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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타이거즈를 응원하십니까
2020년 08월 26일(수) 00:00
메이저리그 칼럼니스트인 윌 리치가 지난 5월 메이저리그야구(MLB: Major League Baseball) 사이트에 칼럼을 게재했다. ‘맷 윌리엄스에게는 한 번도 없었던 홈런’(For Matt Williams, the HR chase that never was)이라는 제목의 글인데 그의 글에 이런 대목이 보인다. “그(맷 윌리엄스)는 최희섭이 타격코치를 맡고 있는 기아 타이거즈 감독이다.”(He’s the manager of the Kia Tigers-Hee-Seop Choi is his hitting coach!)

하지만 아쉽게도 ‘광주’라는 단어는 그의 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해외 야구팬들에게 글로벌 도시를 지향하는 ‘광주’를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말이다. 이는 기아타이거즈 구단 명칭에 ‘광주’가 들어 있지 않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기아는 광주를 마케팅 기반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정작 연고지를 팀 명칭에 넣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프로 축구나 농구 팀은 도시명을 팀 이름 앞에 내세우고 있다. 미국 프로야구단도 예외 없이 연고지가 우선이다. 기아뿐만 아니라 도시명을 구단 명칭에 사용하지 않는 것은 국내 타 프로야구단도 마찬가지라고? 그건 기아를 비롯한 모든 구단들의 명백한 담합(?)이고 연고지에 대한 배신이다. 특히 기아는 달리 생각해야 할 지점이 있다. 세금으로 지은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총 건립 비용 994억 원 가운데 광주시 예산 396억 원과 국비 298억 원을 들여 지은 공간이다. 기아자동차도 300억 원을 보태기는 했지만.



기아, 뚫기 어려운 ‘좁은 문’



‘기아 타이거즈 주식회사’가 2001년 8월 주식회사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해 운영한 지 햇수로 벌써 20년째다. 해태 시절이나 기아 시절이나 팬들의 지지는 변함없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타 구단에서 부러워하는 팬들의 ‘기아 사랑’은 지역민의 일방적인 애정일 뿐이다. 이는 구단 자체만 보면 팬들로부터 사랑받을 만한 구석이 별로 없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광주·전남 초중고교에서 야구를 하는 아마추어들에게 타이거즈는 희망이 아니라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다. 기아는 지난해 8월에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 모두 10명을 선발했는데 지역 연고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현재 기아타이거즈 1, 2군에 등록한 선수들은 모두 79명. 이 가운데 광주·전남 출신이나 연고 선수들은 모두 15명으로 19%대다. 기아에 적을 둔 군 복무 보류 선수까지 통틀어도 전체 96명 가운데 지역 출신은 23명(24%)뿐이다. 그러니 ‘광주 연고 구단’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올 시즌 타 구단 1군에서 뛰는 광주·전남 출신 선수들은 줄잡아 30여 명을 헤아린다. 기아 소속 지역 선수보다 더 많다. 지난 21일 타이거즈와 다이노스 경기 라인업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포수 양의지를 비롯해 외야수 나성범·김성욱(이상 진흥고)과 노진혁(동성고)이 선발 출장했고, 불펜 임창민(동성고)과 교체 출장한 내야수 모창민(광주일고)까지 무려 6명이 그라운드에 나왔다. 하지만 이처럼 우리 지역 출신 쟁쟁한 선수들을 보면서 광주 야구의 저력을 실감하기보다는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들은 어찌하여 고향을 놔 두고 객지를 떠돌며 생활해야 하는 것일까.

지역 출신 선수들에게 과감히 문호를 개방하지 않고 있는 기아에게는 앞으로 더 좋은 핑곗거리가 생길 것 같다. 프로 팀이 연고 지역 유망주를 우선 지명하는 신인 1차 지명이 내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2023년 신인을 뽑는 2022년부터 프로 10개 구단은 균형 발전과 전력 평준화를 위해 ‘전면 드래프트’를 시행한다. 기아가 지역 출신 선수를 몇 명이나 뽑을지 자못 궁금하다.

물론 기아 타이거즈가 자선·공익 구단이 아닌 이상 무턱대고 지역 선수들의 보유 비율을 높일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안다. 하지만 광주 연고 구단이라고 내세울 만한 ‘최소한의 안배’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국내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구단이라면 지역 아마 야구를 고려한 스카우트 전통도 이어가야 한다. 그래야 연고 구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아는 야구에 관한 한 광주·전남 지역 스포츠 연계 육성 체계의 정점에 있다. 초중고 선수들이 힘들게 운동하면서도 밥과 꿈을 좇을 수 있는 터전이 바로 기아다. 이들에게 미래를 보장해 주지는 못할 망정 꿈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구단으로 남아서야 되겠나.



지역 출신 과감히 육성해야



기아 전용 구장인 ‘광주-기아챔피언스 필드’ 관중석이 지난 20일 다시 닫혔다. 코로나19 확산세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다. 조촐한 응원단만 지키는 텅 빈 관중석, 맥 빠진 그라운드 풍경이 쓸쓸하다. 이런 모습은 팬들에게나 구단에나 ‘꿈에도 보고 싶지 않은 디스토피아’일 터. 따라서 모두들 이런 혹독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소망할 것이다. 한데 그동안 기아가 걸어 온 길을 반추해 보면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로 여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앞당겨진 미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윤 영 기 체육부장 penfo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