁜 놈은 이제 잊어버리고 멋진 나 여기 있어)… 말투나 억양이 강한 듯 거칠지만 따뜻함이 담겨 있는 경상도 사투리가 엽서 앞면을 장식하고 뒷면에 작은 글씨로 표준어 뜻풀이가 함께 쓰여 있다.

‘느영나영 두리둥실 소랑호게’(너랑나랑 둥실둥실 사랑하자), ‘넌 촘말로 귀하고 곱딱한 보물이우다’(너는 정말 귀하고 아름다운 보물이야), ‘너랑 이실때가 제라지게 지꺼지다’(너랑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해)… 제주도 사투리는 뜻풀이가 없으면 이해하기 힘들만큼 처음에는 생소하지만 알고 나면 재미있고 정겨운 우리말이다.

문자로 표현할 사투리를 찾는다는 건 역시나 어려웠다. 처음부터 ‘사투리를 찾아야지’라고 생각하면 더 막막하기만 했다. 하고싶은 말을 표준어로 먼저 적은 다음 번역하듯이 사투리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쳤다.

“지역의 오래된 말인 사투리는 우리가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우리의 언어”라고 강조하는 역서사소 김효미(오른쪽)·김진아 대표. <역서사소 제공>
눈으로 봤을 때도 어휘가 귀에 들리는 듯 익숙한 표현을 찾으려고 고심했고 간혹 잘 사용하지 않았던 단어들을 소개할 때는 문맥상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는 단어인지 두 번 세 번 생각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

다양한 사투리를 접하면서 우리말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것 같아요. 다른 언어에 비해 우리말은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굉장히 넓어요. 우리말을 배울수록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사투리도 마찬가지로 단순하게 만들어진 언어도 있겠지만 그 안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고 어떻게 해서 변화된 언어가 되었는지 공부할수록 배울게 많아집니다. 지역에서 늘상 사용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언어 안에 삶이 들어있구나 생각을 할수록 단어 하나를 사용할 때도 책임감을 갖게 되지요.”

지난해는 서울역에서 전시를 한 적이 있었다. 영화 대사나 노래 가사를 전라도 사투리로 번역해서 디자인을 가미해 액자에 담아 전시하기도 하고 화순 오일장을 찾아가 생활속에서 들리는 자연스러운 사투리를 영상에 담아 상영하기도 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과 함께 콜라보 사투리 맵백(Map Bag)을 제작하기도 했는데, ‘따뿍 담다’(가득 담아낸다), ‘여간 좋다’(은근히 좋다), ‘솔찬하다’(제법, 상당하다) 등 정겨운 전라도 말을 가방에 담았다.

김효미 대표에게 사투리는 특별한 말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들었던 말이고 자라면서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사용해오는 말이다. 자부심과 더불어 전라도 말을 지키고 아껴야겠다는 사명감도 생겼다.

“어렸을 때는 사실 억양이나 말투가 조금 창피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우리말을 사랑하게 됐고 이런 언어와 문화로 디자인을 하고 지역 관광상품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전라도의 말이 ‘거시기’만 있는 것도, 욕설 같은 거센 말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하고 아름다운 언어가 많다는 것도 알아주길 바랍니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