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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진주처럼 삶은 아름다워”-송기동 문화2부장·편집국 부국장
2021년 09월 08일(수) 01:30
“김갑진, 김경순, 김경식, 김경철/ 아빠 항상 제 옆에 계신 것을 알아요/ 날 지켜보시리라 믿어요/ 하지만 이따금 아주 이따금/ 가슴 저미게 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단 한 번만이라도 얼굴을/ 아빠 얼굴을 만져 보고 싶어요/ 못 다 이룬 오월의 꿈이여/ 식지 않는 망월의 피여…”

영정을 든 사람들이 무대에 등장해 망월동에 묻힌 영령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합창을 한다. 무대 분위기는 어둡고 무겁기만 하다. 지난달 27~28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 무대에 올려진 ‘이건용, 오페라 박하사탕’ 중 2장 ‘1998년 가을, 망월동 묘역’의 한 장면이다. 호명하는 이름들과 어우러진 나지막한 합창, 오케스트라 선율은 객석의 관객들을 순간 울컥하게 만든다.

‘광주’를 뛰어넘어 세계 무대로

광주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광주문예회관과 국립극장이 제작한 오페라 ‘박하사탕’이 초연됐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갖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광주시립오페라단 제작진과 출연진들은 앞서 ‘콘서트 오페라’로 선을 보였고, 이번에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오페라 박하사탕은 지난 2000년 개봉된 동명의 영화(감독 이창동)가 원작인데, 한국 창작음악계의 거장 이건용 작곡가와 조광화 연출가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탄생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거슬러가는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전남도청 앞 시민공동체 장면과 개성적인 인물들을 새로 설정해 오페라의 언어로 총 2막6장의 서사를 끌어간다.

8월 중순, 공연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던 때 이건용 예술감독·작곡가를 인터뷰했다. 거장은 “(80년 5월 광주는) 예술가로서 전환점이었다”고 말했다. 30대 초반 청년 시절에 겪은 ‘80년 5월 광주’에 대한 마음속 ‘빚’에 대해 적은 작곡 노트에서도 이러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그 후 40년 동안 저에게 인간에 대한 희망을 환기해 주고 생명의 힘을 확인해 주는 원천 같은 것이었습니다. 작곡가로서 그 빚을 이번에 갚습니다.”

그동안 작곡가는 합창곡 ‘분노의 시’(1985년)와 칸타타 ‘눈물비’(2017년), 관현악곡 ‘5월을 위한 장엄서곡’(2019년) 등 ‘광주’를 염두에 둔 작품을 꾸준하게 발표해 왔다. 그리고 오랜 마음속 ‘빚’을 내려놓으면서 원숙한 음악적 기량을 오페라 ‘박하사탕’에 오롯이 녹여냈다.

오페라 박하사탕의 하이라이트는 5장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 장면이다. ‘아침이슬’을 부르며 등장하는 시위대에 이어 수레에 주먹밥을 싣고 오는 ‘함지박’과 ‘화순댁’ 등 어머니들이 ‘주먹밥’을 합창한다. 나눔과 연대의 광주정신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그러나 시민 공동체를 보여 주던 무대는 공수부대원들의 집단 발포로 ‘생명과 죽음이 뒤엉켜 붙은 현장’으로 급격히 바뀌고 만다.

작곡가는 서울 초연 후 기자에게 “이제 광주로 돌아갈 차례입니다. 광주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광주 공연 일정은 아쉽게도 광주문예회관의 리모델링 공사 등으로 인해 아직 잡혀 있지 않은 상태이다.

5·18 소재 새 오페라 ‘박하사탕’

작곡가와 연출가는 오페라 박하사탕을 통해 야만의 시대에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순수했던 한 20살 청년이 어떻게 붕괴되는지, 그리고 죽음과 삶의 투쟁 속에서 삶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 준다. 극 초반에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던 어둠의 무대는 후반으로 갈수록 빛과 사랑과 생명의 무대로 바뀌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관객들은 다소나마 아픈 기억과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류의 보편타당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오페라 박하사탕이 광주를 뛰어넘어 해외 무대에서도 올려졌으면 하는 까닭이다.

‘80년 5월 광주’ 당시 어머니를 잃은 극중 인물 박명숙은 ‘삶은 아름다워’란 노래를 부른다. 40년 넘게 ‘광주’를 가슴속에 품어 온 작곡가와 연출가의 메시지가 스며 있는 아리아다. “상처가 깊다는 말은 견딘 세월 또한 깊다는 것/ 상처가 많다는 것은 이겨 낸 승리가 많다는 말/ 푸르른 소나무처럼 우아한 진주처럼/ 우리는 강하고 우리는 아름다워/ 삶을 사랑하니까 삶은 아름다워 삶은 아름다워라.”

송기동 문화2부장·편집국 부국장/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