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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최진석과 함께하는 책 읽고 건너가기] 2월의 책 ‘이솝 우화 전집’
2500년전 그리스인 지혜, 이야기로 전해지다
성인 일깨우기 위한 600여 이야기
여우·사자 등 동물 통해 교훈 전해
고명환과 마지막주 수요일 북토크
2021년 02월 01일(월) 00:00
논증이나 논변에 빠지는 사람보다 이야기하는 사람의 영혼이 한 뼘 더 높다. 이야기가 논변보다 시에 가깝기 때문이다. 치밀하게 짜진 논변의 숲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잃는다. 누구나 이정표가 없는 곳에서는 요동치고 떨린다. 요동치고 떨려보라.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정표도 하나 없이 많은 공터가 허용되어 누구나 들락거릴 수 있다. 거기서는 도란도란 대화가 열린다. 어떤 규제도 없다. 길도 없다. 당신은 거기서 길을 찾지 마라. 길을 내려는 자신이 보일 것이다. 자신이 궁금하면, 논증하지 말고 이야기하라. 아주 오래전에 이솝이란 사람이 펼쳐놓은 이야기 숲에서 길을 잃어보자.

<‘이솝우화’를 선정하며>



배 고픈 여우 한 마리가 포도송이를 발견했다. 하지만 나무를 기어 올라가야 하는 포도덩쿨에 달려 있어 포도를 따지 못했다. 여우는 그 자리를 떠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아직 익지도 않은걸, 뭐.”

‘여우와 신포도’로 많이 알려진 이 이야기는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숱한 이야기 중 한 편이다. 몇줄 안되는 이 짧은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뜨끔하게 한다. 아마 책과 친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솝우화 몇 편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는 북풍과 햇님의 싸움이라든지, 시골 쥐와 도시 쥐 등등.

철학자 최진석과 함께하는 ‘책 읽고 건너가기-광주일보와 한 달에 한 권 책 읽기’ 2월의 책으로 이솝의 ‘이솝우화전집’이 선정됐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인들의 일상적인 삶과 그들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담은 ‘이솝우화집’은 원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재미있고 교휸적인 이야기 모음집이 아니었다. 성인들을 일깨우고 일상에서 겪은 여러 경험과 삶의 지혜를 재치있게 전달할 목적으로 구전되며 수집된 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솝과 그의 우화를 연구하기도 했고, 소크라테스는 사형 집행을 앞두고 감옥에서 이솝우화들을 노래 가사로 바꾸는 시도를 했다고 전해진다.

이솝의 우화들은 오랫동안 구전으로 전해지면서 사람들이 단편적으로 기록한 것이라 이솝이 직접 쓴 우화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솝 우화의 수는 확정되어 있지 않고 적게는 몇 십 개에서 많게는 600개로 추정된다. 각 이야기에 짤막하게 적힌 교훈 역시 후대인들이 쓴 것이다.

이번에 새롭게 번역된 ‘현대지성’ 판 ‘이솝우화’를 펼치면서 “이솝우화집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어릴 적 읽은 ‘이솝 우화’는 몇 십편이었던듯 한데 이책에 실린 이야기는 ‘358편’이다. 또 동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익숙한 이야기부터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 등 다양한 스토리가 등장한다. 세상의 그 누구도 하찮게 여겨서는 않된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독수리와 쇠똥구리’나 거짓말이 판을 치는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 대해 한탄하는 ‘나그네와 참말’ 등 ‘이솝우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폭이 넓었다.

저자 이솝(Aesop)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헤로도토스는 저서 ‘역사’에서 이솝은 실제 인물이라고 말하며 그리스 도시국가 사모스 섬 사람 이아드몬의 노예였으며 델포이 사람들에게 살해당했다고 적고 있다.

현대지성 출간 ‘이솝우화 전집’에 실린 ‘시골쥐와 도시쥐’
‘이솝우화전집’은 다른 고전과 달리 성인용 번역본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해 10월 ‘현대지성’ 시리즈로 나온 번역본에는 영문판 대신 박문재 번역가가 고대 그리스 원전에서 직접 번역한 358편의 우화가 담겼으며 19세기 유명 삽화가 아서 래컴 등이 그린 일러스트 88장도 함께 담겨 있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등을 그리스어 원전에서 옮긴 박문재는 “이솝우화의 세계는 야만적이고 거칠며 잔인하고 자비나 동정이 없다. 이솝우화는 동물 세계와 인간 세상 모두에 정글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동물 이야기를 통해 인간 세계를 묘사하는것이 적절했을 것”이라며 “플라톤을 비롯한 고전 저술가들과 달리, 이솝우화에는 귀족이나 지식인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에서 살다간 평범한 사람들의 민낯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지난 2003년 1판이 나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이솝 우화집’은 모두 207편의 이야기가 담겼다. 문학평론가 유종호가 번역했으며 영국 펭귄판을 원본으로 한다.

최진석 교수는 책 선정 이유를 통해 “오래 전에 이솝이란 사람이 펼쳐놓은 이야기 숲에서 길을 잃어보자. ‘이정표를 따라 길을 찾는 대신’ ‘길을 내려는 자신’이 보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짧은 이야기에 어떤 의미를 담느냐는 독자의 몫. 각자가 ‘길’을 만들아가 보자.

2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책 읽는 개그맨’ 고명환씨와 최교수의 ‘북토크’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며 토크 내용은 광주일보와 새말새몸짓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될 예정이다. 또 2월 셋째주에는 최 교수가 읽은 ‘이솝우화집’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광주일보 지면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