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69세’의 에로스
![]() 명혜영 광주시민인문학 협동조합 대표 |
최근 화제가 된 영화 ‘69세’는 여성 노인에 대한 청년의 성폭행, 그리고 이를 극복해 인권을 회복해 가는 과정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그 때문에 남성들로부터 평점 테러를 당하는 등 여러모로 화제가 된 작품이다. 그러나 오히려 나는 영화를 보기 전부터 60대 후반의 ‘여성 노인’을 어떻게 조형했을까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임선애 감독이 빚어낸 69세의 심효정(예수정 분). 절제된 표정과 군더더기 없는 액션, 모노톤의 세련되고 정제된 패션 감각, 감정 표현의 진솔함, 그리고 지난한 삶을 피부 밑에 살포시 감춘 그 자세까지도, 나는 그녀에게 반해 버렸다. 영화는 한 여성 노인을 통해, 화장기 없는 얼굴과 백발에서 ‘NO 안티 에이징’을, 상호 존중적 관계 맺음의 최고봉으로 ‘노년의 에로스’를, 그리고 이 사회에 만연된 ‘노년 신화’까지 적나라하게 헤집어 보여 준다. 즉 ‘고령자는 쓸쓸하고, 외롭고, 무능하며, 어린애 같고, 때론 악취를 풍기는, 늙은 사람’이라는 노년 신화가 만들어 낸 음산한 이미지를 보기 좋게 깨부수는 짜릿함을 선사한다.
그 중에서도 ‘노년의 에로스’는 비평의 주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임감독은 “여성 노인을 무성적 존재로 보는 사회적 편견”이 시나리오를 쓰게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영화를 통해 노년 여성의 성을 ‘무성에서 깊은 모노톤’으로, ‘투박함에서 세련된 성숙미’로 업그레이드해 연출해 내었다.
그렇게 조형된 효정. 수영으로 다져진 군살 제로의 슬림한 몸매, 곧은 자세의 사뿐한 걸음걸이, 실크 스카프를 매치한 엘레강스한 자태, 단정하고도 단호하게 묶은 백발, 롱 코트의 높다란 깃 연출, 세상 쿨하게 한 모금 내뿜는 흡연 신, 고발문을 옥상에서 날려 버리는 당당한 투쟁까지도 우리가 상상하는 노인의 모습은 아니다. 간병 노인의 성추행을 비닐장갑으로 방어하곤 “딸자식 고생시키지 말고 빨리 가세요!”하고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기도 하지만 결코 호들갑스럽거나 비굴하지 않다. 이런 모습 어디에 노년의 음산함이 느껴지는가? 이토록 매적적인, 에로틱한 69세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이런 효정이기에 누구보다 자신을 이해해주고 진심으로 대해주는 시인 동인(기주봉 분)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현재 그의 집에서 전형적인 부부로서가 아닌 동반자로서 함께하고 있다. 동인의 시집은 빛이 바래 ‘냄비 받침’으로 한동안 그 용도가 바뀌어있었지만, 효정이 동인의 시 한 구절 “봄볕 한줄기도 감사하게”를 읊조리자, 민들레 홀씨처럼 에로스는 그에게 날아가 싹을 틔운다. 이렇게 깨인 그의 에로스는 사별한 부인의 기일을 잊을 만큼의 몰두로, 폭행당한 그녀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노력하는 진심어린 모습의 무게로, 깊고 진한 커피의 빛깔과 향을 내뿜는다.
심리학자 니콜라 에이벌은 에로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에로스는 유기체에 존재하는 긴장이다. 에로스는 생명체가 오래 지속되고 한층 더 높은 발달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끔 살아 있는 물질을 통합하여 더 큰 통일체로 만든다. 에로스의 목적은 생명체를 복잡하게 만드는 동시에 보존하는 것”이라고.
효정의 낙점을 받은 동인은 그동안 잠들어있던 에로스의 감성을 깨운 뒤 그녀의 아픔에 공감하며 자발적으로 고발문을 작성하기에 이른다. 즉 ‘생명체가 오래 지속되고 한층 더 높은 발달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끔’ 연대의 에너지가 생성된 것이다.
기실 효정의 에로스는 남자 친구 동인 뿐 아니라 “다리가 참 이쁘네요!”했던 29세의 성폭행범, “옷맵시가 좋으세요!”하던 형사에게까지도 어필이 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노인을 약자로 취급해 성을 유린하고도 “내가 잘해 줬잖아!”하며 죄의식을 못 느끼는 청년, “너무 친절했군요!”하며 무례를 자처하는 남자 형사. 이들의 언행에서 보듯, 노년의 섹슈얼리티를 무시한, 노인 신화에 갇혀있는 한국의 문화는 다분히 문제적이다.
중요한 건, 모든 것이 당사자 효정의 선택이 우선이라는 점이다. 효정과 동인, 각자가 고수해온 삶의 가치관을 존중하고, 서로의 존엄을 지키는 한편 그들을 소외시키는 세상을 향해 각자의 방식으로 고발문을 던진 두 노인의 모습은, 임선애 감독의 표현대로 “아름답다”, 그리고 ‘에로틱’하다. 모두가 긍정하고 응원할 수 있는 노년 캐릭터의 좋은 예라 할 만하다.
그렇게 조형된 효정. 수영으로 다져진 군살 제로의 슬림한 몸매, 곧은 자세의 사뿐한 걸음걸이, 실크 스카프를 매치한 엘레강스한 자태, 단정하고도 단호하게 묶은 백발, 롱 코트의 높다란 깃 연출, 세상 쿨하게 한 모금 내뿜는 흡연 신, 고발문을 옥상에서 날려 버리는 당당한 투쟁까지도 우리가 상상하는 노인의 모습은 아니다. 간병 노인의 성추행을 비닐장갑으로 방어하곤 “딸자식 고생시키지 말고 빨리 가세요!”하고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기도 하지만 결코 호들갑스럽거나 비굴하지 않다. 이런 모습 어디에 노년의 음산함이 느껴지는가? 이토록 매적적인, 에로틱한 69세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이런 효정이기에 누구보다 자신을 이해해주고 진심으로 대해주는 시인 동인(기주봉 분)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현재 그의 집에서 전형적인 부부로서가 아닌 동반자로서 함께하고 있다. 동인의 시집은 빛이 바래 ‘냄비 받침’으로 한동안 그 용도가 바뀌어있었지만, 효정이 동인의 시 한 구절 “봄볕 한줄기도 감사하게”를 읊조리자, 민들레 홀씨처럼 에로스는 그에게 날아가 싹을 틔운다. 이렇게 깨인 그의 에로스는 사별한 부인의 기일을 잊을 만큼의 몰두로, 폭행당한 그녀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노력하는 진심어린 모습의 무게로, 깊고 진한 커피의 빛깔과 향을 내뿜는다.
심리학자 니콜라 에이벌은 에로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에로스는 유기체에 존재하는 긴장이다. 에로스는 생명체가 오래 지속되고 한층 더 높은 발달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끔 살아 있는 물질을 통합하여 더 큰 통일체로 만든다. 에로스의 목적은 생명체를 복잡하게 만드는 동시에 보존하는 것”이라고.
효정의 낙점을 받은 동인은 그동안 잠들어있던 에로스의 감성을 깨운 뒤 그녀의 아픔에 공감하며 자발적으로 고발문을 작성하기에 이른다. 즉 ‘생명체가 오래 지속되고 한층 더 높은 발달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끔’ 연대의 에너지가 생성된 것이다.
기실 효정의 에로스는 남자 친구 동인 뿐 아니라 “다리가 참 이쁘네요!”했던 29세의 성폭행범, “옷맵시가 좋으세요!”하던 형사에게까지도 어필이 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노인을 약자로 취급해 성을 유린하고도 “내가 잘해 줬잖아!”하며 죄의식을 못 느끼는 청년, “너무 친절했군요!”하며 무례를 자처하는 남자 형사. 이들의 언행에서 보듯, 노년의 섹슈얼리티를 무시한, 노인 신화에 갇혀있는 한국의 문화는 다분히 문제적이다.
중요한 건, 모든 것이 당사자 효정의 선택이 우선이라는 점이다. 효정과 동인, 각자가 고수해온 삶의 가치관을 존중하고, 서로의 존엄을 지키는 한편 그들을 소외시키는 세상을 향해 각자의 방식으로 고발문을 던진 두 노인의 모습은, 임선애 감독의 표현대로 “아름답다”, 그리고 ‘에로틱’하다. 모두가 긍정하고 응원할 수 있는 노년 캐릭터의 좋은 예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