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손 그림’ 영화 간판
2020년 10월 22일(목) 05:00
나의 첫 영화관 경험은 지금은 없어진 ‘천일극장’이었던 것 같다. 여기서 봤던 영화 중 기억에 남는 건 열세 살 소년 가장의 이야기가 슬펐던 ‘엄마 없는 하늘 아래’다. ‘로보트 태권 V’ 등 만화영화 주제가를 따라 부르며 영화에 빠져들었던 추억도 있다. 현재의 한미쇼핑 자리에 있던 시민관이나 천변에 있던 현대극장도 떠오른다. 학창 시절, 시험이 끝나면 항상 진행됐던 단체영화 관람의 단골 장소였다.

당시 영화관을 상징하는 건 큼지막하게 걸려 있는 ‘간판’이었다. 멋진 주인공과 하나도 닮지 않은 간판 그림에 가끔 웃음이 터지기도 했지만, 극장 앞을 지나면서 유명 배우들이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간판을 볼 때면 영화관으로 달려가고픈 마음이 일곤 했다. 지금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일반화되면서 손으로 그린 간판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때는 디지털로 프린트된 간판이 걸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영화 포스터가 홍보용으로 사용될 뿐이다.

1935년 개관해 올해 85주년을 맞은 광주극장에는 재미있는 공간이 많다. 일제강점기 단속 경찰관이나 소방관 등이 앉았던 특별한 좌석인 임검석(臨檢席)은 지금도 그대로 있다. 극장 지하에 있는 간판실도 흥미로운 공간이다. 광주극장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금도 손으로 그린 간판을 내거는 극장이다. 국내의 마지막 간판장이인 박태규 작가가 간판을 그리고 작품 활동도 하는 이곳에 들어서면 세월이 거꾸로 흐르는 듯하다.

광주극장은 5년 전부터 특별한 행사 ‘시민 간판 학교’를 열고 있다. 광주극장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를 직접 그려 보는 이벤트다. 올해는 열 명의 시민이 참여해 ‘남매의 여름밤’ ‘패왕별희’ ‘백 투더 퓨처’ ‘피아니스트의 전설’ 등의 영화 간판 작업을 진행했다. 최근 광주극장 개관 85주년 기념식에서는 간판 상판식이 열렸다는데, 다음에 극장에 가게 되면 새롭게 걸린 간판 구경을 해야 할 것 같다.

손재주가 없어 직접 간판을 그릴 엄두는 나지 않지만, 나의 ‘인생 영화’를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행복해진다. 만약 당신이 간판을 그린다면 어떤 영화의, 어떤 장면을 그리고 싶으신가요?

/김미은 문화부장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