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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게임
2021년 10월 13일(수) 02:00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자동차를 마주 보고 달리는 ‘치킨 게임’이 유행했었다. 두 대의 차량이 서로 마주 보며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 핸들을 꺾어 방향을 트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충돌을 피한 차량의 운전자는 겁쟁이로 몰려 무시를 당하기 마련이다. 영어 ‘치킨’(chicken)에는 겁쟁이라는 뜻도 있는데, 서양에서는 닭을 겁이 많은 동물로 여기기 때문이다. 반면 양쪽 차량이 피하지 않고 충돌할 경우 모두 승자가 되지만 둘 다 치명적인 부상이나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치킨게임은 당시 미국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배짱을 과시하려 하는 치기 어린 놀이였다. 하지만 이 ‘치킨 게임’은 이후 1950~1970년대 미국과 소련 사이의 극심한 군비 경쟁을 꼬집는 말로 사용되면서 국제정치학 용어로 굳어졌다. 또한 지금도 어느 분야에서나 어떤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하는 상태에서 서로 양보하지 않고 극단적인 경쟁으로 치닫는 상황을 일컬을 때 흔히 사용된다.

내년 대선을 앞둔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도 마치 치킨게임처럼 양보 없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각기 똘똘 뭉쳐 격돌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각 진영에서 도덕성이나 인물·정책보다는 ‘정권 재창출’과 ‘정권교체’ 가능성만 따지며 상대 진영을 이길 수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여야 지지층이 뭉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나 ‘고발 사주 의혹’ 같은 대형 악재가 터져도, 실언·실책으로 자질 시비가 일어도, 여야 1위 후보들의 지지율이 굳건하다는 점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무당층과 중도층이 안착할 제3지대 대안 주자들의 존재감이 미미해지면서 유권자들의 선택지도 그만큼 좁아지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아직까지 대권후보 중 누구를 찍을지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은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30%까지로 나오고 있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여와 야, 진보와 보수의 극단적인 대립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가 국민을 양 진영으로 갈라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정치권과 여야 대통령 후보들은 진영 간 치킨게임이 아닌 국민 통합을 우선시해야 할 것이다. /최권일 정치부 부장 c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