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헬싱키, 공항·광장·서점…도시 전체가 ‘디자인 박물관’
세계의 문화도시를 가다<12>
-오디도서관
러시아 독립 100주년 기념 건립…선박 디자인·8만권 장서 인상적
-아모스렉스 미술관
옛 건물·라사팔라치 광장 그대로…잠망경모양 유리창 미래도시 온 듯
-캄피 예배당
시민들의 ‘도심 속
-오디도서관
러시아 독립 100주년 기념 건립…선박 디자인·8만권 장서 인상적
-아모스렉스 미술관
옛 건물·라사팔라치 광장 그대로…잠망경모양 유리창 미래도시 온 듯
-캄피 예배당
시민들의 ‘도심 속
![]() 지난 2018년 헬싱키 라사팔라치 광장에 모습을 드러낸 아모스렉스 미술관은 신문재벌 아모스 앤더슨(Amos Anderson)의 컬렉션을 모태로 1930년대의 건물을 재생한 현대미술관이다. 하얀색 타일을 붙인 기하학적인 돔 형태의 구조물은 광장과 어우러져 독특한 아우라를 풍긴다. ⓒ Mika Huisman |
“문화도시는 길거리의 간판 하나도 멋스러워야 한다.”
지난해 초, 89세로 세상을 떠난 ‘시대의 지성’ 이어령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 오래전 광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강조한 메시지다. 화려한 랜드마크나 볼거리도 좋지만 시민들과 소통하는 공공장소나 광장, 일상 공간에서도 도시의 품격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 요소들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도시라 할 수 있다. 공항에서 부터 지하철, 공원, 항구, 주택단지, 도심 등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디자인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감각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오디도서관
그중에서도 가장 핫한 건 지난 2018년 문을 연 오디도서관이다. 헬싱키 여행의 시발지인 중앙역에서 도보로 5~10분 거리에 자리한 이 곳은 국회의사당, 헬싱키 뮤직센터, 카이스마 현대미술관과 인접해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헬싱키를 방문한 여행객들로 연중 문전성시를 이뤘다. 다름아닌 오디도서관이 지닌 상징성 때문이다.
오디도서관은 2018년 러시아로부터 독립된 지 100주년을 기념해 10여 년 전부터 시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공간구성과 운영 등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수렴했다. 우선, 도서관 앞에 서면 푸른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 모양의 디자인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얼핏 보면 도서관으로 생각하지 못할 만큼 파격적이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면 배 갑판을 연상케 하는 구조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1층은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고, 컴퓨터를 즐길 수 있는 등 복합문화공간을 방불케 한다.
8만여 권의 장서가 구비된 3층은 도서관의 하이라이트다. 넓은 공간에 듬성 듬성 배치된 의자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하늘마당을 떠올리게 하는 나무계단은 ‘유네스코 디자인 창의도시’ 다운 상상력을 보여준다. 특히 겨울철에는 넓게 펼쳐진 테라스 발코니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짧은’ 햇볕을 즐기는 시민들로 북적인다.
#아모스렉스 미술관
아모스렉스 미술관은 헬싱키시가 2018년 오디도서관과 함께 내놓은 또 하나의 건축 프로젝트이다. 오디도서관이 도시의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 새로 지은 건축물이라면 아모스렉스 미술관은 1930년대의 건물을 재생했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아모스렉스 미술관을 둘러 보면 가장 먼저 기발한 스타일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수십 여 년전에 건립된 건물과 라사팔라치 광장의 모습을 그대로 살렸기 때문이다. 특히 하얀색 타일을 붙인 기하학적인 돔 형태의 구조물은 광장과 어우러져 고유한 아우라를 풍긴다. 광장 한가운데 설치된 10m의 굴뚝과 잠망경 모양의 5개 유리창은 마치 미래도시로 여행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원래 헬싱키 시는 이 곳에 세계적인 미술관인 구겐하임 분관을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한다. 스페인의 빌바오가 옛 제련소에 구겐하임을 끌어 들여 관광명소로 변신한 것 처럼 낡은 광장을 되살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핀란드의 역사가 숨 쉬고 있는 뜻깊은 광장에 해외미술관을 건립하기 보다는 도시의 정체성에 맞는 공간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제동이 걸렸다. 여기에 핀란드 출신의 신문재벌이자 예술후원자인 아모스 앤더슨(Amos Anderson·1878-1961) 재단이 생전 고인이 수집했던 7000여 점의 컬렉션을 헬싱키 시에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이른바 ‘아모스렉스 프로젝트’로 급선회하게 됐다. 아모스 앤더슨 컬렉션의 상당수가 핀란드 작가의 현대미술 작품인 점을 감안해 자연스럽게 현대미술관 건립으로 가닥이 잡혔다.
설계를 맡은 건축사무소 JKMM은 지상의 풍광을 지하에서도 감상할 수 있도록 5개의 잠망경을 설치해 유리창으로 햇볕과 창밖 경치를 볼 수 있게 설계했다. 돔 외관은 부드러운 곡면으로 만들어 시민들이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도록 했고 지하에선 유리 돔에서 쏟아지는 빛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캄피 예배당
“캄피예배당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예배당 안내소에 비치된 한국어 홍보물에서 왠지 친근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캄피지구 라사팔라치의 아모스렉스 미술관과 인접한 ‘도심 속 예배당’으로 헬싱키 시민들을 위한 ‘명상의 집’이기도 하다. 일명 ‘노아의 방주’로 불리는 이 곳은 압도적인 스케일이 관광객의 발길을 붙든다.
가문비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은 마치 커다란 원형 나무통을 세워놓은 듯하다. 하지만 캄피 예배당이 헬싱키의 명소가 된 건 단지 독특한 외관 때문만은 아니다. ‘사진촬영금지’라는 안내 문구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실내에서는 누구나 침묵해야 하는 성스러운 곳이다.
시민들은 물론 이방인들도 잠시 숨을 고르며 기도를 하거나 명상에 빠진다. 번잡한 삶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특별한 경험은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선물이다.
#아카데미아 서점
헬싱키를 찾은 여행객들이 짬을 내 들르는 곳이 하나 있다. 중앙역 인근에 자리한 ‘아카데미아 서점’이다. 핀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 알토가 설계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관광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지금의 헬싱키는 알바 알토(Alvar Aalto·1898~1976)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만큼 도시의 밑그림을 그린 디자이너다.
사실, 알바 알토가 건축가로 활동했던 시기의 핀란드는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나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나라와는 거리가 멀었다. 러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난 북유럽의 신생 국가로, 1920~30년대 독일 바우하우스를 중심으로 태동된 콘크리트와 철물 건축이 각광을 받던 시대였다.
하지만 알바 알토는 ‘숲의 나라’ 핀란드의 특성을 살려 콘크리트나 철물이 가질 수 없는 목재를 활용, 유려한 곡선미의 건축물로 존재감을 뽐냈다.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음악세계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핀란디아홀’ 등 핀란드 전역에 그의 열정이 묻어나는 건축물들이 많다.
그중에서 아카데미아 서점은 매우 특별한 공간이다. 전면이 유리창으로 뒤덮인 6층 건물은 화려한 장식미는 없지만 핀란드 특유의 모던한 감각이 인상적이다. 헬싱키의 유명 백화점인 스토크만과 이웃해 있어 멀리서 보면 두 건물이 하나의 건축물 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거장의 진가는 건물 내부에서 빛을 발한다. 일조량이 부족한 핀란드의 특성을 고려해 어디에서나 자연광이 비치도록 설계한 기하학적 천장 유리창은 압권이다. 특히 2층에는 헬싱키를 배경으로 한 일본 영화 ‘카모메식당’(2007)에서 주인공 사치에가 미도리를 처음 만난 ‘알토 카페’가 들어서 있다. 일찍이 영화를 접한 관광객들 사이에 항구 근처의 ‘라빈톨라 카모메’식당과 함께 반드시 둘러 봐야 할 명소로 불린다.
/헬싱키=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지난해 초, 89세로 세상을 떠난 ‘시대의 지성’ 이어령 전 문화체육부 장관이 오래전 광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강조한 메시지다. 화려한 랜드마크나 볼거리도 좋지만 시민들과 소통하는 공공장소나 광장, 일상 공간에서도 도시의 품격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 요소들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도시라 할 수 있다. 공항에서 부터 지하철, 공원, 항구, 주택단지, 도심 등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디자인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감각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 아모스렉스 미술관과 같은 해에 개관한 오디도서관 전경. 도서관의 고정관념을 깬 건축미와 콘텐츠로 유럽을 대표하는 공공도서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Tuomas Uusheimo |
그중에서도 가장 핫한 건 지난 2018년 문을 연 오디도서관이다. 헬싱키 여행의 시발지인 중앙역에서 도보로 5~10분 거리에 자리한 이 곳은 국회의사당, 헬싱키 뮤직센터, 카이스마 현대미술관과 인접해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헬싱키를 방문한 여행객들로 연중 문전성시를 이뤘다. 다름아닌 오디도서관이 지닌 상징성 때문이다.
8만여 권의 장서가 구비된 3층은 도서관의 하이라이트다. 넓은 공간에 듬성 듬성 배치된 의자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하늘마당을 떠올리게 하는 나무계단은 ‘유네스코 디자인 창의도시’ 다운 상상력을 보여준다. 특히 겨울철에는 넓게 펼쳐진 테라스 발코니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짧은’ 햇볕을 즐기는 시민들로 북적인다.
#아모스렉스 미술관
아모스렉스 미술관은 헬싱키시가 2018년 오디도서관과 함께 내놓은 또 하나의 건축 프로젝트이다. 오디도서관이 도시의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 새로 지은 건축물이라면 아모스렉스 미술관은 1930년대의 건물을 재생했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아모스렉스 미술관을 둘러 보면 가장 먼저 기발한 스타일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수십 여 년전에 건립된 건물과 라사팔라치 광장의 모습을 그대로 살렸기 때문이다. 특히 하얀색 타일을 붙인 기하학적인 돔 형태의 구조물은 광장과 어우러져 고유한 아우라를 풍긴다. 광장 한가운데 설치된 10m의 굴뚝과 잠망경 모양의 5개 유리창은 마치 미래도시로 여행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원래 헬싱키 시는 이 곳에 세계적인 미술관인 구겐하임 분관을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한다. 스페인의 빌바오가 옛 제련소에 구겐하임을 끌어 들여 관광명소로 변신한 것 처럼 낡은 광장을 되살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핀란드의 역사가 숨 쉬고 있는 뜻깊은 광장에 해외미술관을 건립하기 보다는 도시의 정체성에 맞는 공간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제동이 걸렸다. 여기에 핀란드 출신의 신문재벌이자 예술후원자인 아모스 앤더슨(Amos Anderson·1878-1961) 재단이 생전 고인이 수집했던 7000여 점의 컬렉션을 헬싱키 시에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이른바 ‘아모스렉스 프로젝트’로 급선회하게 됐다. 아모스 앤더슨 컬렉션의 상당수가 핀란드 작가의 현대미술 작품인 점을 감안해 자연스럽게 현대미술관 건립으로 가닥이 잡혔다.
설계를 맡은 건축사무소 JKMM은 지상의 풍광을 지하에서도 감상할 수 있도록 5개의 잠망경을 설치해 유리창으로 햇볕과 창밖 경치를 볼 수 있게 설계했다. 돔 외관은 부드러운 곡면으로 만들어 시민들이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도록 했고 지하에선 유리 돔에서 쏟아지는 빛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하는 캄피예배당의 전경(왼쪽)과 내부 모습. 헬싱키 시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의 도심 속 명상의 집으로 인기가 많다. |
“캄피예배당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예배당 안내소에 비치된 한국어 홍보물에서 왠지 친근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캄피지구 라사팔라치의 아모스렉스 미술관과 인접한 ‘도심 속 예배당’으로 헬싱키 시민들을 위한 ‘명상의 집’이기도 하다. 일명 ‘노아의 방주’로 불리는 이 곳은 압도적인 스케일이 관광객의 발길을 붙든다.
가문비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은 마치 커다란 원형 나무통을 세워놓은 듯하다. 하지만 캄피 예배당이 헬싱키의 명소가 된 건 단지 독특한 외관 때문만은 아니다. ‘사진촬영금지’라는 안내 문구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실내에서는 누구나 침묵해야 하는 성스러운 곳이다.
시민들은 물론 이방인들도 잠시 숨을 고르며 기도를 하거나 명상에 빠진다. 번잡한 삶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특별한 경험은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선물이다.
![]()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하는 캄피예배당의 내부 모습. 헬싱키 시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의 도심 속 명상의 집으로 인기가 많다. |
헬싱키를 찾은 여행객들이 짬을 내 들르는 곳이 하나 있다. 중앙역 인근에 자리한 ‘아카데미아 서점’이다. 핀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 알토가 설계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관광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지금의 헬싱키는 알바 알토(Alvar Aalto·1898~1976)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만큼 도시의 밑그림을 그린 디자이너다.
사실, 알바 알토가 건축가로 활동했던 시기의 핀란드는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나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나라와는 거리가 멀었다. 러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난 북유럽의 신생 국가로, 1920~30년대 독일 바우하우스를 중심으로 태동된 콘크리트와 철물 건축이 각광을 받던 시대였다.
하지만 알바 알토는 ‘숲의 나라’ 핀란드의 특성을 살려 콘크리트나 철물이 가질 수 없는 목재를 활용, 유려한 곡선미의 건축물로 존재감을 뽐냈다.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음악세계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핀란디아홀’ 등 핀란드 전역에 그의 열정이 묻어나는 건축물들이 많다.
그중에서 아카데미아 서점은 매우 특별한 공간이다. 전면이 유리창으로 뒤덮인 6층 건물은 화려한 장식미는 없지만 핀란드 특유의 모던한 감각이 인상적이다. 헬싱키의 유명 백화점인 스토크만과 이웃해 있어 멀리서 보면 두 건물이 하나의 건축물 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거장의 진가는 건물 내부에서 빛을 발한다. 일조량이 부족한 핀란드의 특성을 고려해 어디에서나 자연광이 비치도록 설계한 기하학적 천장 유리창은 압권이다. 특히 2층에는 헬싱키를 배경으로 한 일본 영화 ‘카모메식당’(2007)에서 주인공 사치에가 미도리를 처음 만난 ‘알토 카페’가 들어서 있다. 일찍이 영화를 접한 관광객들 사이에 항구 근처의 ‘라빈톨라 카모메’식당과 함께 반드시 둘러 봐야 할 명소로 불린다.
/헬싱키=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