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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스트리아 린츠…삭막한 공업도시에서 음악 흐르는 ‘빛의 도시’로
빈, 그라츠에 이어 인구 20만 명 오스트리아 세번째 도시
히틀러 제2고향, 세계적 작곡가 브루크너 출생지로 유명
브루크너 하우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품은 ‘문화수도’
음악·미디어아트 페스티벌로 예술관광 시너지 효과 톡톡
2022년 01월 16일(일) 17:30
다뉴브강을 바라보고 있는 브루크너하우스는 린츠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건립한 공연장이다. 매년 가을 시즌에 개막하는 브루크너 페스티벌의 주무대이기도 하다. <사진=위키디피아>
오스트리아의 북부에 위치한 린츠는 인구 20만 4000여 명이 거주하는 문화도시다. 도시의 29.8%가 녹지인 데다 17.5%가 숲으로 조성된 ‘걷기 좋은 도시’이기도 하다. 여기에 다뉴브강을 경계로 고풍스런 건물과 광장이 들어서 있는 구시가지와 최첨단 미디어아트, 현대 미술관 등이 자리하고 있는 신시가지(Urfahr)가 공존한다. 특히 세기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 세계적인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와의 스토리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근래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곳이다.

지난해 가을, 오스트리아 빈을 취재하면서 짬이 나면 꼭 방문해야 겠다고 생각한 도시가 있었다. 빈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린츠(Linz)다. 가보고 싶은 곳도 많은 데 굳이 린츠를 선택한 건 세계 미디어아트 본산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아르스센터) 때문이었다. 지난 2014년 린츠가 유네스코 지정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로 선정된 중심에 아르스 센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린츠와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인 광주가 벤치마킹한 곳이 바로 린츠, 아르스 센터다.

린츠 시내를 가로지르는 다뉴브강 전경.
그래서인지 린츠는 다뉴브강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브루크너(1834~1896) 탄생 150주년(1974년)을 기념해 세운 ‘브루크너하우스’를, 맞은편에는 아르스센터를 건립해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활용하고 있다.

사실, 린츠는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문화예술계에선 매력적인 글로벌 도시다. 그 이유는 칙칙한 공업도시에서 화사한 문화 도시로 180도 변신해서다. ‘클림트의 도시’ 빈과 ‘모차르트의 도시’로 불리는 잘츠부르크 사이에 위치한, 오스트리아의 세 번째 도시이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관광객들을 끌어 들일만한 볼거리가 많지 않았다. 히틀러의 고향이자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의 출생지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내세울만한 관광자원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다 보니 전 세계에서 오스트리아를 찾는 관광객들은 볼거리가 풍성한 빈을 ‘찍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잘츠부르크로 넘어가는 게 일반적인 코스였다. 이 때문에 이들 도시와의 관광시너지는 기대 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2009년 유럽의 문화수도 프로젝트와 유네스코 미디어아트창의도시를 지렛대 삼아 삭막한 도시에서 환골탈태했다. 흥미로운 건 도시의 아픈 과거인 아돌프 히틀러(1898~1907)와 나치를 당당히 드러냈다는 사실이다. 유럽문화수도 선정(2009년)에 맞춰 기획한 문화이벤트의 주제로 ‘20세기의 역사’를 진행하면서 린츠가 겪어야 했던 국가 사회주의와 나치 문화정책의 암흑기를 되돌아 본 전시회가 대표적인 예다.

특히 린츠는 아돌프 히틀러에게 제2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국경에 자리한 브라우나우에서 태어난 히틀러는 3살 때 이곳으로 이주해 학창시절을 보냈다. 당시 히틀러는 철강산업의 메카로 유럽에서 내로라 할만한 부유한 도시였지만 척박한 문화환경을 접하면서 린츠의 ‘미래’를 그렸다고 한다. 다름 아닌 린츠에 다양한 문화시설들을 심는 ‘The Fuhrermuseum’ 프로젝트였다.영어로 ‘지도자 미술관’(The Leader‘s Museum)을 뜻하는 이 초대형 문화지구 조성사업은 린츠에 세계적인 미술관을 세워 자신의 고향을 유럽의 문화 허브로 키우려는 야심작이었다. 수도인 빈의 그늘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했던 린츠를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문화수도로 가꾸려고 한 것이다. 실제로 히틀러는 도시 전역에 오페라하우스, 호텔, 극장, 도서관, 갤러리 등 다양한 문화시설을 건립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 유럽에서 강탈해온 예술작품들을 전시할 청사진을 갖고 있었다. 이때 태동한 문화도시의 꿈이 지금의 린츠로 꽃을 피운 셈이다.

린츠의 구시가지 모습.
공업도시인 린츠가 문화도시로 첫발을 내디게 된 데에는 ‘부르크너 페스티벌’도 빼놓을 수 없다. 모차르트, 베토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작곡가이자 오르간 연주자였던 부르크너는 19세기 후반 유럽을 대표하는 최고의 교회음악가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지난 1977년 부터 매년 가을 시즌에 린츠에서 열리는 ‘부르크너 페스티벌’은 철강도시의 옛 흔적을 찾기 힘든 고품격 문화브랜드로 자리잡았다. 그의 음악세계를 기념하기위해 건립된 브루크너 하우스 콘서트 홀은 물론 교회와 도시 전역에서 펼쳐지는 축제는 음악애호가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위시리스트’이기도 하다.

특히 브루크너가 세상을 떠난 지 80년 만에 문을 연 브루크너 하우스는 도시의 문화적 위상을 바꾸어 놓았다. 메인 행사인 브루크너 페스티벌을 필두로 린츠의 두 다리를 음향과 빛으로 이어주는 한여름의 ‘클랑볼케’(Klangwolke·야외음악회)는 빈~잘츠부르크로 향하는 기차에서 관광객들을 끌어 내리게 할 정도다.

지난 1979년 린츠는 또 한번의 문화적 대변동을 겪게 된다. 바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The Ars Electronica Festival) 창설이다. ‘예술과 기술 그리고 사회를 위한 축제(Festival for Art, Technology, and Society)’를 모토로 내건 세계 최초의 뉴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이다. 초창기엔 2년에 한 번 개최되는 소규모 비엔날레 형태로 개최됐지만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면서 1983년부터 매년 9월에 연례행사로 열리고 있다. 인구 20만 명의 작은 도시이지만 매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을 관람하기 위해 행사기간에만 10만 명이 다녀갈 정도다.

지난 2014년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로 선정된 린츠는 세계적인 미디어아트 본산인 아르스 일렉트로 니카가 들어서 있다. 린츠를 화려한 빛의 도시로 물들이고 있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전경.
아르스센터는 건물 자체가 거대한 미디어아트 작품을 연상케 한다. 2009년 공간을 확장해 현재의 사각형 모습을 갖춘 센터는 밤이면 도시를 환상적인 미디어아트로 물들인다. 건물 외관의 미디어 파사드를 통해 빨강색, 주홍색, 푸른색 등으로 변신하는 모습은 도시를 밝히는 설치작품이다.

이 가운데 아르스센터에서 인상적인 공간은 일명 딥 스페이스(Deep Space 8K)로 불리는 ‘8K극장’이다. 폭 16m, 높이 9m에 달하는 압도적인 스케일은 방문객들에게 강렬한 경험을 선사한다. 3D 안경을 끼고 즐기는 인체의 신비나 광활한 우주 탐험, 영상에 담아낸 중세시대의 건축물 등은 마치 ‘직관’하는 듯한 현장감을 느끼게 한다.

코로나19로 예전의 린츠를 만끽하기 힘들지만 ‘빛의 도시’로서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다뉴브 강을 마주한 채 음악(브루크너하우스)과 미디어아트(아르스센터)가 빚어내는 ‘문화가 흐르는 밤’은 다른 곳에서 접하기 힘든, 린츠가 주는 감동이기 때문이다.

/린츠=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