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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공감 플러스
2020년 05월 06일(수) 00:00
고성혁 시인
오월이다. 역병 코로나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됐다. 대구·경북분들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어지셨을까. 서울 소재 대학에 합격, 자취방을 얻은 대구·경북 학생들에게 방을 빼라고 요구했다는 기사, 그리고 긴 대기 시간으로 진단 검사마저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임종 때 정작 밀접 접촉자로 분류된 할아버지는 55년을 함께한 할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마저 할 수 없었다는 기사를 읽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대구·경북분들, 그동안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상처는 마음에서 온다. 코로나가 어느 정도 진정된 이제 그분들 마음의 응어리가 녹아 몸과 마음에 평화가 흐를 수 있기를 빈다. 우리 국민 모두에게 부디 봄볕 같은 축복이 넘치기를.

1977년 봄 입대 했다. 자대는 서울 근교였는데 출신을 물어보던 선임은 안타까운 듯 얼굴을 돌렸다. 부대 분위기는 나의 출신지 호남과 나머지 비호남으로 구분된 것 같았다. 졸병인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도 조심했다. 호남 출신은 ‘따블빽’이었다. 뒤통수에 대고 전남은 A빽, 전북은 B빽이라고 말하는 선임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지만 그뿐이었다. 이길 수 없는 처지였으므로 나는 오로지 견뎠다.

군에서 제대한 80년 봄 광주 항쟁이 일어났다. 광주 민주화운동이라고 명명된 이후에도 대한민국은 광주의 진실을 오랫동안 외면했다. 광주로 대표되는 전라도 사람들은 ‘전라디언’이라 불렸다. 실수는 어느 지역,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건만 전라도 사람의 그것에는 ‘홍어’라는 이름의 혐오가 뒤따랐다. 그건 고통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분노했지만 분노는 더 큰 상처로 돌아올 뿐이었다. 교훈은 체념으로 변해 어떤 비하도 못들은 척 감수했다.

지자체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시절 중앙 정부와 업무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건 ‘은따’였다. 은근한 따돌림. 이쪽 직원들은 저녁이면 함께 소주를 마시며 ‘하와이’의 아픔을 곱씹었다. 중앙 부처에서 업무 협의가 끝난 어느 날 환담을 나누다 물었다. 이승엽과 박지성을 좋아하느냐고. 사람들이 쳐다봤다. 그 사람들 전라디언입니다. 뜬금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좀 봐 주시라는 말입니다. 이승엽의 부모님이 전남 출신이고, 박지성의 고향이 고흥이라는 말을 슬쩍 상기시켰던 그때를 떠올리고 나니 부끄럽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5·18 항쟁을 폄하하는 사람들은 많고 많다. 이종명, 김순례, 지만원. “5·18 사태는 10년, 20년 후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들에 의해 폭동이 민주화운동이 된 것”이라고 말한 이종명과 “종북 좌파들이 판을 치면서 5·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 집단을 만들어 내 우리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한 김순례. 그리고 “북한군 개입이 증명됐다”며 광주시민들을 ‘광주에 침투한 북한군 특수부대’인 ‘광수’라고 말하는 지만원.

5·18 40주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며 금남로 역사의 현장에서 시위를 하겠다는 ‘자유연대’라는 단체는 또 어떤가. 아직도 광주에 치욕과 수치를 안기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그 말, 또 그 레퍼토리. 40년이 흘렀건만 인터넷에서는 아직도 엄지를 치켜드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법의 심판이 끝났음에도 딴눈으로 보고 딴말만을 하는 사람들. 광주에게 5·18은 현재진행형이다. 상처는 깊고 외로움은 크다.

대구·경북분들 부디 힘내시기를 빈다. 국민 모두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무엇이든 서로 도와야 한다. 딸을 찾아 서울에 왔다가 백병원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할머니도 힘내시길 빈다. 그분은 그 후 어떻게 되셨을까. 그 할머니를 처벌하려면 그보다 먼저 진료를 거부한 대구와 서울의 병원도 처벌해야 하고, 그 병원들에게도 진료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다면 완벽한 진료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한 정부도 책임져야 한다. 정부에게도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면 그건 우리 모두의 몫이다. 코로나가 짓밟은 2020년의 봄, 위기 속에서 오히려 국격을 높인 나라만큼 대구와 광주를 향한 공감 또한 플러스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