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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예전에 목포에 들렀다
2020년 08월 27일(목) 00:00
예전에 목포에 들렀을 때 일이다. 유달산에 올라 보니 삼학도가 그리 작은 섬인지, 그것도 섬답게(?)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고 육지에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하다는 것도 의외였다.

유달산에는 등산로에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는데, 구슬픈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알다시피 이난영의 노래다. 나는 이난영이 활약하던 동시대 사람은 아니지만, 일찍이 그 목소리를 라디오로 자주 들었다. 흔히 한 맺힌 창법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좀 다르게 생각했다. 뭐랄까 중성적이고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기억에 오래 남았다. 당시 창법은 대체로 구슬프거나 지나치게 발랄한 타입이 대종을 이루었는데, 이난영은 그런 보편적인 창법 저편에 혼자 있는 것 같았다. 야구광인 나는 나중에 해태타이거즈 야구팀의 응원가로 운동장에 울려 퍼지는 걸 많이도 들었다. 듣자니, 목포에서 김대중 선생이 유세를 할 때도 이 노래가 당연히, 요즘 유행하는 말로 ‘떼창’으로 불렸다고 한다.

유달산을 내려와서 걷는데, 구시가의 옛 초원호텔 근처 어느 노래방 기기 파는 가게에서 주인 혼자 앉아 역시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매우 빼어난 목소리를 가진 중년의 사내였다. 목포에서 목포의 눈물은 그저 일상의 노래가 된 것 같았다.

지금도 나오는지 모르지만, 내가 방문했을 무렵 이난영 특집판 소주를 목포에서 팔았다. 그때 이난영의 얼굴 사진을 처음 보았다. 결코 성공한 여가수 같지 않은, 어둑하고 사연 깊은 표정의 그이가 소주병 뒤에 새겨져 있었다. 이난영의 사진이 붙어 있는 소주에는 역시 목포의 안주가 제격이었다. 삭은 홍어에 곁들였다.

목포의 오래된 주점 ‘덕인주점’의 사장님은 “김대중 선생이 연설할 때면 저 역 앞이 가득 차고 우리 가게에도 술 마실 겸 구경 나온 술꾼들이 인파를 피해 진을 치고 있었다”고 술회했다. 이난영 떼창을 안주로 마시는 홍어와 소주였다면 대단했을 것이다.

한국 소주는 참 말도 많고 사연도 깊다. 화학주네 어쩌네 하는 말부터 서민의 벗이라는 애칭, 소주 값이 오르기라도 하면 여론이 들썩이고 언론이 요란했을 정도다. 우리가 먹는 소주는 세계에서 알코올 도수 기준으로 제일 싼 축에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소주 한 병이 고작 소매가로 2천 원을 넘지 않으니 정부가 알코올 중독을 조장한다는 지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제법 센 증류주인데 생산 비용이 낮고 거기에다 나라에서 서민 술이라고 세금을 적게 붙이기 때문이다. 나라에서도 여러 번 세금 체계를 손보면서 소주 주세를 올릴 계획을 내비친 적이 있지만, 매번 여론의 벽에 부딪쳐 사그라들었다. 소주 먹는 낙도 없이 서민들은 무슨 재미로 사느냐 하는 항의가 빗발쳤다. 예전엔 세무서나 언론사에 전화를 걸었다고 하는데, 요새라면 청와대 게시판이 난리 날 듯하다.

옛날 신문을 보니 지금은 두꺼비로 유명한, 시장 지배적인 소주가 원숭이표를 썼다는 흥미로운 대목도 나온다. 그러니까 계속 원숭이를 썼다면 서울 사람들이 흔히 술 마시자는 은어로 사용하는 “두꺼비 한 놈 까자”는 말은 원숭이가 대체했을 것이다. 소주에 대한 과거 신문 기사는 그다지 좋은 얘기만 나오지 않는다. 지역 할당제와 정치 자금 제공설, 가짜 소주(지금 소주도 싼 데 그걸 가짜를 만들다니!), 그리고 언제나 2등을 멀리 따돌리던 1등 소주의 영화가 사라진 현재의 얘기까지 참 많은 사연을 역사에 담고 있다.

호남선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갈 때, 예전에는 기차에서 홍익회 판매원이 소주도 팔았다. 오징어 안주에 소주 마시면서 비둘기호의 그 긴 여정을 견뎌 냈다. 목포와 광주에서 보해로 시작한 소주는 충청도에 들어오면 보배로, 다시 수도권에서는 진로 상표로 바뀌던 신기한 경험이 기억난다. 지역 할당제가 없어져서 이제 서울에서 전국 소주를 다 만날 수 있다. ‘잎새주’며 ‘경월’(이것은 ‘처음처럼’이 됐다), 부산의 ‘대선’과 마산의 ‘무학’(‘좋은데이’라는 상표를 쓴다), 거기다가 생전 구경하기 어려운 제주도의 소주도 판다. 그러나 역시 지역의 술은 지역에 가서 독특한 안주에 먹어야 제맛이다. 공기가 다르다니까.

목포 시내에서 이난영 특집판 소주를 다시 판다면, 이번에는 무엇을 안주로 먹을까 고민이 된다. 홍어도 좋고, 민어도 좋고.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