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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김대중, 그리고 호남!
2020년 04월 08일(수) 00:00
[최 영 태 전남대 사학과 명예교수]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1954년에 목포에서, 그리고 1958년, 1959년, 1960년에는 강원도 인제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연거푸 실패했다. 그는 재산을 탕진했고 아내마저 잃었다. 1961년 인제 보궐선거에서 다섯 번째 도전 끝에 마침내 당선되었으나 이번에는 3일 후 불어닥친 5·16쿠데타로 인해 국회의원 선서도 하지 못한 채 정치 활동을 접었다.

1967년 목포 국회의원 선거 때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공화당 후보 김병삼을 당선시키기 위해 목포에 두 번이나 내려왔다. 목포 현지에서 국무회의까지 주재했고 직접 유세도 했다. 박정희와 그를 따라온 장관들 모두 목포 시민들에게 소위 돈 폭탄(?)을 약속했다. 선거는 사실상 박정희와 김대중의 싸움이었다. 이 싸움에서 목포 시민들은 DJ를 선택했다. 큰 인물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DJ와 호남의 운명적 결합은 시작되었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와 두 번째 싸움이 벌어졌다. DJ는 향토 예비군제 폐지, 이중곡가제를 비롯한 대중 경제 시행, 4대국 안전 보장론과 평화 통일론 등 파격적인 정책과 공약을 제시하며 선거판을 뒤흔들어 놓았다. 박정희는 당황하였고 각종 부정 선거와 지역감정, 개표 부정을 동원했다. 이로 인해 DJ는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영남과 호남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전체 지역에서는 박정희보다 1만 7171표 앞서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DJ가 사실상 승리한 선거였다. 1967년 목포 시민들의 안목이 새삼 돋보였다.

1971년 대선 후 박정희의 보복이 본격화되었다. 의문의 교통사고, 납치와 살해 시도, 오랜 감옥 생활과 연금 등 가혹한 보복이었다. 1980년에는 박정희의 아류 전두환이 DJ를 사형까지 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는 이 시련들을 당당하게 이겨냈다. 호남인과 전국의 민주 세력이 든든한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후 김영삼과의 단일화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졌다. 정치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호남 유권자들이 다시 나섰다. 다음 해 실시된 4·26 총선에서 그에게 제1 야당 총재 자리를 안겨주었다.

DJ는 1992년 대선 패배에 이어 1997년 다시 대통령직에 도전했다. 네 번째 도전이었다. 선거 날이 다가올수록 호남인들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혹시라도 영남 유권자들을 자극할까 걱정해서였다. 대신 선거 날 무섭게 행동했다. DJ가 획득한 전남 94.6%, 전북 92.3%, 광주 97.3%의 득표율이 이를 잘 말해 준다. 특히 DJ가 광주에서 획득한 득표율 97.3%는 선거 공학적으로는 거의 설명이 안 되는 숫자였다. 하지만 2위와의 득표 차 39만 표(1.46%)를 고려할 때 그런 득표율이 없었으면 DJ는 아마 당선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눈물겨운 성원이었다.

그런데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호남이 DJ를 지지한 것은 그가 단순히 호남 출신이기 때문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DJ가 추구한 비전과 정책 즉 민주주의와 평화, 복지, 지역 균형 발전론 등이 호남인들이 추구한 가치 및 정책과 같았기 때문에 지지한 것이었다. 호남과 DJ가 가치 동맹을 맺고 한국의 국격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영남 출신인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을 적극 지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임진왜란 때 외지 출신인 이순신과 손을 잡고 나라를 지킨 것도 마찬가지였다.

남북 관계, 4강 외교, 경제적 어려움 등을 생각하며 DJ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휩쓸었을 때 그의 문화예술 정책에 대해, 그리고 ‘코로나 19’에 대한 한국의 대처 방식에 세계적 찬사가 이어질 때 DJ의 의료 정책과 IT산업 육성에 감사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역사가 그를 그리워하고 또 그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주에 총선이 실시된다. 과거에는 DJ와의 연고를 내세우며 지지를 호소하는 후보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김대중 정신의 계승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런데 이번 총선 때는 말로라도 DJ와의 인연을 내세우거나 김대중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나서는 후보 자체가 거의 없다.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필요로 하는데 말이다. 또 유권자들은 ‘뉴 DJ’의 출현을 간절히 바라는데 말이다. 총선을 앞두고 매우 아쉽게 다가오는 대목이다.