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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 혹독한 시련 딛고 힘차게 일어서기를…
2020년 12월 30일(수) 05:00
또 한 해가 간다. “마지막 달력이 남으면/ 아이들은 들뜨고/ 어른들은 한숨짓는다.”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이 이맘때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 걱정거리가 없는 아이들이야 마냥 들뜨겠지만, 어른들은 이룬 것 하나 없이 속절없이 가 버린 야속한 세월을 탓하며 한숨짓는 것이다.

올해는 더욱 그랬다. 갑자기 우리 인간 사회를 급습한 한낱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한순간에 우리의 일상은 감옥으로 변하고 말았다. 몸도 마음도 다 갇혔다. 더욱 안 좋은 것은, 한 줌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달리는 세월의 강에/ 흘려보낼 것은 보내고/ 씻을 것은 씻어야지” 하면서도, 그게 그리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 순간 다시 마음은 한없이 울적해진다. 긴 어둠의 터널, 사방은 캄캄한데 바늘구멍만 한 작은 빛줄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땐 음악을 듣는 것이 제격이리라. 글을 쓰다 말고 클릭 몇 번으로 볼쇼이 합창단을 불러낸다. 평소 음악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면서 괜히 유난을 떨어 보는 거다. 그들 러시아 사람들의 목소리로 우리 가곡 ‘보리밭’을 듣는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참으로 멋진 화음이다. 이내 울적한 마음이 사라진다. 감미롭다.

노래를 들으며 곧장 어떤 추억 속에 빠져든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촌놈이 난생처음 서울 땅을 밟은 적이 있었다. 그때 타고 간 버스가 광주여객이었는지 광주고속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에서 술 한잔 하다 보니 통금시간이 지나고, 순경들에게 쫓기다 화물 트럭 밑으로 숨어들어 꼬박 날을 샜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새벽 4시 통금 해제 사이렌이 울린 뒤에야 트럭 밑을 기어 나오면서 나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제목 ‘차륜(車輪) 밑에서’를 떠올리기도 했다.)



호남 유일 30대 기업이었건만



아, 내가 너무 감상에 젖었나? 잠시 추억에 잠겨 깜빡할 뻔했는데, 이제야 오늘 쓰려는 칼럼의 주제가 생각난다. ‘금호아시아나 가족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메시지’다. 처음 서울 갈 때 타고 갔던 그 버스 회사가 바로 오늘날 금호의 모태였으니, 아마도 아련한 옛 추억이 이미 노후화된 내 뇌 속의 해마를 건드린 모양이다.

금호를 생각하면 먼저 애잔한 마음이 앞선다. 한때 하늘 높이 줄기를 뻗어 올리며 위용을 뽐내던 시절도 있었건만, 지금은 무성했던 잎을 다 떨군 앙상한 겨울나무처럼 쇠락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호남 유일의 30대 기업이라는 위상마저도 지킬 수 없게 됐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경영 위기를 맞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어쩔 수 없이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키로 했으니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을꼬.

잠시 금호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익히 알다시피 택시 두 대로 시작한 박인천 창업주는 이후 광주여객을 설립함으로써 버스 운수업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970년대 호남고속도로 개통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당시 ‘그레이하운드’ 등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무조건 광주고속을 탔던 호남 사람들. 그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금호는 난적 중앙고속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날개를 달게 된다. 기존 삼양타이어에 이어 70년대엔 건설업과 석유화학 사업에도 진출하고, 종합 무역상사인 금호실업을 만들어 그룹의 기초를 다진다.

1984년 박인천 창업주 타계 이후 금호는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경영권을 행사하는 독특한 후계 방식으로 세인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장남 박성용 회장은 한때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문화예술 후원자로도 유명했다. 둘째 박정구 회장은 애향심이 강했으며, 아주 선이 굵은 경영인으로 세인의 존경을 받았다. 셋째 박삼구 회장은 치밀하고 이성적인 경영인이었다.

금호는 1988년 제2민항사로 선정되면서 대기업으로 본격 도약하는 전환점을 맞게 된다.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에 맞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서비스로 집요하게 치고 나갔다. 그러나 1996년, 그룹을 이어받아 6년 동안 탄탄하게 이끌었던 박정구 회장이 먼저 세상을 뜨고 만다. 이어 2002년 4대 박삼구 회장이 취임했으며, 2년 뒤에는 그룹 이름을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변경한다.



과거 명성 언제 다시 찾으려나



이후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하고 2008년에는 대한통운까지 인수함으로써 한진그룹을 제치고 재계 7위까지 뛰어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순풍에 돛을 단 듯 성장을 거듭하던 금호는 이때부터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승리를 위해 과도한 비용을 치름으로써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되는 ‘승자의 저주’ 상황이 된 것이다. 여기에는 경영주의 오판(誤判)과 더불어 당시 불어닥친 미국발 금융위기 또한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최근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가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결국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백방으로 뛰며 회사를 살려 보려 했던 박삼구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사업권을 활용해 금호고속에 자금을 부당 지원했다는 사실로 인해 고발당한 상황이다. 계열사 자금 지원을 받은 금호고속은 이후 경영 여건이 많이 개선됐다지만, 이 일로 향후 법적인 심판까지 받게 되는 박 회장을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마음은 안타깝고 짠할 수밖에 없다. 어찌 됐든 지금의 상황까지 이르고 보니 호남 사람들 중에는 박정구 회장 등 금호에 대한 향수와 함께 “그래도 금호만은 살려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금호는 누가 뭐라 해도 호남의 기업이다. 호남 사람들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기업이다. 그래서 금호는 호남 사람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그동안 숱한 사회 공헌을 해 왔다. 수많은 일자리 창출은 물론 장학 사업과 문화체육계 후원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그나마 금호그룹이라도 하나 있어 전라도의 긍지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금호는 호남의 자존심이었으며 호남인의 긍지였다. 그랬던 금호였기에 금호의 쇠락을 보는 지역민들의 상실감과 안타까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또 한 해가 간다. 과연 금호는 ‘첩첩산중’ 위기를 극복하고 과거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제 금호고속과 금호산업 딱 두 개만 남은 상황.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지만 호남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마음을 갖고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금호가 제2의 창업으로 다시 태어나 하루빨리 과거의 영화를 되찾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 “나가자 금호. 우리의 꿈, 우리의 미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