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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화·몰개성화 되고 있는 도시경관] 도시경관의 지향점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지형·기후에 따라 만들어진 도시
산업화에 획일적 모습으로 바뀌어
지역 자연·역사 고려 정체성 창출
공공공간·건축 외부 공간 중시
다양성·통일성 고려 대조적 조망
주민 의견 수렴 프로세스 필요
2022년 09월 20일(화) 23:00
이탈리아 피렌체의 맥락과 대조의 야경.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도시)의 지형과 기후에 순응하는 형태를 만들어 살아왔다. 그래서 세계 각지에는 지형과 기후가 석재나 목재, 흙 등의 재료와 결합해 형성된 독특한 형태의 경관을 갖는 지역들이 많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고도화된 기계기술을 이용한 지형과 기후 지배가 일반화되면서 도시들은 산업적·기능적·합리성이 잘 작동하도록 획일적 형태로 만듬으로써 경관도 획일적 모습을 갖게 됐다.

토지이용계획에 도시 구성 요소들이 입지할 부지의 위치와 규모·형태를 그리면, 그에 따라 부지에 목적물을 만드는 분업을 금과옥조처럼 실행해 왔다. 건축 등 도시 구성 요소는 분리돼 그 개별성을 바탕으로 자유를 얻고, 도시는 단지 이 결과만을 집합하는 일만을 해왔다. 이는 분업이 철저한 자동차의 생산 공정과 비슷한 것이다. 붕어빵 찍어내듯 같은 모습의 도시를 신속하게 만드는 ‘기능주의 사조’의 실현이었다.

거기에 건축물의 표정을 만들었던 양식적인 요소들마저 장애물로 인식, 폐기되면서 성냥갑과 같은 박스형 건축물이 도시경관을 지배하게 했다. 이는 산업사회를 유지하는 논리와 이념이 건축에 반영된 결과이자 어느 장소에나 적용이 가능한 보편주의 실현으로, 국가적(national)이 아닌 국제적(international)인 도시가 되게 했다. 건축가 루이스 설리반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고 한 것도 이와 맥을 함께 한다. 또 곡선은 당나귀의 길이고, 직선은 사람의 길이라고 했던 건축가 르꼴뷔제가 제안한 300만 명의 빛나는 도시 이미지의 충실한 실현이기도 했다.

그러나 맥락을 만드는 군집성이 무너지면서 개개 건축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이들이 모인 도시는 ‘혼돈’과 ‘몰개성’의 경관이 됐다. 거기에 자유를 얻은 건축이 부지의 가치를 최대로 활용하는 법규 디자인에 충실하면서 나타난 요철형 모습이 도시 경관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건축은 상당한 자유를 얻었지만, 도시는 자신의 경관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도시경관의 혼란 이면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형태를 만드는 건축, 경관을 만드는 도시

건축은 형태를 만들고, 이들이 모인 도시는 경관을 만든다. 도시 경관은 도시이미지를 만들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이 찾아오게 하는 도시경쟁력이 된다. 사는 사람들에게는 도시에 대한 공유인식을 갖게 함과 동시에 자부심과 애착이 된다. 근래에는 도시문화의 표현이자 사회적 자본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경관이 중요하다. 거기에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을 아름답게 하려는 주민들의 욕구가 높아지면서 경관은 도시의 공유자산으로까지 인식되고 있고, 때론 이를 지키기위한 주민들의 행동도 나타나고 있다. 경관이 시민 가까이에 다가 선 것이다.

일본 교토의 사라가와라는 전통마을에서는 자기집을 헐고 맨션을 지으려 했을 때 주민들은 지역경관은 공유재산이라고 하면서 반대했다. 비록 한 채의 개인 소유의 집이라고 하더라도 전혀 다른 형태의 건축이 출현하면, ‘문맥적 동네 경관’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 번 파괴된 ‘문맥’은 되살리기 어렵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건축이 만드는 형태가 좋은 도시 경관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건축의 존재방식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1990년대 초에는 국제 현상공모로 탄생한 교토역은 그자체로 탄성을 지를 만큼, 형태나 공간 구성 측면에서 교토의 또하나의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교토사람들은 당초 이를 강력 반대했었는데, 문제가 된 것은 높이였다. 교토 사람들은 높은 교토역이 교토를 둘러 쌓고 있는 400여m의 삼산을 볼 수 있는 권리를 빼앗은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전통 경관을 지키려는 시민들이 행동이었다. 2002년에는 도쿄의 ‘구니타지 매션의 소송사건’에서 도쿄지방재판소는 주민들의 경관 이익을 인정하고 맨션의 20m를 넘는 부분을 철거하라는 판결을 하면서 일본의 석간신문들이 일제히 1면 머릿기사로 이를 보도했다. 일본 최초의 이 획기적 판결은 일본의 경관행정에 큰 영향을 주었다. 새로운 경관을 과도하게 만드려고 하려는데에 대한 공공의 저지였다.

이 두 가지 사례는 도시경관이 어떤 관점을 갖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레다. 뿐만 아니라 건축형태가 좋은 도시경관이 되기 위해서는 건축의 존재방식이 도시적이어여함을 보여주고 있다.우리나라는 1988년 하계올림픽을 앞두고 건축법에 도시설계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세계사람들의 방문과 메스컴에 보여지는 우리 도시 모습을 보다 더 아름답게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관점에서였다. 이후 지구단위계획,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경관부문이 만들어지고, 경관법이 제정되면서 경관계획이 행정에 자리하게 됐다.

특히 전남도는 경관법 제정 전인 2002년에 의회 사무처 주관으로 우리나라 지자체 최초의 자주적 경관 조례를 만들기기도 했다. 이러한 여러 제도적인 장치에도 불구하고, 우리 도시들은 아직까지 경관에 대해서는 과시적 공헌이 없다. 아마도 잘못된 경관인식과 변화된 상황에 대응하지 못함에 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여건에서 다가서기 어려운 유럽의 중세도시 경관을 모델로 하고 있음에도 주요 가로공간, 조망형 경관에 있어 건축의 존재방식에 대해 구체적인 원칙도 없다. 경관기본계획 등 거시적인 법정 계획은 있지만, 적용이 필요한 미시적인 경관 디자인 원칙은 갖지 못한 경우도 대부분이다.



일본 교외 단독주택지의 통일적 경관.
◇좋은 도시경관의 실현을 위한 몇가지 관점

도시는 아름다워야 한다. 그러나 모든 도시가 맹목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면, 도시경관은 획일성에 빠지가 된다. 따라서 좋은 도시 경관 창출을 위해서는 몇가지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먼저 정체성의 창출이다. 그 도시에만 있는 경관을 말하며, 지역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역성은 역사나 자연 등 다양한 관점을 통해 발견할 수 있지만 특정하기는 쉽지 않다. 근래에는 다른 곳에서 지역성을 찾기도 하는데, 이 지역성을 디자인 원칙으로 연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지역성이 실현되도록 의도적으로 형태를 만들고 시설을 배치하는 것도 필요하다.

기원전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아고라를 거쳐 아크로폴리스에 오르는 순례자들이 멀리서 목적지가 가까이 있음을 경건하게 알도록 아고라 언덕에 헤파이스테이온 신전을 지었다. 또 순레자들이 아고라를 지나가면서 여기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저해하지 않고 시각적 인식을 공유하도록 건축물을 배치했다. 아크로폴리스에 오르면 파르테논신전 등의 건축물이 동시에 보이도록 하는 배치와 형태도 의도적이었다. 복잡한 지형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격자형(Grid) 패턴을 만들어 질서있는 활동과 통일적 도시형태를 만든 기원전 도시인 밀레투스도 그러했다. 플로렌스 시가지 어느 곳에서나 도우모 성당의 돔(쿠풀라)을 볼 수 있도록 한 것도 그러했다. 중세 유럽도시들은 원근법인 투시도법을 바탕으로 건축,가로공간, 광장을 만들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세기 파리시장 오스망이 이전의 파리는 부지를 단위로 하는 건축디자인이 도시의 통일감을 크게 방해했다면서 디자인 단위를 부지에서 가구(街區, 가로와 가로 사이를 차지하는 구역)로 바꾼 것도 그러했다. 이처럼 정체성 있는 경관 실현과 이를 도시공간에 실현하는 의도적 연출이 중요한데, 이것이 첫 번째 과제다.

다음으로는 현대도시에서는 경관만큼 공공공간은 물론, 건축 외부 공간도 중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인구감소와 함께 나타난 ‘저출산 고령화사회’에서 고착화 되고 있는 절연(絶緣)생활에서 벗어나고, 도심이 활력적이기 위해서는 공공공간의 존재방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지구촌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부하를 경감하는 건축물도 중요시되고 있다. 건축이 거대화·복합화 되기도 하고 있다. 경관만을 제일의 가치로 할 수 없는 상황들이다. 거기에 도시를 운용하는 여러 법·제도들과의 정합성 문제도 있다. 경관을 공간과 통합적 관점이 필요하다. 세계적 도시 요코하마의 도시디자인 행정이 그러하다. 이것이 두 번째 과제다.

도시경관의 기본은 문맥(대조)과 조망이다. 여기에는 정체성을 어떻게 문맥화할 것인가가 문제다. 문맥은 건축형태가 모인 군집이 형태적으로 비슷하다는 느낌을 갖는 동질성에 관한 것이다. 문맥은 건축을 구성하는 부분인 지붕, 입면, 창, 벽 등 중에서 어떤 부분을 맥락화 할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된다. 문맥은 한쪽 끝에는 다양성이, 다른쪽 끝에는 통일성이 있다. 일부의 부분들만을 문맥의 대상으로 하면, ‘다양성 경관’이 되고, 전체 부분을 문맥 대상으로 하면, ‘통일성 경관’이 된다. 어느 부분까지를 문맥의 대상으로 하고, 어느 부분을 개인이 자유롭게 디자인하는 영역으로 할 것인가의 관점이 필요하다. 근래에는 통일성보다는 다양성에 더 매력을 느낀다는 점도 있다. 맥락은 디자인에 대한 질적 대책이기 때문에 단어적 규정에는 한계가 있음은 지구단위계획이 말해주고 있다. 중요한 가로 공간 등에는 건축가 등을 초빙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문맥만을 추구하게 되면, 단순하게 느껴지면서 감흥을 잃게 되기 때문에 대조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가로공간의 경우 기본은 문맥이지만, 굴곡부 등 시선이 모이는 부지에 위치한 건축물은 대조적인 아이스톱(eye-stop)이나 작은 랜드마크가 돼야 한다. 문맥이 돼야 할 건축이 대조가 되거나 대조가 되어야 할 건축물이 문맥을 지향해서는 안된다. 건축가가 도시공간을 읽는 눈이 필요한 이유다. 조망은 조망 대상과 조망 시점의 선정과 함께 가시선 설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건축물 높이에 대한 갈등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일본의 역사도시 가나자와는 풍선을 공중에 올려 높이를 컨트롤 하고있고, 교토는 가시선을 그어서 모든 건축물이 그 선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원경, 중경, 근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지역과 부분도 분명히 해야 한다. 고층 아파트 지붕은 원경적 관점이 강해 디테일함이 필요없지만, 벽체 부분은 중경이나 근경이 되어 디테일 함이 필요하다. 대부분 도시들의 기성시가지는 문화로 정착된 기존 건축물들 있기 때문에 이들을 문맥적으로 어떻게 대응 할 것인가 있다. 문맥과 대조, 조망에 관한 것이 네 번째 과제다.

도시를 점하고 있는 대부분은 사적 영역이라는 점에 소유주는 물론, 주민들의 이해 대립 등 각종 의견을 수렴·조정하는 프로세스도 필요하다. 행정의 공공성에서 시민의 공공성으로 변화하는 시대에는 더욱 필요하다. 사용 방법이나 운영 등에 대한 프로세스가 마련돼야 한다. 이것이 다섯 번째 과제다. 이처럼 도시경관에는 먼저 분명히 해야할 전제가 있다. 그래야 정체성 있는 경관이 되며, 문화도시답게 된다.





조용준

조선대 명예교수

전 광주도시공사 사장

전 대한민국경관대상 심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