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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생각’] 21세기의 에리쉬크톤과 다윈의 경고
2020년 06월 11일(목) 00:00
장맛비가 시작됐다. 폭염경보도 발령됐다. 제주 지역에 올라온 장마전선은 봄을 통째로 빼앗긴 이 땅을 축축이 적실 것이다. 불쑥 찾아온 여름이다. 여느 해보다 열흘쯤 이르게 왔다는 장마가 유난히 더 빠르게 느껴지는 건 계절의 흐름을 느낄 여유도 없이 황망히 지나쳐 보낸 봄 탓이리라. 뜨거운 햇살과 촉촉한 비를 반기는 건 무엇보다 나무들이다.

도시의 아파트 단지 나무에도 푸른 잎이 무성해지는 가운데 수도권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 펼쳐진 낯선 풍경이 눈길을 끈다. 단지를 둘러싸고 우뚝 솟아 있던 모든 나무들이 줄기만 전봇대처럼 남고 나뭇가지는 모조리 사라졌다. 나뭇가지가 없는 나무에서 잎이 나지 않는 건 당연한 이치다. 단지 둘레에서 도시의 매연을 빨아들이며 힘겹게 살아온 은행나무가 그렇고, 10층 높이까지 융융하게 솟아올랐던 메타세쿼이아가 모두 그 모양이 됐다. 이 아파트 단지의 벚꽃 터널은 이 지역 사람들이 즐겨 찾을 만큼 아름다운 ‘이 도시의 명소’ 가운데 하나였다.

20년쯤 된 이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은 나무가 베란다 창문에 그늘을 드리워 답답했고, 나무에 서식하는 벌레들이 아파트 창문을 넘나들어 성가셨다. 은행나무가 가을에 씨앗을 흩뿌리며 풍기는 고약한 냄새도 견디기 힘들었다.

결국 아파트 관리소에서는 가지치기를 결행했다. 모든 가지를 잘라내 창졸간에 휑해진 나무 주변 풍경을 주민들은 얼마나 만족해했을지 궁금하다. 겨울 지나고 단지 바깥의 모든 나무들이 초록 잎으로 싱그러운 그늘을 지을 때 잿빛 살풍경만 남은 아파트단지 풍경을 환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거인 에리쉬크톤이 나온다. 에리쉬크톤은 마을 사람들이 숭배하는 거대한 떡갈나무를 베어 냈다. 그러자 나무에 깃들어 살던 요정들이 보금자리를 잃었다. 요정들은 신에게 에리쉬크톤의 만행을 알렸고, 신은 에리쉬크톤에게 배고픔의 형벌을 내렸다. 먹어도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에리쉬크톤은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다 급기야 자신의 몸뚱어리까지 뜯어 먹고 입술만 남긴 채 사라졌다.

도시의 아파트에서 나뭇가지를 처참하게 베어 내자 나뭇가지에 집을 지었던 까치가 사라졌고, 나뭇잎을 먹고 몸피를 불리던 작은 곤충들도 사라졌다. 곤충이 사라지자 곤충을 먹으며 살던 작은 새들도 날아오지 않았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생물도 따라서 살 수 없었다. 어쩌면 보금자리를 잃은 어떤 미생물은 남아 있는 마지막 생명의 의지를 일으켜, 주변의 다른 생명체에게 옮겨 가느라 안간힘을 다하고 있을지 모른다.

잔혹한 톱질이 아름다운 나무를 할퀴고 지난 뒤에 맞이한 봄에 우리를 찾아온 건 봄을 송두리째 앗아간 바이러스였다. 잎사귀 하나 없는 나무로 둘러싸인 사람의 마을에 찾아온 악몽 같은 봄이었다. 이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의 깃발을 들어 올릴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인류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사람이 승전보를 올린 건 두 차례(천연두와 우역바이러스)밖에 없다. 어떤 바이러스도 이겨내지 못했다. 공생이라는 생명의 진리를 가리키는 지표다.

바이러스와의 공생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일 뿐, 결코 모든 자연을 함부로 해치울 권리를 가진 지배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연은 결코 사람의 지배 영역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우리 안으로 들어온 것인지, 바이러스가 사는 곳으로 우리가 들어간 것인지를 살펴볼 일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연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자연의 근본 원리를 벗어난다. 자연은 어느 한 종의 생명만을 위하지 않는다. 38억 년 생명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엄연한 진리다.

찰스 다윈은 “자연은 생명의 메커니즘 전체에 작용한다. 인간은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교배하지만 자연은 자신이 돌보는 생명의 이익을 위해 교배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우리 곁의 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 안에 깃들어 사는 모든 생명을 더불어 느끼는 것, 나무를 둘러싼 생명의 메커니즘 전체를 살펴보는 일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일임에 틀림없다.

<나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