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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 소년’이 되지 않으려면-김미은 문화부장 겸 편집부국장
2021년 09월 14일(화) 23:30
며칠 전 새롭게 문을 연 광주북구문화센터에서 공연을 보던 중 황당한 일을 겪었다.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연주를 한참 감상하는데 객석 옆 통로로 누군가 휙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통로를 지난 남자는 ‘갑자기’ 무대 위로 올라갔고, 연주자들이 출입하는 커튼 뒤로 사라졌다. 간신히 연주에 몰입하고 있는 사이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라졌던 그가 얼마 후 다시 무대에 등장했고, 조금 전 지나왔던 통로를 재차 지나갔다. 관객 모두가 그 ‘모습’을 지켜봤다. 무대 위 관악 연주자의 놀란 표정도 얼핏 보였다.

황당한 일은 또 있었다. 이번에는 사진을 촬영하는 이였다. 처음 이 쪽 통로에서 사진을 찍던 남자는 다음 곡이 연주될 때는 반대편 통로로 옮겨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야말로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촬영을 하는 모습을 보고 모두가 깜짝 놀랐다.

예술인들은 광주시 눈치나 살피고

공연 중간 휴식 시간이 되자 관객들이 모두 한마디씩 했다. 문화센터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오늘 촬영을 위해 부른 외부 인력’이었다며 ‘주의를 주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최상의 공연 관람 여건을 제공하는 건 공연장 관계자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일이다. 억울할지도 모르겠지만, 문제를 일으킨 그들이 센터 직원이 아니라는 말로는 면피가 되지 않는다. 외부 인력을 잘 관리하고 적절한 미션을 주는 것까지가 전부 책임자가 해야 할 일이다. 그들이 외부 인력이라 할지라도 관람객들은 모두 ‘북구문화센터에서 일어난 일’로 여길 따름이다.

최근 문화판을 제대로 읽지 못한 광주시의 문화정책 관련 ‘헛발질’을 몇 차례 보면서 문화센터 공무원과 시장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어떤 사안은 시장과의 암묵적인 합의나 시장의 의중을 파악한 것일 터다. 반면 어떤 사안들은 시장에게 책임을 묻는 게 어려울지도 모른다. 시장으로서는 시민들의 생활과 연결된 다양한 분야를 살펴야 하는 입장에서 문화 현안들을 일일이 챙기는 게 쉬운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막강한 인사권과 예산을 관장하는 막중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책임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고 그만큼 정책을 결정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

광주시가 대안 없이 광주시립미술관 사진전시관을 없애려다 반발에 부딪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 게 얼마 전이다. 이번에는 느닷없이 광주문예회관장 개방형 직위 해제와 함께 공무원에게 다시 관장을 맡기는 안을 들고 나왔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최근 이 사태를 접하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선 문화 전문가의 책임 있는 운영을 위해 오랜 기간 숙의를 거쳐 개관 28년 만에 도입한 제도를 어떠한 논의 절차도 없이 하루아침에 없애 버리려 한 광주시의 단선적인 사고에 놀랐다. 또 하나, 개방형 관장이라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데 대한 결과가 아닌가 싶어 착잡하기도 했다.

현 광주문예회관장은 선임 당시부터 뻔히 보이는 ‘보은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누가 봐도 ‘예술 전문가’는 아니었고 이 시장의 선거를 도운, 정치인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당사자로서는 억울할지도 모르지만, 현안이 산적한데 건강상의 이유를 내세워 갑작스레 사의를 표명한 그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며 개방형 해제 반대 성명을 내고 반발한 지역예술단체와 문화계 인사들이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이유다.

지자체 책임지는 자세 보이지 않고

이번 사건을 지켜보면서 문화계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씁쓸했다. 정작 목소리를 내야 할 공연계는 의외로 조용했다. 민예총이 성명서를 냈을 뿐, 대표 예술단체를 자임하는 광주예총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소속 공연 관련 협회들이나 관계자들도 침묵을 지켰다. 혹시나 시에서 결정한 일에 왈가왈부해 밉보이지 않을까 몸을 사린 건 아닌지, 향후 ‘어떤 자리들’을 염두에 두고 입을 닫은 건 아닌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시는 언론과 문화단체의 반발이 이어지자 공무원 관장으로 현안을 마무리한 후 내년 상반기쯤이면 다시 개방형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이런 어정쩡한 상황은 내년 지자체 선거와 맞물리면서 또 다른 해석을 낳고 있다. 모든 일에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겠지만, 이런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비슷한 전례가 많기 때문이다.

적재적소에 능력있는 ‘지인’을 앉히는 거야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취임 초기, 몇몇 문화계 자리에 뜬금없는 인사들이 연이어 발탁되면서 문화계에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한 번 잃어버린 신뢰는 좀처럼 되찾기 어렵다. 그건 동화 속 ‘양치기 소년’이 잘 보여 준다. 자주 거짓말을 했던 양치기 소년은 목이 쉬어라 외치지만, 슬프게도 더 이상 그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자치단체나 그 책임자가 이리 된다면, 참으로 무서운 일 아닌가. /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