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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촌철활인’이 필요한 시대
2020년 10월 14일(수) 00:00
이 병 우 우아포인트 대표
명석함과 지혜로움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상사의 말에서 오류를 찾아내는 건 명석함이고, 그걸 입 밖을 꺼내지 않는 건 지혜로움이다.” 김진배의 ‘유쾌한 유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유머치고는 의미가 담긴 내용으로 상사와 부하 직원 모두에게 해당된다고 봅니다. 아무리 상사라도 부하 직원의 오류를 지적해 대면 환영받지 못합니다.

아주 짧고 간결한 말로 핵심을 찌르는 것을 흔히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고 부릅니다. 불교의 참선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라지만 뜻풀이를 해보면 섬뜩합니다. “어떤 사람은 무기를 한 수레 가득 싣고 와서 이것저것 꺼내 써도 사람을 못 죽이는데 나는 단지 한 치 쇳조각만 있을 뿐이나 그것으로 당장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에서 비롯됐습니다. 아무리 정곡을 찌르는 것이라고 해도 ‘살인’에 비유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까요? 만약 요즘 시대에 이런 비유를 했다가는 언어 폭력으로 중벌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는데 환자는 죽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환부를 들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얼마 후 환자가 사망했다면 수술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촌철살인은 이와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핵심을 찌르기에 몰입해서 사람은 어떻게 되든 고려하지 않는 느낌입니다. 만약 부부나 친구 사이에서 촌철살인의 경구가 자주 오간다면 그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촌철살인이 사랑의 언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006년 무렵에 아침마다 받아보는 이메일 레터가 있었습니다. 그때 가장 유명한 레터가 ‘고도원의 아침 편지’와 ‘조영탁의 행복한 경영 이야기’였습니다. 경영 이야기는 경영에 관련된 명언과 이를 해설하는 ‘촌철살인’의 코멘트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그 레터를 아침마다 읽으면서 ‘촌철살인’이란 구절이 마음에 걸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레터 발행자인 조 대표에게 메일을 보낼까 했는데 마침 광주 경총 조찬 연수회에 강연을 온다고 해서 그때 말하기로 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명함을 주고 받으면서 제안을 했습니다.

“아침마다 메일을 잘 받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촌철살인’ 이라는 글귀를 볼 때마다 꺼림직합니다. ‘살인’보다는 ‘활인’(活人)이 낫지 않을까요? 짧은 한마디가 사람을 살린다는 뜻도 좋고...” 이런 제안에 조 대표도 흔쾌히 좋은 의견이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촌철살인’ 대신 ‘촌철활인’이란 어구가 들어간 레터를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작은 제안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반영한 것에 대해서 흐뭇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후 ‘촌철활인’이 이곳저곳에서 사용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책의 제호로도 사용되고 강연이나 칼럼 제목으로 자주 인용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촌철활인을 사용하게 된 이유를 소개한 칼럼도 있었습니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 일이 떠올라 최근에 조 대표에게 SNS를 통해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약간의 곡절이 있었지만 ‘촌철활인 제안을 지금도 여전히 감사하고 있다’는 답글을 받기도 했습니다.

‘촌철활인’과 관련된 콘텐츠가 많이 생산되고 회자되는 것은 ‘행복한 경영 이야기’의 영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안자로서도 즐거운 일입니다. 촌철활인은 명석함보다 지혜로움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관용과 포용이 필요한 시대에 사람을 살리는 말 한마디가 도처에서 실현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