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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
2020년 08월 12일(수) 05:00
고 성 혁 시인
박원순의 시대가 저물었다. 그가 행한 것들까지 함께. 그의 죽음은 벼락같아 암전이 온 듯 했다. 마음을 다해 애도할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은 어리둥절, 멍한 채 그의 죽음을 맞았다. 어쨌거나 그는 명예를 지켜내기 위해 온 몸을 내던진 노무현, 노회찬과 달리 시대의 진정성에서 가장 낡은 이유로 목숨을 버린 사람이 됐다. 나는 박원순이라는 사람의 생애를 오래 곱씹다가 문득 내 주변 평범한 이웃들의 삶의 무게를 가늠했다.

한 할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팔십육 세로 생애를 마감했다. 생각해 보건대 단 한 번도 신문에 난 적 없었고 군수는커녕 면장으로부터도 상을 받아 보지 못했다. ‘연산’이라는 어느 지역으로부터 시집을 와 그날부터 평생을 화순군 춘양면 시골마을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한 할머니. 어떤 날은 어느 자식의 안타까운 사연 때문에, 어떤 날은 다른 자식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 때문에 상처받아 앓아누웠고, 또 어떤 날은 어쩌다 들려오는 기쁜 소식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평생 머리에 수건을 둘러쓰고 일했고 아끼느라 마음껏 전기 한 등 밝히지 않고 살았다. 마치 내 어머니처럼. 나는 문득 그녀의 삶이 내가 그토록 사랑한 노무현과 노회찬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희생으로 살아온 이 땅의 어머니들 삶의 무게는 너무나 무거워 저울에 올릴 수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내게 많은 것을 주고 가셨다. 내가 없는 사이 텃밭 가에 옥수수 모종을 심어놓고 가셨다. 된장과 집장을 주시고 콩 씨를 건네셨다. 우연히 만난 우리 부부의 손목을 끌고 부엌으로 들어가 커피를 타 주시기도 했다. 부뚜막이 주던 따뜻한 위로가 지금껏 가슴을 적신다. 마음을 주셨고 사랑을 주셨고 안타까움을 주셨다. 돌이켜보면 할머니는 십육 년 전 저 세상으로 가신 어머니의 현신이셨다. 큰 자식을 갑작스럽게 잃고 마치 폭우에 쓸려나간 축대처럼 패인 할머니의 얼굴을 보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그립다. 며칠씩 앓고 난 뒤 누웠던 모양 그대로 외출했던 할머니의 한쪽으로 쏠렸던 하얗게 센 머리가, 평생의 노동으로 굽은 손가락 끝과 굳어 버린 손가락 마디까지 그립고, 어서 올라 가, 라고 말하시던 눈웃음까지 그립다. 평소 불편한 데가 없어 보이던 할머니는 지병인 혈압으로 떨어져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노제를 지내러 온 영구차를 본 게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19세기 후반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책방 점원과 선교사 등으로 살다가 스물이 넘어 그림을 그렸고 서른일곱의 나이로 죽었다. 그가 살아 있을 때는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는 늘 중심에 서지 못한 아웃사이더였고, 정신분열 증세까지 있는 무명화가로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다가 생을 마감했다. 고흐는 죽기 직전 병원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그림을 그렸다. 노란색 별과 달이 물결치듯 빛을 뿜고 검은 망토를 뒤집어 쓴 것 같은 사이프러스 나무와 어둠에 싸인 마을. 그의 소용돌이치는 감정과 충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로부터 팔십 년 뒤 미국의 가수 돈 맥클린은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고흐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The Starry Night)를 생각하며 “별이 빛나는 밤, 밝게 활활 타오르는 불꽃들, 보랏빛 실안개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구름들이 푸른 색 빈센트의 눈에 비쳐 보이네요”라는 가사의 ‘빈센트’(Vincent)를 만들었다. 나는 다시 그로부터 오십 년 뒤 숲속에서 그 노래를 들으며 빈센트 반 고흐와 할머니의 생애를 가늠한다. 모두 죽고 모두 사라지는 삶. 남는 건 기억뿐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난 5월에 가신 할머니 댁의 닫힌 문 앞에 채송화도, 꽃잔디도 아닌 이름 모를 붉은 꽃이 사그라지고 있다. 이제 막 핀 봉선화는 그 옆에 수굿하게 서 있다. 누구에게나 평생은 있고 그 평생은 다른 어떤 누구의 평생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런 세상이 아름다운 것이니 나도 부디 내 뒤로 오는 누구의 ‘할머니’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