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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 생각’] 사라져 가는 모든 생명을 기억해야
2020년 05월 14일(목) 00:00
모내기를 할 즈음이면 물 댄 논에서 앙증맞은 꽃을 피우는 매화마름이라는 수생식물이 있다.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부유하며 자라는 미세한 식물이다. 지름 4밀리미터 정도로 작고 여린 꽃으로 존재감이 크지 않은 생명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신비스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그래 봤자 워낙 작은 데다 논 가운데에 있어 꽃 가까이에 다가서기가 어렵다. 농촌 사람들에게조차 매화마름의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은 이유이다. 그나마 가까스로 알아챌 수 있는 것은 대개 무리 지어 피어나기 때문이다.

모내기 전에 농부들은 매화마름을 그대로 둔 채 논을 갈아엎는다. 여린 생명체는 농부의 삽질에 따라 산산조각 나며 흙 속에 깊숙이 묻히지만 죽는 건 아니다. 꽃을 거두고 잠시 휴면에 들어갈 뿐이다. 땅속에서 보낸 한 해 뒤 봄이면 매화마름은 어김없이 무성하게 순백의 꽃을 피우며 여전히 살아 있음을 드러낸다.

신비로울 정도로 강인한 생명력의 비결은 독특한 뿌리 번식 방식에 있다. 매화마름 식물체의 줄기에는 대나무처럼 마디가 형성되는데, 그 마디마다 뿌리가 나와 자란다. 줄기가 산산조각 나서 흙 속에 묻힌다 해도 각각의 마디에서 뿌리를 내리며 다음 기회를 기다린다. 오히려 더 많은 생명체로 번식할 기회인 셈이다. 다시 따뜻한 봄이 오면 젖은 흙을 뚫고 솟아나서 환희의 꽃을 흐드러지게 피운다.

스러질 리 없을 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갖춘 매화마름이건만,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논에서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심지어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식물로까지 지정했다. 매화마름이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가는 치명적인 이유는 농약이다. 아무리 강인한 생명이라 해도 사람만큼은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해서 예쁜 꽃 한 종류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한 종류의 꽃이 사라진 결과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어쩌면 하나의 식물 종이 사라진 결과는 더욱 참혹하게 이어질 수 있다. 이를테면 하나의 꽃이 다시 피어나지 않는다면, 그 꽃송이 안의 꿀을 먹이로 살아가던 한 종류의 곤충이 존재하기 어려워진다.

참담한 사정은 또 이어진다. 한 종류의 곤충이 사라지면 그 곤충의 중매로 꽃가루받이를 이루며 번식하던 또 다른 종류의 식물도 위기를 맞이한다. 그 식물은 필경 어떤 동물의 먹이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식물을 먹이로 하는 동물도 마찬가지로 먹이가 줄어들어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된다.

생태계가 어이없이 무너지는 현상은 끝없이 이어진다. 돌아보면 생명의 위기는 언제나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우리는 더 편안하게 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이어 왔다. 하릴없이 자연의 다양성을 희생하면서 단순하고 획일화한 도시로 바꾸어 내는 데에 성공했다. 사람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다른 생명과의 공존은 뒷전으로 밀어냈다. 나무도 동물도 생존 영역을 사람에게 빼앗겼다.

나무와 동물의 몸을 숙주로 공존하던 미생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험악해진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생물은 더 독한 생명으로의 진화를 재우쳤고, 마침내 사람을 숙주로 삼기 위해 찾아온 바이러스는 사람의 생존까지 위협하게 됐다. 어쩌면 미생물의 침공이라기보다 잃어버린 생존 영역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으로 봐야 하지 않나 싶다.

결국 생태계에서 이어지는 생존 투쟁에서 누가 살아남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며 이 같은 멸종 위기의 고리에서 사람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총 균 쇠’의 저자이며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이 같은 현상을 ‘호모 사피엔스의 생태학적 자살’이라고 표현했다. 이미 오래전에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세계적인 멸종위기종 목록인 ‘적색목록’(Red List)에 호모사피엔스를 ‘관심 대상’으로 분류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매화마름이 사라진다는 것은 결코 미소(微小)한 일이 아니다. 더 얄궂은 일은 한 종류의 식물이 사라진 결과를 곧바로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불행하게도 하나의 식물이 사라진 결과가 치명적임을 확인하는 순간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됐을 때다. 더 늦기 전에 사라져 가는 우리 곁의 모든 생명을 한 번 더 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나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