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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과 호남 정치-임동욱 선임기자 겸 서울취재본부장
2021년 10월 20일(수) 05:00
임동욱 선임기자 겸 서울취재본부장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최초의 전남 출신 유력 대선 주자로 주목받았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대권 도전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석패, 지지 여부를 떠나 지역민의 아쉬움을 낳고 있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 전국 순회 경선에서 광주·전남 지역 1위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좀처럼 반전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재명 경기 지사와 20%대의 득표율 격차에도 마지막 3차 슈퍼위크에서 결선투표 티켓을 거머쥔다는 이 전 대표 진영의 원대한 목표는 실현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전 대표는 전체적으로 0.29% 포인트 차이를 넘지 못하고 결선 티켓 확보에 실패하긴 했지만, 3차 선거인단 투표에서 62.37%라는 기적 같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만약 중도 사퇴한 정세균·김두관 후보 득표수를 무효표로 처리하지 않았다면 이재명 경기지사의 득표율(50.29%)이 49.32%로 내려가면서 결선투표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정치권에서는 결선투표가 이뤄졌다면 3차 선거인단 투표 결과 등을 감안했을 때 충분히 역전할 수도 있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제 새로운 도전 나서야

이 전 대표는 경선 직후, 무효표 처리에 대해 이의 제기를 했으나 당무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자 패배를 즉각 수용하고 이 지사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다. 특히 이 전 대표는 지지자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전하면서도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 함께 강물이 되어 반드시 대선에서 승리, 4기 민주정부를 이루자”고 했다. 개인을 넘어선 시대적 화두를 제시, 호남 정치의 품격을 보인 것이다. 순회 경선에서의 잇따른 패배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진정성을 토대로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것은 물론 결선투표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대의에 충실하며 패배를 수용했다. 그렇게 그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정치인이 됐다.

당초 정치인 이낙연에게 ‘대권’은 거리가 있었다. 지역구 4선을 지내고 전남 지사에 올랐을 때만 해도 중진 의원으로서 정치적으로 잘 풀렸다는 평가를 받는 정도였다. 하지만 시대가 사람을 놓아두지 않는다고 지난 ‘촛불 대선’은 정치인 이낙연을 ‘시대의 중심’으로 이끌었다. 호남의 지지를 기반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이 지사를 초대 국무총리로 낙점한 것이다. 이 총리는 민생 현장을 꼼꼼히 점검하면서도 국회에서 야당 공세를 논리적인 답변으로 돌려세우며 국민적 지지를 얻어 갔다.

역대 최장수 총리(2년7개월)라는 타이틀을 뒤로하고 지난해 1월 정치권에 다시 섰을 때, 그는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성장해 있었다. 그는 여세를 몰아 그해 4월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종로 지역구 보궐선거에서 당선됐고 8월에는 민주당 당권까지 거머쥐었다. 이제 대권 도전 티켓이 그리 멀지 않게 보였다. 하지만 당 대표의 자리는 만만치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와 검찰 개혁을 둘러싼 추-윤(추미애 법무부장관-윤석열 검찰총장) 갈등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게다가 올해 1월 국민 통합 카드로 내세운 전직 대통령 ‘사면론’은 코로나19로 지친 민심과는 거리가 있었다. 특히 성희롱 추문에 따른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유고로 치러진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당규까지 고쳐 가면서 후보 공천을 강행했으나 참패하고 말았다. 몹시 뼈아픈 지점이었다.

문 대통령의 후광과 친문 주류의 지원에 가려 민심을 바로 보지 못한 것은 그의 대선 가도에 치명적 타격이었다. 국무총리로서 관리의 리더십이 평가를 받은 반면 여당 대표이자 대권주자로서 위기의 시대를 타개할 강력한 리더십은 부족해 보였다. 결국 유력 대권주자 자리를 이 지사에게 내주며 여권 2위 후보로 내려앉았다. 그는 진정성을 무기로 마지막까지 분투했으나 결국 대권 도전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경선에서도 네거티브 논란에 휘말리며 브랜드 정책 등에서 전략적 실패가 있었고 원활한 소통 부족으로 민심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준비된 주자인 것은 확실했으나 민심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패배에도 빛났던 품격

친노(친 노무현) 원로인 유인태 전 의원이 최근 대선과 관련 “지도자는 건달 끼가 있어야 한다”고 한 말은 함의가 깊다. 정치인에게는 주위에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인간적 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낙연 전 대표는 광주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수재형 정치인으로 몸으로 부대끼는 현장 투쟁형 정치인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 부분이 이재명 지사와의 격차를 만든 지점일지도 모른다.

이낙연 전 대표의 대권 도전 실패로 향후 10년 내에 광주·전남 지역 출신 유력 대권 주자가 나오기 힘들지 않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의원 중에 초선이 즐비한데다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호남 정치의 현실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호남 정치가 이미 충청에도 밀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이낙연 전 대표의 안타까운 실패는 앞으로 호남 정치에 타산지석이 돼야 할 것이다. 이제 호남 정치권은 차기 대선에서 4기 진보 정권 창출에 역할을 하면서 정치력을 키워 새로운 도전과 응전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